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대표적인 고급 리조트 중 하나인 ‘해비치호텔 앤 리조트 제주’가 ‘요리사 윤화영’을 선택했다. 지난달 27일 프렌치 파인 다이닝(프랑스식 고급정찬) 레스토랑인 ‘밀리우’를 열면서 메뉴 개발 등의 총괄업무를 윤화영(39) 셰프에게 맡겼다. 그는 1년간 밀리우를 진두지휘한다. 먹방, 쿡방에 심취한 이들에게 윤화영 셰프는 낯선 이름이다. 방송 섭외도 곧잘 거절하는 그는 요리사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나이 24살인 2000년에 프랑스로 건너가 ‘르 코르동 블뢰’, ‘프랑스 국립 고등조리학교’ 등을 졸업하고 ‘피에르 가녜르 파리’, ‘르 생크’ 등 미슐랭 가이드북 별점을 획득한 고급 레스토랑 4곳에서 일했다. 3년 전 귀국해 부산에 레스토랑 ‘메르씨엘’을 열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해비치호텔 앤 리조트 제주 이민 대표는 “10여년간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일한 그의 경력과 제주도와 비슷한 바닷가인 부산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점이 밀리우를 맡기게 된 이유”라며 “무엇보다 요리사로서 신뢰감이 컸다”고 말한다. 제주도는 매년 관광객이 늘면서 재방문객을 중심으로 지역 향토음식이 아닌 색다른 제주의 맛을 찾는 이들이 느는 추세다. 요즘 제주도는 밀리우뿐만 아니라 고급 이탈리아 레스토랑, 스시집들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 4일 밀리우에서 그를 만나 그의 요리세계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요즘 열풍인 ‘스타 셰프’에 관한 질문부터 던졌다. “‘스타 셰프’는 없다. ‘스타’가 있고 ‘셰프’가 있는 것이다. 요리를 방송에서 선보인다고 해도 방송 분야에서 활동해 인기를 끌면 그는 스타 방송인이다. 셰프는 주방에 있는 사람이다.” 몸이 하나인 요리사가 여러 날 촬영하는 방송과 하루 14시간 이상 일을 해야 하는 주방업무까지 모두 소화해내기란 쉽지 않다는 소리다. 다만 그는 주방 일과 방송을 적절히 조율하는 선에서 활동하는 요리사는 예외라고 말한다. “후배 중에는 식당 휴일에만 방송 촬영하는 이가 있다”며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자신(요리사)이 가끔씩 주방에서 빠져도 식당의 전투력이 떨어지지 않는 레스토랑의 셰프”도 예외라고 말한다. 신참 요리사 3~4명만 있는 주방에서 맛을 총괄하는 능숙한 실력의 셰프가 빠져버리면 손님이 받아볼 식탁의 수준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가 경험한 프랑스 요식업계나 방송은 유행에 민감하지 않았다. “레스토랑보다는 음식문화 자체가 발달한 프랑스에서는 푸덴터테인먼트(푸드+엔터테인먼트)가 발달하지 않았다”며 “고객접대 등이 많은 금융도시인 런던, 뉴욕 등에서 레스토랑 문화가 발달한다”고 한다. 매년 발표되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도 영국의 잡지 <레스토랑>이 매년 선정해 발표하는 행사다.
애플망고와 애플망고 드레싱, 허브오일을 곁들인 방어.
그가 이민 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인 이유는 한가지다. “프랑스는 해산물의 질이 좋다. 프랑스 요리의 맛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을 선택한 이유도 해산물 때문”이라며 “제주도는 국내 최고의, 훌륭한 어시장을 가진 곳”이라고 말한다. 최고의 해산물로 승부해보자는 뚝심이 그를 제주도로 향하게 했다. 밀리우의 메뉴는 대부분 제주도산으로 만든다. “광어, 농어, 당근, 블루베리, 애플망고 등 제철 식재료를 쓴다. 처음에는 한라봉으로 디저트를 만들다가 이제는 그 철이 지나 블루베리로 맛을 낸다.”
