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주 ‘곽현주 컬렉션’ 대표는 데뷔한 뒤 13년 동안 꾸준히 화려하고 독특한 느낌의 옷을 선보여왔다. 서울 신사동 쇼룸에서 만난 곽 대표.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스타일
국내 디자이너 최대 모임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에서 ‘올해의 디자이너상’ 수상
국내 디자이너 최대 모임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에서 ‘올해의 디자이너상’ 수상
“예전엔 성격이 무척 내성적이었어요. 말수도 적어서 속에 쌓인 걸 말로 푸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 대신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옷으로 마음에 있는 걸 많이 표현했는데, 그게 지금 디자인에 반영되는 것 같아요. 제 옷은 결국 제 자신이잖아요.”
데뷔 14년차 디자이너인 곽현주 ‘곽현주 컬렉션’ 대표는, ‘튀는 옷’으로 유명한 자신의 디자인이 결국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화려한 색상, 과감한 패턴과 무늬를 세련되게 사용해, 아이돌 가수들의 무대 의상이나 드라마 협찬 의상으로도 선호도가 높은 게 곽 대표의 옷이다. 곽 대표는 지난해 말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의 최대 모임인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가 주는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받았다. 중견 디자이너, 나아가 국내 디자이너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지금, 여전히 그가 주목받는 디자이너인 비결이 뭘까? 지난 8일 곽 대표를 만났다.
예전엔 내성적 성격이라
마음을 옷으로 표현했죠
화려하고 과감한 디자인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는 중이에요
-‘올해의 디자이너상’을 받았는데, 어떤 기분이 들었나?
“(2003년) 데뷔한 뒤로 2016 봄/여름 컬렉션까지, (1년에 두차례 열리는 서울패션위크에서) 한번도 쉬지 않고 쇼를 했다. 더구나 작년엔 메르스다, 불경기다, 지치고 힘들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큰 상을 받아서 ‘여태 한 게 헛되진 않았구나, 그동안 수고했다’ 싶었다. 처음엔 얼떨떨했는데 생각할수록 신나서 자랑하고 다닌다.(웃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도 생겼다.”
-지난가을 서울패션위크에서 선보인 컬렉션 주제가 ‘달의 문’(A door in the moon)이었다. 어떤 의미인가?
“외국 여행 가서 문들을 보니까 되게 이쁘더라. 어디를 가나 저 문을 열면 반대쪽에 뭐가 있을까 상상하기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문은 영어로 달(moon)이기도 한데, 내 인생에서 추구하는 비전을 그 달로 생각했다. 달로 가는 문. 문을 열고 나가면 다른 게 있고, 또 열고 나가면 또 다른 게 있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일러스트를 그렸다.”
-내 인생에서 추구하는 비전이 곧 디자인 철학일 텐데, 그게 뭔가? 화려하고 튀는 디자인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
“내 이름 걸고 하는 쇼니까 나 자신을 표현하는 거다. 쇼 할 때 무대로 옷이 나가면 사람들이 ‘와, 곽현주 걸어나온다’고 웅성거린다. 내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옷에 반영하는 거니까 내가 만든 옷이 곧 나 자신이다. 화려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것 같다. 예전엔 성격이 되게 내성적이어서 마음에 있는 걸 옷으로 많이 표현했다. 대학 땐 수업도 안 빠지고 숙제도 늘 열심히 해 갔는데, 용무늬 점퍼에 허벅지까지 오는 부츠 차림으로 검정 립스틱 바르고 다니고, 만들어 간 숙제도 세다 보니 선생님들이 ‘욕구불만 있냐’고 묻곤 했다. 난 그저 옷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는 거다.”
-평소에 영감을 어디서 얻나?
“일상생활에서 많이 얻는 편이다. 이번엔 문 사진이었고, 그 전 시즌엔 눈물이었다. 그때가 <패션왕비밀의 상자>(케이블 채널 <에스비에스 플러스>에서 한 디자인 경연 프로그램)를 할 때였는데, 많이 힘들었다. 비 오는 날 작업실 창가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 한참을 울고 나니 좀 나아졌는데, 그때 눈물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초현실적으로 표현해 컬렉션을 했다. 그렇게 그때그때 꽂히는 대상이 생긴다.”
