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매거진 esc] 라이프
방 안에 다양한 단서 흩어놓고 추리해 시간 안에 잠긴 방문 열어야 하는 ‘방 탈출 게임’…강남·홍대서 젊은층한테 인기
방 안에 다양한 단서 흩어놓고 추리해 시간 안에 잠긴 방문 열어야 하는 ‘방 탈출 게임’…강남·홍대서 젊은층한테 인기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추리소설을 꽤나 좋아했다. 셜록 홈스, 괴도 루팡 시리즈는 물론, 애거사 크리스티 걸작선까지 줄줄 꿰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더는 추리소설을 펼쳐 들지 않게 됐다. 다른 데다 머리 쓰기도 벅찼기 때문이지 싶다. 그랬던 내가 추리를 하겠다고 이렇게 머리를 쥐어짜게 되다니. 주어진 시간은 단 1시간, 곳곳에 숨은 단서를 찾아 이 방을 탈출해야 한다.
지난 1일 밤 서울 역삼동 ‘코드 이스케이프’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오랜 친구 ‘조’, ‘채’와 함께였다. 요즘 뜨고 있다는 ‘방 탈출 게임’을 같이 해보자는 제안에 친구들은 “재밌겠다”며 흔쾌히 따라나섰다. 코드 이스케이프는 지난 5월 초 문을 열었다. 방 안에 갇힌 뒤 1시간 안에 갖가지 단서를 찾아 탈출해야 하는 게임 공간이다. 생긴 지 두 달밖에 안 됐지만 벌써 입소문을 타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8월 말까지 예약이 꽉 찼고, 주말 좋은 시간대는 10월까지 예약이 찼다. 코드 이스케이프보다 조금 앞서 4월 말 서울 홍대 앞에 문을 연 ‘서울 이스케이프룸’ 또한 8월 중순까지 예약이 다 찼다고 한다.
이런 형태의 게임은 7~8년 전 일본에서 유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미국 등으로 퍼져나가 2013년께 세계적인 붐을 일으켰다. 김태윤씨는 지난해 싱가포르에 파견 근무를 갔다가 이 게임을 처음 접했다. “제가 추리소설을 좋아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분위기가 정말 좋더라고요. 회사 동료들과 함께 갔는데, 추리를 위해 얘기를 많이 하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면이 특히 좋았어요.” 올 초 귀국하면서 회사를 그만둔 그는 아예 방 탈출 게임 공간을 차리기로 했다. 그래서 문을 연 게 코드 이스케이프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또 있었다. 그 결과 올봄 비슷한 공간 두 곳이 홍대 앞과 강남에 동시에 생겼다.
눈 가리고 직원 안내받아
방에 들어가니 순간 오싹
20분마다 문틈으로 힌트 제공
한시간 안 탈출하면 성공
코드 이스케이프에는 5개의 방이 있다. 각각의 방은 다른 테마를 가지고 있다. 난이도 3의 ‘파파라치’, ‘동물원의 비밀’, 난이도 4의 ‘키드냅’, ‘탐험가의 집’, 난이도 5의 ‘산업스파이’다. 난이도 3은 30~40%, 난이도 4는 20%, 난이도 5는 5~10%가 탈출에 성공한다고 한다. 1시간이 지나도록 탈출하지 못하면 직원이 문을 열어준다. 서울 이스케이프룸은 스파이룸 1개, 서재룸 2개로 이뤄져 있다. 똑같은 서재룸이 2개여서 두 팀으로 나눠 누가 먼저 탈출하나 대결을 펼칠 수도 있다.
“됐다! 성공이다!” 코드 이스케이프의 대기석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직원들이 “축하한다”며 박수를 쳤다. 스물셋 동갑내기 친구인 이아무개씨와 정아무개씨가 ‘탐험가의 집’에서 마지막 2~3분을 남기고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둘은 “사흘 전 처음 와보고 너무 재밌어서 예약을 또 걸어놓았다”고 했다. 운 좋게도 취소자가 생겨 금세 자리가 났다. “술 먹고 노는 것보다 신선하잖아요. 잘 안 풀리고 시간에 쪼일 땐 서로를 원망하기도 하지만, 잘 풀릴 때는 의리가 더욱 돈독해지는 것 같아요. 여기 있는 5개 방 모두 도전해보고 싶어요.” 김태윤 대표는 “20~30대가 많이 오고,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다. 친구, 연인은 물론 가족, 회사 동료끼리 오는 경우도 꽤 있다”고 전했다.
