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장’(장석원) 경제학과를 나와 회사를 다니다 2006년부터 ‘비정규직 아티스트 밥장(bob Jang)’으로 변신했다. 최근엔 ‘펜 하나 들고 떠나는 세계여행’ 체험기를 블로그(blog.naver.com/jbob70)와 책으로 나누며 행복을 느끼는 여행큐레이터로도 인기다.
‘사서 고생하기’와 ‘집 나가면 개고생’을 합하면 어떤 여행이 될까? ‘중국에서 기차 타고 몽골 가기’는 분명 ‘톱10’에 오를 만하다.
“편하게 비행기 타지 뭐 땜에 올같이 별난 무더위에 여까지 와서 기차를 탈라 합니까?” 지난달 21일 밤 중국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도착한 일행 30명을 맞은 재중동포 가이드의 첫마디가 그랬다. 이튿날 오전 몽골행 대륙횡단 국제열차를 타러 가기에 편리한 베이징역 바로 인근 호텔로 안내해주는 길이었다.
일행이 선택한 여정은 베이징~울란바토르~모스크바를 잇는 트랜스몽골리안 레일웨이(TMGR)로 울란바토르까지 1356㎞를 26시간53분에 걸쳐 달린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가면 2시간30분이면 닿는 거리를 1박2일 걸려 가는 것이다. 물론 비용이 덜 드는 것도 전혀 아니었다. 일행 중 누구도 그 물음에 굳이 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남북철도잇기 운동을 통해 평화와 통일의 꿈을 키우는 희망래일의 회원과 그 가족들이라고 인사를 나눴다. 그러자 친척들이 많아 남북 모두를 방문해봤다는 동포 가이드 아저씨도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자신도 “첫 경험”이라며 기차에 동승했다.
7월22일 오전 11시22분 베이징역사를 서서히 빠져나온 열차는 ‘만리장성의 북쪽 문’이라는 장자커우난에서 한번 정차한 뒤 밤 11시께 국경도시 얼롄에 이르렀다. 말로만 듣던 바퀴 교체 작업을 하는 곳이다. 3시간 꼬박 걸렸다. 몽골의 첫 도시 자민우드로 넘어오니 7월23일 새벽 3시. 역무원들이 줄지어 구보를 하고 여권을 걷어 입국 심사를 하는 분위기는 제법 삼엄했다. 돌발사태였다. ‘몽골 비자 미비’로 가이드 아저씨가 하차를 당했다. 끝내 이 무모한 여행의 의미를 체험하지 못하고 돌아간 그에게 정일근 시인의 ‘울란바토르행 버스를 기다리며’라도 들려주고 싶었다. 다시 출발한 기차의 창 밖으로 먼동이 터오니 드디어 남고비의 황량한 사막 풍광이 펼쳐진다. 전날 지나온 산시성과 네이멍구 지역의 옥수수밭이나 나무들의 초록빛과 완연히 다른 누런빛이 지치도록 끝없다. ‘몽골의 슈바이처’로 존경받는 항일지사 이태준 선생도 100년 전 이 기차를 타고 광야를 달리며 조국의 독립을 꿈꿨다고 했던가. 낮 12시 초이르에서 잠시 쉰 기차는 예정보다 한시간쯤 늦은 오후 4시 울란바토르역에 도착했다.
어머니와 함께 세번째 대륙 체험에 나선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장석원)의 그림일기와 사진으로 4박6일 여행기를 함께 나눈다.