“‘셰프’라면 멋지게 보이지만
밥벌이가 녹록지 않다
14시간 노동을 감내하고도
요리가 즐거운 이가
선택하는 직업이다”
백포도주 식초에 장시간 저온 숙성한 토마토, 푸아그라 무스를 얹은 모스카토 젤리, 애플망고 소스와 허브오일을 결들인 방어, 소고기 육즙 소스와 검은 올리브를 곁들인 푸아그라, 완두콩 퓌레를 올린 구운 농어 등이 밀리우의 메뉴다.
제주도에서 영업하는 식당이 제주도산 식재료를 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 점이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다. 그의 장점은 다른 곳에 있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라며 “내 음식은 육수를 많이 쓴다. 조금만 온도가 떨어져도 육수가 응고되고 짜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손님의 입안에서 최적의 맛을 발휘하는 온도를 유지하는 게 그의 솜씨다. “주로 소금으로 간을 하는데 한국의 간과 프랑스 음식의 간은 체계가 달라 어려움이 있다.” 그는 식재료로 쓰는 달걀도 자체 제조해 쓴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달걀의 농도와 프랑스 요리에 적합한 달걀의 농도가 다르다”며 노른자에 물을 섞어 농도를 맞춘다고 한다. “밀가루도 강력분과 박력분을 섞고, 박력분에 몰트(맥아)파우더를 섞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의 섬세한 기준에는 국산 생크림과 우유의 농도도 프랑스 요리와 맞지 않다. 이것조차 자신의 조리법을 찾았다. 메뉴 개발 단계에서 그는 ‘프렌치식 물회’도 만들었다. 토마토와 모스카토 와인이 주재료인 묘한 국물맛의 요리라고 한다. 현재 밀리우에는 초창기 메뉴들은 많이 없어지고 좀더 보완된 음식들이 차림표에 있다. 단품요리뿐만 아니라 3가지씩 준비된 애피타이저, 생선요리, 고기요리, 디저트 중에서 손님 스스로가 골라 구성하는 코스가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뭘까? 프랑스 요리전문가답게 ‘뵈프 부르기뇽’(고기, 각종 채소가 들어간 스튜)이나 ‘에스카르고’(달팽이 요리) 같은 음식일까? 그는 단호하게 “아내가 해주는 음식(한식)”이라고 말한다.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맛을 아는, 가장 친한 친구다.” 아내 박현진(38)씨는 맵지 않은 김치찌개와 순두부찌개를 만든다.
애처가인 그는 현재 메르씨엘을 공동운영하는 박씨를 2005년에 파리에서 만나 2007년에 결혼했다. 미대를 졸업한 박씨는 가업을 잇기 위해 프랑스로 의료행정을 공부하러 갔다가 르 코르동 블뢰 초급 과정까지 밟았다. 사진을 공부하러 프랑스에 갔다가 음식에 빠진 윤화영 셰프와 삶의 궤적이 비슷하다. 둘은 단박에 인생의 짝꿍이 됐다. 2014년에 이들 부부는 <파리에는 요리사가 있다>를 출간했다. 저자는 아내지만 공동 작업의 성격이 강하다. 책에는 그의 조언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 책은 파리 미식여행을 준비하는 여행객을 위한 가이드북이다. 30~50유로(한화 3만~6만원대) 정도 가격대의 레스토랑 49곳을 소개한다.
그는 자신을 성장시킨 프랑스 파리에서 레스토랑을 여는 것이 꿈이다. “수많은 일본인들이 파리에서 맛으로 승부해 성공했다. 이제 우리도 그런 때가 왔다.” 2008년에 그는 파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열 계획이었다. 그해 9월에 터진 ‘리먼 사태’(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파리 레스토랑 업계는 심각한 도산 위기에 봉착했다. 그도 꿈을 접어야 했다.
그가 후배를 향해서 마지막 조언을 남긴다. 서양에서 철학과 실력을 겸비하고 최소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요리사를 두고 ‘셰프’라고 부른다. 화려해 보이는 그 이름의 환상을 버리라고 말한다. “‘셰프’라고 하면 멋지게 보이지만 밥벌이가 녹록지 않다. 수익을 고려한다면 파인 다이닝을 하면 안 된다. 한가지 메뉴를 파는 곳이 낫다. 14시간 노동을 감내하고도 요리가 즐거운 이가 선택하는 직업이다.”
제주/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 해비치호텔 앤 리조트 제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