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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전쟁 된 ‘과자전’

등록 2015-10-14 19:07수정 2015-10-15 16:55

[매거진 esc] 라이프
지난 주말 열린 초대형 과자 축제…한꺼번에 몰려든 수많은 인파로 북새통, 운영진 사과
12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지난 8일 서울 이태원 작업실 ‘워크스’에서 만났을 때와는 정반대다. 그때만 해도 열의와 패기가 넘쳤던 28살 동갑내기 세 젊은이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이들이 지난 10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주최한 행사 ‘과자전’이 미숙한 운영으로 수많은 이들로부터 거센 항의와 질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현대미술 작가 마르셀 뒤샹이 변기로 만든 작품 ‘샘’을 문새별 디자이너가 설탕과자로 만들었다. 사진 서정민 기자
현대미술 작가 마르셀 뒤샹이 변기로 만든 작품 ‘샘’을 문새별 디자이너가 설탕과자로 만들었다. 사진 서정민 기자
 과자전 참관객들이 과자를 사려고 길게 줄서 있다. 사진 서정민 기자
과자전 참관객들이 과자를 사려고 길게 줄서 있다. 사진 서정민 기자

과자전의 시작, 그리고 성장

그날 일에 앞서 먼저 과자전이 뭔지부터 알아보자. 과자전의 출발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대 공업디자인과 07학번 동기인 이연정·이하림씨는 2012년 이태원에 워크스라는 이름의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자신들 작업실로 쓰면서 다른 작가들의 창작품을 위탁판매하는 공간으로도 활용하고자 했다. 이를 널리 알리려고 디저트 플리마켓(벼룩시장)을 기획한 것이 그해 6월 처음 연 과자전이었다. 에스엔에스(SNS)로만 홍보했고 판매자(셀러)도 5명만이 참가했을 뿐이지만, 나름 반응이 괜찮았다. 같은 해 11월 2회 과자전을 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워크스 앞에 긴 줄이 생겼다. 그해 겨울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07학번 동기 박지성씨가 군복무를 마치고 워크스에 합류했다.

2013년 6월 서울 홍대 앞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3회, 11월 불광동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4회, 2014년 11월 성수동 복합문화공간 ‘자그마치’에서 5회를 열었다. 키덜트 문화의 바람을 타고 귀엽고 예쁜 디저트 사진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에스엔에스에 올리는 게 유행처럼 번지면서, 과자전의 인기도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더 넓은 장소로 옮겨도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몰려 긴 줄을 이뤘다. 1시간 넘게 기다리는 건 예삿일이었다. 2014년 12월에는 외전 격인 ‘크리스마스 과자전’을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대형 전시관 킨텍스에서 열었다. 킨텍스 쪽이 ‘크리스마스 페어’를 주최하면서 과자전을 딸림행사로 유치한 것이다. 과자전이 크게 성공하자 냠냠전, 설탕전, 달콤전, 달달전, 당충전 등 비슷한 행사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어떻게 과자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판을 벌일 수 있느냐’는 얘기도 들어요. 처음에는 과자전이 ‘온리전’ 코드로 받아들여졌어요. 하위문화 중의 하위문화, 예컨대 만화 <슬램덩크> 관련 2차 창작품을 전시·판매하는 ‘슬램덩크 온리전’ 같은 거죠. 그러다 입소문을 타고 어찌어찌해서 대중행사가 돼버렸어요.” 이연정씨가 설명했다. 과자전은 이제 워크스의 주요사업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하림씨는 “우리끼리 소박하게 재미삼아 시작한 것이 지금은 본업처럼 됐다”며 “우리도 예상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젊은 디자이너 셋 모여
소박하게 연 디저트 플리마켓
SNS 입소문 타고 급성장
너무 커진 판 미숙한 운영에
사람들 항의 빗발쳐 전액 환불
“반성과 숙고 거쳐 거듭나겠다”