이제 우리 차례다. 직원이 안대를 나눠주며 눈을 가리라고 했다. 안대를 차고 친구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리 셋은 어둠 속에서 직원 안내를 받아 ‘키드냅’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안대를 벗는 순간 오싹했다. 여기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앞으로 이 방에 들어올 사람의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도록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타이머가 돌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뭔가를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방의 구조와 그 안의 여러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만만치 않았다. 시간이 꽤 지나도록 아무 단서도 찾지 못했다. “이거다!” ‘조’가 소리쳤다. 전혀 예상 밖의 지점에서 첫 실마리를 찾아냈다. ‘조’가 자꾸 엉뚱한 곳을 살피는 것 같아 “아무래도 거긴 아닌 것 같다”고 좀 전에 말했던 나는 무안해졌다.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나 이런 게임 되게 잘한다”고 큰소리쳤던 ‘채’가 제법 실력을 발휘했다. 하나의 단서를 풀면 다음 단서가 나오고, 그걸 풀면 또 다음 단서가 나오는 식이었다. ‘조’와 ‘채’가 하나하나 풀어가는 동안, 나는 별다른 구실을 하지 못했다. 잘난 친구들을 둔 덕이었다. “넌 하는 일이 없는 것 같다”고 친구들이 놀려댔다. “난 너희들을 조율하고 있잖아.” ‘조’와 ‘채’가 ‘못 말려’ 하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직원은 20분마다 힌트를 적은 종이를 문틈으로 넣어주었다. 이미 푼 단서에 대한 뒤늦은 힌트도 있었지만, 어떤 힌트는 한참 끙끙대던 문제에 번뜩이는 영감을 던져주기도 했다. 8개의 단서를 풀고 나서 탁 막혔다. 아무리 쥐어짜도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남은 시간은 10분. 마음이 조급해지니 머릿속이 더 하얘졌다. “아, 뭐지? 뭐지?” 우리는 길을 잃고 말았다. 갑자기 문이 덜컥 열렸다. “아쉽게도 실패하셨군요. 그래도 2개의 단서만 남기고 다 푸셨네요.” 김 대표가 위로했다. 막혔던 단서의 풀이법을 들은 우리는 허탈해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것만 생각해냈다면 다음 단서를 손쉽게 풀고 탈출할 수 있었는데.” 아쉬움은 꽤나 오래갔다.
“방을 탈출하기 위해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한번 생각해보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재빨리 다른 쪽으로 생각의 물꼬를 돌려야 해요. 여럿이서 할 때 자기주장만 고집하지 말고 다른 이의 얘기를 최대한 경청하며 서로 다른 생각을 모아야 합니다.” 김 대표가 설명해준 팁이다. 그는 “평범하게 생각하면 풀 수 없고 발상의 전환을 해야 풀 수 있도록 방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개점 이후에도 직원들 의견을 받아 계속 수정·보완해왔다고 그는 덧붙였다. 코드 이스케이프는 8월 홍대점도 오픈할 예정이다. 강남점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테마방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코드 이스케이프의 이용료는 1인당 1만8000원이다. 단 2명 이하일 경우 기본요금인 4만4000원을 내야 한다. 최대 5명까지 참여 가능하다. 서울 이스케이프룸은 4명까지 한방에 들어갈 수 있는데, 참여자가 많을수록 1인당 요금(1만2500~1만9000원)이 내려간다. 인기 시간대엔 1인당 5000원씩 더 붙는다. 1시간 노는 가격치곤 좀 비싸다고 여길 법도 한데, 경험해보면 본전 생각을 잊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큰 기대 안 했는데, 정말 재밌었다”며 다음에 또 오기로 약속했다. 그때는 탈출할 수 있을까?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방에 들어가니 순간 오싹
20분마다 문틈으로 힌트 제공
한시간 안 탈출하면 성공
방으로 갈 때는 눈을 가리고 직원의 안내를 받는다.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 시간 안에 방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 팀의 기념촬영.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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