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5일 일본 나가노 하쿠바에서 열린 고프로 미디어 트레이닝 행사에 참가한 서정민 기자가 스노보드를 타고 설원을 질주하고 있다. 파트너가 뒤에서 따라가며 고프로로 촬영했다.
[매거진 esc] 라이프
생초보 서정민 기자, 액션캠 영상 촬영과 편집까지…고프로 미디어 트레이닝 행사 참가기
생초보 서정민 기자, 액션캠 영상 촬영과 편집까지…고프로 미디어 트레이닝 행사 참가기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두 문장이 떠올랐다. 버스 타고 터널 몇 개 지나니 눈의 고장이었다. 새파란 하늘의 밑바닥이 새하얘졌다.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달려온 지 5시간. 나가노현 기타아즈미군 하쿠바 마을에 도착했다.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이 열렸던 이곳은 일본의 알프스라 불리는, 해발 3000m에 이르는 준봉들로 둘러싸여 있다. 작은 마을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골목마다 스키와 보드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이 마을을 한자로 쓰면 백마촌(白馬村)이 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곳을 찾은 건 지난 3~5일 열린 고프로 미디어 트레이닝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고프로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담아내는 액션캠의 대표주자다. 사람 몸이나 장비에 장착해 자전거, 서핑, 다이빙, 스키 등을 즐기는 모습이나 아이와 노는 등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기에 최적화된 작은 카메라다. 서핑을 좋아하던 닉 우드먼이 2002년 ‘스타트업’으로 설립한 고프로는 기존에 없던 액션캠 시장을 열어젖히며 세계적인 회사로 발돋움했다. 2014년 나스닥에 상장하는 등 급성장해오다 최근 후발주자의 추격 등으로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하지만 여전히 전세계 액션캠 시장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4K 고화질 영상 촬영도 가능해 영화 <마션>이나 <꽃보다 청춘>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도 널리 쓰인다.
“고프로는 단순한 카메라가 아닙니다. 삶을 즐기는 열정적인 순간을 담아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새로운 문화 그 자체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본사에서 온 고프로 홍보 책임자 릭 로커리가 고프로의 모토를 설명했다. 이어 트레이너들이 고프로 사용법과 촬영을 위한 간단한 팁을 설명해주었다. 딱히 사용법이랄 것도 없었다. 전원을 켜고 촬영 버튼을 누르면 그걸로 끝이었다. 중요한 건 팁이었다. 흥미로운 영상을 위해선 최대한 여러 앵글로 촬영하라는 것이다. 예컨대 한번은 머리에 달고 찍고, 한번은 손목에 달고 찍고, 한번은 셀카로 찍고 하는 식이다. 고프로는 이를 위해 다양한 마운트를 제공한다. 머리, 가슴, 팔 등에 달거나 헬멧, 모자, 자전거 핸들, 스키 폴대 등에 붙이는 마운트가 수십가지도 넘는다.
“고프로는 단순한 카메라 아니라
열정적 순간 나누는 문화 그 자체”
보드 타는 모습 찍고 간단한 편집도
스마트폰으로 SNS 올리니 ‘좋아요’ 다음날 아침 일찍 스키장에 갔다. 리프트를 몇 대나 갈아타고 한참 걸려 정상에 올랐다. 아래가 까마득하니 잘 보이지도 않았다. 내가 묵었던 료칸(여관)이 까만 점이 되어버려 이내 찾기를 포기했다. 헬멧에 고프로를 매달았다. 그리고 보드에 올랐다. 몇년 만에 타는 보드인지 모른다. 어정쩡한 자세로 일단 중력의 힘에 몸을 내맡겼다. 질주, 또 질주. 다행히 몸이 기억했다. 어느새 나의 몸은 적당한 기울기를 만들며 경사진 눈밭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사악사악 눈가루가 흩날렸다. 중심을 잃고 넘어져도 폭신한 눈이 스펀지처럼 엉덩이를 감싸안았다. 갑자기 하늘에서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고, 내 몸 깊은 곳에서 아드레날린이 솟아났다. 헬멧에 달려 돌아가고 있을 고프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만 나와 짝을 이뤄 고프로를 매단 봉을 손에 들고 찍어주는 파트너가 매 순간을 담고 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보드를 탈 땐 고프로를 머리에 다는 게 가장 안정적이다. 팔은 계속 흔들리고 가슴은 옆을 향하기에 고프로를 달기에 적절하지 않다. 머리는 목이 충격을 흡수하며 지지해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떨림이 덜하다. 앵글이 지루해질 수 있다는 단점을 카메라 각도를 조금씩 달리함으로써 극복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내 시선과 같은 앵글로 촬영하다 도중에 내 발과 보드를 내려다보는 앵글로 바꿨다. 한번은 내 얼굴을 촬영했다. 찍힌 영상을 보니 끊임없이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눈동자의 움직임이 재미있었다. 막판에는 자신감이 붙어 고프로를 매단 봉을 들고 셀카를 찍으며 활강했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360도 빙그르르 도는 순간 ‘아싸~, 그림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날 저녁 고프로 영상 편집을 알려주는 강의 시간이 마련됐다. 고프로와 스마트폰을 무선으로 연결하니 고프로 애플리케이션으로 영상을 내려받고 편집하는 게 가능했다. 영상을 갈무리해 사진으로 만들 수도 있다. 넘어져서 360도 빙그르 도는 장면을 잘라내어 스마트폰에 저장한 뒤 사진과 영상 위주 에스엔에스(SNS)인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올렸다. ‘좋아요’가 차곡차곡 쌓였다. 영상을 컴퓨터로 옮겨 편집할 수도 있다. 여러 장면들을 자르고 이어붙여야 하는데, 다양한 앵글의 영상을 2~3초 단위로 계속 바꿔줘야 에스엔에스에서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고 강사는 귀띔했다.
