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로 주고받는 대화는 제한적이다. 얼굴을 보고 직접 얘기하거나 전화 통화를 할 때에 비해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분위기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단지 내용만으로는 농담인지, 진지한 건지, 화난 건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지 알 수 없어 당황스러울 때도 많다. 손편지 시대를 지나 전자우편과 온라인 실시간 채팅 시대를 맞아 사람들은 문자에 감정을 실을 비법을 갈구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이모티콘’이다. 감정을 뜻하는 영어 ‘이모션’(emotion)과 유사기호를 뜻하는 ‘아이콘’(icon)의 합성어로, 온라인에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말을 의미한다.
1990년대 중반 피시통신으로 채팅하던 시절, 상대에게 호의를 표시하려면 문장 끝에 웃는 눈(^^)을 붙이는 게 필수였다. 난처할 땐 웃으면서도 진땀을 흘렸고(^^;;), 낙담하거나 위로를 바랄 땐 눈물을 줄줄 흘렸다(ㅠ ㅠ). 사람들은 컴퓨터 자판을 이용해 더욱 기발하고 정교한 이모티콘을 개발했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면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도 이모티콘은 유용했다. 특히 분량이 제한된 초창기 문자메시지에서 이모티콘은 대단히 효율적인 표현 수단이었다.
문자는 물론 그림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인터넷은 이모티콘의 신세계를 열었다. 엠에스엔(MSN) 메신저, 네이트온 같은 피시 인터넷 메신저는 문장기호가 아니라 아예 그림으로 된 이모티콘을 선보였다. 단순한 스마일 얼굴부터 하트, 생일 케이크, 꽃다발 등 다양한 모양의 이모티콘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더 생생하고 개성 있게 전해주는 이모티콘의 매력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2009년 등장한 아이폰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 시대에 이모티콘은 또 한 차례 진화한다. 카카오톡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메신저가 널리 통용되면서 ‘스티커’라 불리는 캐릭터 이모티콘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스티커를 가장 먼저 선보인 곳은 네이버 재팬이 일본에서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라인이다. 2011년 6월 서비스 출범 직후 얼마 뒤 ‘라인 프렌즈’ 스티커 이모티콘을 출시했다. 코니(토끼), 브라운(곰), 문(동그란 얼굴을 한 캐릭터), 제임스(금발 남자) 등 네 가지를 먼저 선보인 뒤 샐리(병아리), 제시카(고양이), 부장님(대머리 아저씨), 에드워드(애벌레), 레너드(개구리) 등 다섯 가지를 추가했다. 라인은 일본뿐 아니라 대만, 타이,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국민 메신저가 됐고, 네이버 재팬은 회사명을 아예 라인 주식회사로 바꿨다.
카카오 프렌즈, 라인 프렌즈 경쟁하며
국내 이모티콘 시장 성장
웹툰 작가·캐릭터 회사들도 가세
이모티콘에도 인권 개념 도입
하지만 라인이 유독 힘을 쓰지 못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한국이다. 2010년 3월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톡은 확고부동한 한국 대표 메신저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라인보다 살짝 늦긴 했지만, 카카오톡도 2011년 11월 이모티콘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2012년 9월 ‘카카오 프렌즈’라는 자체 캐릭터를 스티커 이모티콘으로 처음 내놓았다. 웹툰 작가 호조가 디자인한 캐릭터는 모두 일곱 가지. 제이지(두더지), 프로도(강아지), 네오(고양이), 튜브(오리), 어피치(복숭아), 콘(작은 악어), 무지(토끼)가 그들이다.
