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1988 라이프 / 1988년 첨단 전자장비·놀이문화 경향
※ 이 기사는 1988년 신문에 실리는 걸 가정해 쓴 것입니다.
청소년 오락실 탈선 심각…대책 필요
서울 도봉구 미아삼거리역 인근의 한 오락실. 들어서자마자 담배연기가 자욱하다. 천장에 달린 선풍기 바람으로 인해 오락실 전체가 흡사 흡연실을 방불케 한다. 앳돼 보이는 학생들도 입에 담배를 물고 폭력적인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이 하고 있는 것은 ‘더블드래곤’이라는 새로 나온 액션 게임.
일본 테크노스 재팬에서 개발한 이 게임은, 무술인 2명이 납치된 애인을 구하러 가면서 적과 싸우는 내용이다. 화면 안에는 피가 낭자하다. 칼을 던지기도 하고, 야구 배트를 휘두르기도 한다. 납치된 애인은 짧은 미니스커트와 같은 선정적 옷차림을 하고 있다. 이러한 유해물에 버젓이 우리 청소년들이 노출되고 있는 것. 근처 중학교에 다닌다는 한 학생은 “요즘 최고의 유행 게임이다. 수업 끝나고 한판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말했다. 폭력성만이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이 접해서는 안 되는 카드게임이나 마작과 같은 사행성 게임도 버젓이 진열돼 있다.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다.
게임 자체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오락실은 최근 위조화폐의 새로운 근원지로 떠올랐다. 10원짜리 동전 테두리에 주름이 잡힌 공업용 테이프를 감아 100원짜리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게임기들은 이 위조동전을 100원짜리로 인식한다. 예전 테니스줄을 동그랗게 말아 동전 투입구를 쑤시거나, 전기라이터의 점화플러그로 동전 투입구에 전기쇼크를 주어 동전으로 인식하게 하는 ‘튀기기’ 방식들이 잘 먹히지 않자 나온 새로운 방식이다.
동전 교환대에 있던 오락실 주인은 “하루에 몇십개씩 가짜 동전이 발견된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울상을 지었다. 청소년들이 유해한 게임을 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 아니냐고 기자가 따지자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렇듯 불법과 탈선의 온상이 된 오락실에 대한 경찰의 단속이 시급하다.
어두컴컴 오락실보다 안방에서…16비트 가정용 게임기 인기 풍부한 색깔과 음향으로 오락실 오락 못지않은 수준의 게임을 집에서 즐길 수 있는 16비트 가정용 게임기가 안방을 빠르게 점령하고 있다. 이전까지 안방을 독차지하던 대우전자의 8비트 게임기 ‘재믹스’가 위협받고 있다.
선두주자는 일본전기(NEC)에서 만든 ‘피시(PC)엔진’이다. 1987년에 개발된 이 게임기는 중앙처리장치는 8비트이지만 그래픽 처리 장치가 16비트라 기존 게임기보다 월등하게 좋은 그래픽을 자랑한다. 특히 이 게임기는 기존 다른 게임기가 사용했던 ‘롬팩’보다 얇고 가벼운 ‘휴카드’라는 저장장치를 사용한다. 또 별도로 판매되는 시디롬2(CD-ROM2)를 구입해 부착하면, 시디의 대용량 저장능력을 이용해 더욱 생생한 그래픽과 음향을 즐길 수 있다.
피시엔진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세가의 ‘메가드라이브’도 인기다. 중앙처리장치까지 16비트를 사용해 진정한 16비트 게임기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특히 64색을 동시에 내면서 한 화면에 2개의 스크롤 화면을 구현할 수 있는 그래픽 능력이 강점. 하지만 두 게임기 모두 정식 수입이 안 돼 서울 용산 전자상가 등에서 밀수입한 제품이 거래되고 있다. 대부분의 게임이 왜색인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무분별하게 왜색 게임에 노출되지 않도록 지도가 필요하다.
※피시엔진은 1989년 대우전자가 ‘재믹스 셔틀’이란 이름으로 수입했고, 메가드라이브는 삼성전자가 ‘수퍼겜보이’란 이름으로 수입해서 팔았다. 이 두 게임기는 닌텐도가 1990년 ‘슈퍼 패미컴’을 발매하면서 사실상 몰락의 길을 걸었다.
가정자동화 시스템 도입 눈앞…주부들 가사노동 해방될까
자동차에 타면 내장된 컴퓨터가 자동으로 작동된다. 목적지를 입력하면 안 막히는 길을 알아서 안내해준다. 집 안에서 옷을 사거나, 은행업무를 볼 수 있다. 외출할 때 버튼만 누르면 로봇이 집 구석구석을 알아서 청소해준다. 전화를 걸어 전기밥솥을 켜고, 조명을 끌 수 있다.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오는 미래의 모습이 아니다. 조만간 실현될 수도 있다. 컴퓨터의 발달 덕분이다. 반도체 소자인 마이크로프로세서 등 하이테크의 발달로 삶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 전문가들이나 쓰는 컴퓨터가 일반 가정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른바 가정자동화(HA·Home Automation)라 불리는 최첨단 시스템이 본격 도입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실용화된 상태다. 지난해 서울 88훼밀리타운을 시작으로 동일아파트, 보라맨션 등 1만여세대에 이 에이치에이시스템이 보급됐다. 현재 이 기술은 금성통신, 삼성반도체통신, 동양정밀 등이 개발했다. 정보를 전달하는 통신망은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전화망이나 유선방송망을 이용한다.