마지막날 아침, 일어나니 온몸이 안 쑤신 데가 없었다. 평소 안 쓰던 근육이 놀랐나 보다. 설산이 보이는 노천 온천에서 몸을 푼 뒤 짐을 싸서 버스에 올랐다. 출발 직전 파트너가 나를 찍어준 영상을 담은 마이크로 에스디(SD) 카드를 전해 받았다. 고프로에 넣고 스마트폰과 연동해 확인해보니 질주 장면이 제법 근사했다. 도쿄로 가는 버스에서 간단한 영상을 편집해 또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올렸다. 누구는 “멋지다”는 댓글을 달았고, 누구는 “왼 다리에 힘을 더 주고 회전반경을 짧게 하면서 보드의 날로 타라”는 원포인트 레슨을 댓글로 달았다. 고프로가 스포츠나 레포츠 자세를 바로잡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열었다. 영상 편집 프로그램 ‘프리미어’가 좋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유료인데다 쓰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 무료 프로그램 ‘곰믹스’를 내려받아 편집을 시작했다. 우선 촬영한 모든 영상을 보는 게 상당한 일이었다. 그 가운데 필요한 부분만 골라내는 것도 고역이었다. 다 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렵게 고르고 또 고른 부분을 잘라낸 뒤 이들을 하나로 이어붙였다. 도입부와 마지막에 간단한 자막을 넣고, 배경음악으로 펑크 밴드 오프스프링의 ‘더 키즈 안트 올라이트’를 깔았다.
1분짜리 완성본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얼마 뒤 페이스북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당신의 영상물이 다른 사람의 저작권을 침해해 삭제했다는 내용이었다. 아뿔싸. 음악 때문이구나. 인터넷에서 저작권자가 사용을 허락한 음악을 찾아 다시 영상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괜찮았다. 저작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번에는 더 짧은 5개의 컷을 이어붙여 15초짜리 영상을 만들었다. 이건 최대 15초까지만 올릴 수 있는 인스타그램용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해시태그(#)로 ‘고프로’(gopro)를 다니 저 멀리 러시아의 고프로 애용가도 팔로 신청을 해왔다. 그의 계정에 들어가 보니 멋진 고프로 영상과 사진들로 가득했다.
다음엔 고프로를 달고 뭘 해볼까? 여덟살 딸내미가 인라인스케이트를 시작했는데, 걔 헬멧에 매달아볼까? 두발자전거 가르쳐줄 때 핸들에 붙여볼까? 고작 작은 카메라 하나일 뿐인데, 바야흐로 신세계가 펼쳐진 기분이다.
나가노/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열정적 순간 나누는 문화 그 자체”
보드 타는 모습 찍고 간단한 편집도
스마트폰으로 SNS 올리니 ‘좋아요’ 다음날 아침 일찍 스키장에 갔다. 리프트를 몇 대나 갈아타고 한참 걸려 정상에 올랐다. 아래가 까마득하니 잘 보이지도 않았다. 내가 묵었던 료칸(여관)이 까만 점이 되어버려 이내 찾기를 포기했다. 헬멧에 고프로를 매달았다. 그리고 보드에 올랐다. 몇년 만에 타는 보드인지 모른다. 어정쩡한 자세로 일단 중력의 힘에 몸을 내맡겼다. 질주, 또 질주. 다행히 몸이 기억했다. 어느새 나의 몸은 적당한 기울기를 만들며 경사진 눈밭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사악사악 눈가루가 흩날렸다. 중심을 잃고 넘어져도 폭신한 눈이 스펀지처럼 엉덩이를 감싸안았다. 갑자기 하늘에서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고, 내 몸 깊은 곳에서 아드레날린이 솟아났다. 헬멧에 달려 돌아가고 있을 고프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만 나와 짝을 이뤄 고프로를 매단 봉을 손에 들고 찍어주는 파트너가 매 순간을 담고 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헬멧에 고프로를 매단 서정민 기자(오른쪽)와 파트너가 리프트를 타고 있다. 고프로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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