2015년 7월21일 저녁 7시 몽골을 가기 위해 인천공항발 베이징행 비행기에 올랐다. 베이징역 부근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끝낸 시각이 밤 11시, ‘야행성’ 일행 10여명과 막 문을 닫으려는 술집에 들어갔다. 맥주파는 칭다오, 독주파는 고량주로 나뉘어 사진을 보고 되는대로 고른 안주들이 뜻밖에 맛있다고들 반겼다. 새벽 1시, 그래도 아쉬운 ‘끼리끼리’는 주머니에 있는 위안화만큼 편의점에서 술을 사들고 들어가 호텔방에서 2차로 베이징의 밤을 밝혔다. 이튿날 아침 7시, 끼리끼리는 ‘1위안으로 콩물에 즉석 꽈배기까지 먹어봤다’는, 한 일행의 말에 꾀여 거리음식을 찾아 나섰다. 그 화려한 고급호텔 조식을 과감히 뿌리치고. 콩물 맛이 나는 우유와 계란 프라이를 곁들인 깨빵 세트에 모두 26위안이 들었단다. ‘중국식 허풍’에 속은 셈이었지만 다들 ‘무용담’처럼 맛기행을 자랑했다.
22일 오전 11시22분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남짓 베이징역 광장에 모이니 가이드 아저씨가 절대로 줄을 놓치지 말라고 신신당부다. 첫번째 여권과 차표 검사 창구를 한 사람씩 통과해 겨우겨우 들어가니 짐 검색대 역시 줄도 없이 북새통이다. ‘인구대국 맞다.’ 그새 사라졌던 최고령 일행이 뒤늦게 가이드를 만나 플랫폼에 들어서니 중학생 손자의 얼굴이 그제야 밝아졌다. ‘베이징~울란바토르~모스크바’ 안내판 앞에서 저마다 인증샷을 찍고 마침내 ‘4인 침대칸’에 두번째 짐을 풀고 누웠다. 대륙을 향해 출발~!
몽골 초이르역에서 ‘김치찌개 컵라면’(중국 농심산)과 음료수를 파는 상인들.
22일 밤 11시~23일 새벽 3시 드디어 중국 쪽 국경도시 얼롄역, 기차는 여러 차례 앞뒤로 오가며 레일을 바꾸는가 싶더니 ‘환륜소’에 멈췄다. 그런데 한마디 안내 방송이 없다. 역사조차 불이 꺼져 잘 보이지 않는다. 내리지도 못하게 했다. 그나마 심야여서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귀동냥을 해 왔다. 그런데 정확하게 3시간 만에 바퀴를 간 기차가 몽골 쪽 국경도시 자민우드에 도착하자 또 돌발사태가 터졌다. 중국동포 가이드가 ‘비자 미비’로 하차를 했다. 중국~러시아 대국에 ‘낀 나라’ 몽골의 경계가 느껴졌다.
중국식 표준궤에서 몽골·러시아식 광궤 바퀴로 교체 중.
24일 오전 9시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50㎞ 떨어진 에르덴 하늘마을로 향했다. 우리 환경단체 푸른아시아에서 5년째 황사방지 조림사업을 해 해마다 2만여그루씩 10만그루 넘게 자라고 있다고 했다. 지난여름 희망래일 회원들이 심어놓은 유실수들이 1m 키로 자랐다. 30여명이 양동이 2개씩 들고 나서니 할당된 물주기 작업이 순식간에 끝났다. 오후엔 차로 30분쯤 더 들어간 테렐지국립공원에서 승마 트레킹 도전, 때마침 가랑비가 내렸다. 몽골에서 비를 몰고 손님을 가장 환대한다는 말에 기꺼이 2시간을 맞았다.
불에 달군 초토(자갈)와 함께 2시간 넘게 익힌 양고기찜 허르헉.
24일 저녁~25일 밤 10시 테렐지국립공원 일대 완만한 능선부마다 전통 천막주택 게르 펜션촌이 그림처럼 앉았다. 우리가 묵은 게르촌 ‘미라지’는 싱글침대와 난로가 있는 4인실, 공동세면장과 화장실이 번거롭기는 했지만, 전통음식인 양고기찜 ‘허르헉’과 마유주 ‘아이락’은 별미였다. 몽골에서 마지막이자 하루뿐인 초원의 밤, 비구름이 걷힌 덕분에 별 보기에도 성공했다. 폭포처럼 쏟아진다는 미리내는 이다음 고비 사막 체험 때를 기약하기로 했다.
몽골/글·사진 김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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