 올림픽을 모티브로 한 과자들. 사진 서정민 기자
올림픽을 모티브로 한 과자들. 사진 서정민 기자

급팽창, 그리고 폭발

이들은 내친김에 6회 과자전의 판을 크게 키우기로 했다. 장소를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으로 정했다. ‘2015 서울과자올림픽’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관련 캐릭터를 디자인했다. 천가방, 머그컵, 배지, 금메달 등 캐릭터 상품도 만들었다. 단순한 플리마켓 차원을 넘어 축제처럼 만들자는 뜻으로 공연도 준비했다. 지난 10일 열린 6회 과자전에선 트램폴린,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 위댄스, 이랑밴드 등 실력파 인디밴드들이 한켠에 마련된 무대에 올랐다. 아마추어 제빵사부터 작은 카페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 팬덤을 거느린 유명 제빵사까지 130여 판매자가 입점했다. 70년 전통의 빵집 태극당이 기획전인 ‘과자의 전당’에 참여했고, ‘전국과자자랑’에는 울릉도 명이빵, 울진 대게빵, 울산 단디만주 등이 참가했다.

대관료, 운영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처음으로 티켓을 유료 판매(예매 5000원·현매 7000원)했다. 예매분 1만5000장이 순식간에 매진돼 1000장을 추가 판매했다. 운영 시간(오전 10시~오후 5시)과 장소 넓이를 고려하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이 행사장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각 예매처 창구에서 예매 티켓을 찾으려는 줄, 티켓을 찾은 뒤 행사장에 입장하려는 줄이 좁은 공간에서 얽히고설켜 아수라장이 됐다.

어렵사리 안으로 들어가면 이번에는 과자를 사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인기 코너마다 북새통을 이뤘고, 새치기하는 얌체족, 대량으로 구매하는 싹쓸이족 때문에 곳곳에서 시비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정오도 되기 전에 대부분의 과자들이 매진됐다. 일부 판매자들이 전날 열린 삼성카드 주최 ‘홀가분 나이트 마켓’에도 참가한 탓에 충분한 재고량을 확보하지 못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은 허탈함을 넘어 분노했다. 오전 9시40분에 왔다는 최아무개(19)씨는 “이번에 처음 와봤는데, 이건 과자전쟁이다. 다음에 또 올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에스엔에스에선 과자전의 미숙한 운영을 질타하는 글이 넘쳐났다.

 운동화 모양의 케이크. 사진 서정민 기자
운동화 모양의 케이크. 사진 서정민 기자
 과자전의 인기 제품인 경기도 오산 카페 ‘담케이크’의 선인장 컵케이크는 일찌감치 매진됐다. 사진 서정민 기자
과자전의 인기 제품인 경기도 오산 카페 ‘담케이크’의 선인장 컵케이크는 일찌감치 매진됐다. 사진 서정민 기자

좌절, 그리고 또다른 시작

워크스는 당일 밤 과자전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로 규모를 키웠으나 그에 따른 준비가 부족했던 점, 스태프 교육과 관리가 미흡했던 점, 적정 인원 추산에 실패했던 점, 과자전 행사의 특성상 시작 때 많은 인원이 몰릴 것을 대비하지 못했던 점” 등을 되짚고는 “깊은 사죄의 마음을 전하며 모든 분들께 전액 환불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사람들은 수백개의 댓글을 달아 의견을 제시했다. “다시는 과자전 하지 말라”는 분노의 댓글부터 아쉬운 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댓글까지 다양하다.

박지성씨는 “되돌아보니 다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실수가 있었다. 죄송한 마음뿐이다. 아직 조심스럽긴 하지만, 많은 분들의 지적과 비판을 받아들여 다음 행사 때 개선할 점을 약속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판매자 대비 참관객 수를 더 적은 비율로 맞출 것, 스태프 사전교육을 강화하고 더 많은 인원을 배치할 것, 판매자와 더 긴밀히 연락해 종류와 수량 약속을 강화할 것, 참관객의 입장이나 판매자의 입점을 시간대별로 나누는 식으로 운영할 것 등을 검토해 참관객의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며 “반성과 숙고의 시간을 거쳐 더 섬세하고 알찬 과자전으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다.

사실 그들은 이번 인터뷰가 기사화되는 걸 꺼렸다. 불편을 겪은 이들의 화를 더 돋울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였다. 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는 차원에서라도 기사화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고, 그들의 동의를 구했다. 과자전을 이틀 앞둔 지난 8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고, 12일 전화와 전자우편으로 추가 인터뷰를 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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