이들 캐릭터에는 기상천외한 탄생 스토리가 있다. 땅속나라 용왕이 위독해 토끼 간을 찾아 나선 두더지 요원 제이지(Jay-G·힙합스타 Jay-Z가 아님)는 무지를 잡으러 다니지만, 알고 보면 무지는 토끼가 아니라 토끼탈을 쓴 노란 단무지다. 그래서 이름이 무지였던 것. 단무지를 키워 무지로 만든 이는 작은 악어 콘. 그는 이제 복숭아를 키우고 싶어 어피치를 찾아 다닌다. 어피치는 자신이 유전자변이로 자웅동주가 된 것을 뒤늦게 알고 복숭아나무에서 탈출한 악동 복숭아다. 섹시한 뒤태로 사람들을 매혹시키지만, 생김새와 달리 성격이 급하고 과격하다.
카카오 프렌즈는 대번에 국민 캐릭터로 떠올랐고, 모바일 화면에서 뛰쳐나와 오프라인 캐릭터 상품으로도 출시됐다. 2013년 4월 무지 인형을 처음 선보인 이후 휴대폰 케이스, 쿠션, 피규어, 우산, 컵 등 650여 가지 다양한 제품을 서울 신촌·코엑스, 부산, 광주, 대구 등의 정규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다른 회사와 제휴해 빵, 아이스크림 케이크, 치약 등으로도 캐릭터 상품화했다. 라인 프렌즈 캐릭터도 서울 명동·가로수길 등 정규매장에서 다양한 캐릭터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외국에서 더 큰 인기를 얻고 있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특히 많이 찾는다.
메신저 캐릭터들은 티브이와 게임으로도 진출했다. 티브이엔(tvN)의 <코미디 빅리그> ‘까똑 친구들’이라는 꼭지에서 개그맨들은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로 분장했다. 유세윤은 고양이 네오를 그대로 재현해 큰 웃음을 안겼다.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에 자기 얼굴 사진을 합성해 이모티콘으로 쓸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마이콘’도 나왔다. 단 아무에게나 쓰다간 역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라인 프렌즈는 2013~2014년 일본 <티브이 도쿄>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방영됐다. 또 ‘라인 레인저스’라는 모바일 게임도 출시됐다.
카카오 프렌즈, 라인 프렌즈 등 공식 스티커 말고도 모바일 메신저에는 다양한 이모티콘이 있다. 웹툰 작가나 캐릭터회사들이 개발한 캐릭터를 이모티콘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이모티콘을 사용자에게 판매하면 그 수익을 메신저 회사와 캐릭터 개발자가 나눠 갖는다. 한시간컴은 여러 캐릭터를 개발해 카카오톡, 네이버 밴드 등 국내 업체는 물론 중국의 위챗 등 외국 메신저 회사에도 판매한다. 카카오톡에서 선보인 캐릭터 가운데는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신스틸러 ‘빨간 내복 기타맨’을 모티브로 한 강아지도 있다. 한시간컴의 이신영 콘텐츠사업팀장은 “개발한 캐릭터만도 30~40개로, 계속 새로운 캐릭터를 개발중”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모티콘을 개발하는 시대다. 라인은 지난해부터 일반인들이 이모티콘을 직접 만들어 팔 수 있는 크리에이터스 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 대만, 타이 등에서 특히 활성화돼 있다고 한다. 지난 1년간 156개 나라에서 39만명이 라인 크리에이터로 등록했으며, 10만여 가지가 판매되고 있다. 전체 매출액은 830억원에 이르며, 매출액 상위 10위권 제작자들의 평균 판매액은 4억6000만원이 넘는다.
이제는 이모티콘도 인권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애플은 지난 4월 아이폰 운영체계 아이오에스(iOS) 8.3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이모티콘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했다. 기존에는 한 가지였던 피부색을 인종별 여섯 가지로 세분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용자는 사람 얼굴이나 엄지손가락 이모티콘을 자신의 피부색에 맞게 바꿀 수 있다. 또 쌍쌍이나 가족을 상징하는 이모티콘에서 기존에는 남녀로만 돼 있던 커플을 남녀, 남남, 여여로 확대했다. 성소수자도 고려한 조처인 셈이다. 지난해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한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이렇듯 이모티콘은 상상력의 분출구이자 현실세계의 거울이기도 하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다음카카오·한시간컴·네이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