선두주자는 금성통신이다. 금성통신은 순수 자체기술로 에이치에이시스템을 만들어 88훼밀리타운 등 8701세대, 백조맨션 등 5개 주택 4060세대와 공급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후발주자인 대우통신과 현대전자는 시장 진출을 모색중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에이치에이시스템이 정착되면 주부들의 삶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가사노동에서 해방돼 여가시간이 생기며 다양한 취미생활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여유시간이 늘어난 주부들의 외도가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보통 주부들이 장을 본다, 은행에 다녀온다는 핑계로 무도장에 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에이치에이시스템은 오히려 주부들의 불필요한 외출을 줄여줄 것이란 의견이다. 아무튼 우리의 눈앞에 컴퓨터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4메가디램 개발…슈퍼컴퓨터 첫 가동…과학 한국 시동
1988년 2월 한국전자통신연구소와 반도체연구조합이 시험생산에 성공한 4메가디(D)램은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기술을 6개월차로 따라붙는 쾌거로 평가받는다.
이번에 개발된 4메가디램은 1㎝의 새끼손톱만한 크기에 400만개의 트랜지스터를 넣어 51만2000자의 알파벳(신문 32쪽 분량)을 기억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다. 4메가디램은 일본의 히타치, 후지쓰, 도시바, 미국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이미 개발한 상태다.
1988년 12월에는 한국 최초로 초대형 슈퍼컴퓨터가 첫 가동됐다. 그동안 슈퍼컴퓨터는 11월 현재 미국 130대, 일본 62대, 영국 25대 등 세계적으로 255대가 있었지만 한국에는 한 대도 없던 상황이었다.
가동된 슈퍼컴퓨터는 미국 크레이사의 크레이2S/4-128 기종으로 초당 20억회의 연산능력과 40기가바이트의 보조기억용량을 갖고 있다. 설치 예산만 417억원이다. 슈퍼컴퓨터의 가동으로 앞으로 기초과학은 물론 산업 분야의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15년 9월 삼성전자는 12기가(4메가의 3000배 용량) 모바일용 디램 양산에 성공했다. 현재의 슈퍼컴퓨터는 초당 1000조회 이상의 연산처리가 가능하다.
외제 자동차 수입 불티 외제 자동차 수입 자유화 두달 만에 226대가 수입돼 국산차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대형 승용차 시장의 10~20%를 차지하고 있어 자칫 국내 대형차 시장이 고사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스런 목소리가 나온다. 1988년 7월8일 상공부에 따르면 외제 자동차 수입이 자유화된 4월부터 지난 6월22일까지 모두 262대의 외제 자동차가 수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그랜저, 슈퍼살롱 등 대형 승용차의 국내 수요가 연간 1만~2만대인 것을 볼 때 10~20%나 차지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외제 자동차는 효성물산(서독 폴크스바겐), 코오롱상사(서독 BMW), 한진(스웨덴 볼보), 두산산업(스웨덴 SAAB), 쌍용(프랑스 르노) 등 재벌기업이 죄다 수입하고 있어 논란이 일 전망이다. ※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2015년 한해 동안 23만5000대의 수입차가 판매됐다.
포니2 가격 인상…택시기사들 반발
올해 초 포니2의 생상라인을 축소하고 생산 중단까지 계획했던 현대자동차가 택시업계 요청을 받아들여 5월부터 출고를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최근 부품업체들의 잇단 노동쟁의 때문에 원가가 상승했다며 종전 415만3000원에 팔던 포니2(LPG용)의 가격을 4.2% 올린 432만9000원에 팔겠다고 밝혔다. 이에 회사택시 대표들과 개인택시 조합은 현대자동차 쪽에 가격 인상 철회와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포니2는 1990년 완전 단종됐다.
이상은 1988년 <한겨레> <경향신문> <매일경제> 기사를 참조한 것입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더블드래곤
어두컴컴 오락실보다 안방에서…16비트 가정용 게임기 인기 풍부한 색깔과 음향으로 오락실 오락 못지않은 수준의 게임을 집에서 즐길 수 있는 16비트 가정용 게임기가 안방을 빠르게 점령하고 있다. 이전까지 안방을 독차지하던 대우전자의 8비트 게임기 ‘재믹스’가 위협받고 있다.
피시(PC)엔진
메가드라이브
외제 자동차 수입 불티 외제 자동차 수입 자유화 두달 만에 226대가 수입돼 국산차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대형 승용차 시장의 10~20%를 차지하고 있어 자칫 국내 대형차 시장이 고사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스런 목소리가 나온다. 1988년 7월8일 상공부에 따르면 외제 자동차 수입이 자유화된 4월부터 지난 6월22일까지 모두 262대의 외제 자동차가 수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그랜저, 슈퍼살롱 등 대형 승용차의 국내 수요가 연간 1만~2만대인 것을 볼 때 10~20%나 차지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외제 자동차는 효성물산(서독 폴크스바겐), 코오롱상사(서독 BMW), 한진(스웨덴 볼보), 두산산업(스웨덴 SAAB), 쌍용(프랑스 르노) 등 재벌기업이 죄다 수입하고 있어 논란이 일 전망이다. ※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2015년 한해 동안 23만5000대의 수입차가 판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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