-요즘엔 뭐에 꽂혀 있나? 다음 쇼를 준비해야 할 시기인데.
“<로미오와 줄리엣>. 원수 집안의 딸과 아들이 서로 사랑하는 건데, 그런 운명은 누가 만드는 걸까. 얼마 전에 방송에서 아주 옛날 영화랑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나오는 영화랑 두개를 다 해주던데, (디캐프리오가 나왔던 1996년작은) 음악이나 화면이 자극적이기도 하지만 다시 봐도 로맨틱했다.”
-지금까지 만든 옷들 중에 어떤 옷을 가장 좋아하나?
“항상 최근에 만든 걸 더 좋아한다. 언제나, 이번이 지나고 나면 다음엔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옷을 만들려고 애를 써서 그런 것 같다.”
-자신이 만든 옷만 입을 순 없을 테고, 평소 어떤 브랜드나 디자이너의 옷을 좋아하나?
“시즌마다 다르다. 톰 포드가 이브생로랑에서 한 마지막 컬렉션이 너무 좋아서 꼭 하나는 갖고 싶었는데, 홍콩에서 세일을 하기에 재킷을 하나 샀다. 지방시에서 네오프렌 티셔츠가 처음 나왔을 때도 너무 마음에 들어서 샀고, 이번 구치 컬렉션에서도 찜해둔 게 하나 있다. 대학 때 산 돌체앤가바나의 호피 벨벳 롱코트가 있는데, 2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입는다. 어떤 디자이너든 항상, 모든 옷이 훌륭할 순 없기 때문에 그때그때 나한테 감동을 주고, 간직하고 싶은 이미지를 주는 게 있으면 하나씩 사는 편이다.”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을 고를 때 ‘실패하지 않는 팁’ 같은 게 있다면?
“해당 시즌에 그 디자이너가 밀고 있는 아이템이 뭔지, 무늬나 색상이 뭔지를 일단 알아야 된다. 그런 뒤 자기 체형에 가장 잘 맞는 걸 하나 사면, ‘이게 누구 옷이다’라고 말 안 해도 옷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다 안다. 또 내가 외국 디자이너들의 옷을 고를 때 그러듯 소비자들도 디자이너의 스토리나 감성을 간직할 수 있는 옷을 고르면 좋을 것 같다.”
-올 봄여름엔 어떤 옷이 유행할 것으로 보나?
“작년에 야자수 무늬가 좀 나왔는데, 올해도 도시에 있어도 낙원에 간 것 같은 느낌의 그런 화려한 무늬와 색감이 많이 나올 것 같다. 크루즈룩(휴가지 패션) 같은 느낌 말이다. 그래서 나도 원피스를 여행 가서 편하게 입을 수 있고, 도심에선 재킷 하나만 걸치면 (단정하게) 입을 수 있게 만들었다. 래시가드도 바닷가뿐만 아니라 운동할 때나 일상생활에서 유행할 거다. 여기가 해변일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화끈한 느낌으로, 노출 수위도 좀 높아질 것 같다.”
-아이돌의 무대 의상이나 드라마를 위해 별도로 만든 옷은 나중에 어떻게 하나?
“아이돌의 경우, 그쪽에서 주문이 오면 만드는 거라 돈을 받고 판매하는 형식이다. 드라마의 경우엔, 출연자가 입고 나면 그 옷을 약간 수선하거나 변형해 파는 경우가 많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마음을 옷으로 표현했죠
화려하고 과감한 디자인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는 중이에요
2015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선보인 의상. 곽현주 컬렉션 제공
2015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선보인 의상. 곽현주 컬렉션 제공
2016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의상. 곽현주 컬렉션 제공
2016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의상. 곽현주 컬렉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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