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색채 전문기업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색깔은 ‘로즈쿼츠’와 ‘세레니티’다. ‘로즈메리나 세렝게티는 들어봤어도 이건 대체 뭐람?’ 하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유행에 별로 관심이 없는 평범한 생활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올봄, 당신이 백화점에서 집어들 옷이나 화장품은 로즈쿼츠와 세레니티일 확률이 높다.
팬톤의 ‘올해의 색’이란
팬톤은 색깔을 명도·채도 등에 따라 구분한 뒤 고유의 색채번호와 이름을 부여해 기업이나 색채 관련업 종사자가 ‘정확한 색’을 쓸 수 있도록 해주는 회사다. 같은 빨간색이라도 검붉은색, 진빨강, 연빨강 등으로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데, 팬톤은 그 각각의 색을 식별하고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실을 하는 셈이다. ‘올해의 색’을 발표하는 곳은 이 회사에 소속된 팬톤 색채 연구소다. 소장인 리어트리스 아이즈먼을 비롯해 전문가들이 전세계를 다니며 지역별 이슈 등을 모으고, 각 지역에서 받은 영감과 경기 상황 등을 반영해 올해의 색을 발표한다. 팬톤의 한국 대리점인 포산인더스트리 이승재 과장은 “경제가 안 좋으면 희망과 활기를 줄 수 있는 색을 선정하는데, 올해도 경기가 불안하기 때문에 평화와 고요함을 뜻하는 세레니티와 균형을 의미하는 로즈쿼츠를 올해의 색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세레니티는 하늘의 고요함, 마음의 평온 등을 뜻하는 영단어로 옅은 하늘색 계열이고, 로즈쿼츠는 홍수정으로 연분홍색 계열이다. 지난해의 색이었던 마르살라는 팥죽색 계열로, 칠레 와인에서 따온 이름이다.
팬톤이 색에 이렇게 ‘유별난’ 이름을 붙이는 건 마케팅 차원으로도 풀이된다. 평범한 색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패션·화장품 산업의 유행을 이끌려는 전략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패션 업계와 화장품 업계에서는 늘 팬톤이 어떤 색을 올해의 색으로 정할지에 신경을 쓴다. 하지만 무조건 올해의 색을 미는 건 아니다. 대중에게 팬톤의 색이 늘 먹히는 것도 아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쪽은 “옷은 올해의 색을 발표하기 한두 계절 전에 기획하고 만들기 때문에 그 색의 옷을 미리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발표된 색이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는지 추이를 본 다음 추가로 옷을 기획하거나, 비슷한 색의 옷을 주력상품으로 올리는 등의 전략을 쓴다”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 쪽도 “색감과 관련해 그들이 가진 노하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도 신경을 많이 쓰지만, 국내 사정이나 고객의 특성 등에 맞게 그 색을 재해석한다. 자체 연구팀 등에서 내놓은 유행 전망을 반영해 우리 회사만의 색을 적용한 제품이나 화장법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베네피트 크림 블러셔 ‘단델리온 듀’와 하이라이터 ‘샤이 빔’.
사실 ‘평범한 생활인’들의 생활 깊숙이까지 팬톤 색깔이 들어온 것은 지난가을 무렵부터다. 지에스(GS)홈쇼핑 쪽은 “올해의 색 가운데 대중적으로 반응이 온 건 지난가을 마르살라부터였다. 그 색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올봄에도 로즈쿼츠와 세레니티를 적용한 옷과 화장품을 많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의 색인 마르살라가 봄·여름엔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원래도 와인색 계열의 제품이 쏟아져나오는 가을·겨울에 붐을 일으키자 올해도 ‘팬톤 마케팅’을 이어가게 됐다는 얘기다. 실제로 색조 화장품 브랜드인 브이디엘(VDL)은 팬톤과 협업해 로즈쿼츠와 세레니티를 반영한 아이섀도, 파운데이션, 브러시 등 메이크업 제품 16종을 ‘팬톤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내놨는데, 초도 물량 두 달치를 출시한 지 이틀 만에 모두 팔아치웠다. 씨제이(CJ)오쇼핑은 지난달 말 두 색상을 적용한 화장품, 가구,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는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지난해 팥죽색 계열 마르살라 유행
올해는 봄마다 사랑받는 파스텔 색상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느낌 로즈쿼츠
세련되면서도 포근한 느낌 세레니티
로즈쿼츠·세레니티 활용하려면
로즈쿼츠와 세레니티는 ‘가을의 마르살라’처럼 봄마다 사랑받는 파스텔 색상의 일부다.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느낌을 내고 싶다면 로즈쿼츠를, 세련되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내고 싶다면 세레니티를 고르면 된다. 디자이너 곽현주씨는 “로즈쿼츠는 파스텔톤의 연보라색과 함께 톤온톤으로 연출하거나, 청바지를 받쳐 입으면 남녀 모두 예쁘게 입을 수 있다. 두 색상 모두 체격이 커 보이게 하는데, 화려한 무늬나 선이 들어간 옷은 그런 염려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두 색이 전면적으로 적용된 옷이 부담스럽다면 주머니나 칼라 또는 색상의 일부로 포인트를 준 옷을 고르거나, 두 색이 들어간 가방·시계·신발 등을 선택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여성이라면 색조 화장을 할 때 두 가지 색을 시도해볼 수도 있겠다. ‘여자여자’한 분위기를 내는 덴 분홍색만한 게 없다. 로즈쿼츠 계열의 블러셔를 바르면 얼굴이 생기 있고 화사해 보인다. 이때는 평소 쓰는 파운데이션보다 한 톤 밝은 제품을 발라, 피부를 좀더 환하게 표현하는 게 좋다. 로즈쿼츠는 입술에도 활용하기 좋은 색인데, 자연스럽게 발색이 되는 틴트를 입술 안쪽은 진하게, 바깥쪽은 연하게 발라 그러데이션해주면 사랑스러운 느낌을 낼 수 있다. 립스틱을 바를 땐 본래 입술색 때문에 제품의 색상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도록 입술에도 파운데이션이나 립 컨실러를 미리 발라준다. 아이섀도로도 로즈쿼츠는 훌륭하다.
세레니티는 잘못 쓰면 과한 화장이 될 수 있으므로, 이 색을 쓸 땐 포인트로만 활용하도록 한다. 세레니티 아이섀도를 눈두덩이 전체에 얇고 은은하게 펴 바르고, 파란색 아이라이너로 눈꼬리 쪽을 그려주면 세련돼 보인다.
실패할 걱정 없이 만만하게 두 색을 시도해볼 수 있는 건 손톱이다. 한 가지 색을 열 손가락 모두에 발라도 좋고, 두 색을 섞어 프렌치 네일을 하거나 두 색을 손가락마다 또는 손마다 번갈아 발라도 예쁘다. 두 색의 특성을 더 살리고 싶다면, 펄이나 광택감이 없는 제품을 고르고 여기에 지속력까지 원한다면 젤 네일을 바르는 게 좋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 각 회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