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을지로 맛집 안내서
지난해부터 서울 을지로에 20~30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다. 자고로 예술가 중에는 미식가가 많다.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식탐은 유명하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도 식도락을 즐겼다. 그럼 을지로 젊은 예술가들의 맛집은 어디일까?
중구 산림동(을지로)에 깃든 소동호(33·가구·조명 디자이너) 작가와 조소 작업을 하는 고대웅(27) 작가, 작업실 ‘을지로 기록관’을 운영하는 이현지(24) 작가 등이 공통으로 추천하는 맛집은 ‘전통아바이순대’다. 팔팔 끓여 고소한 향을 피우는 순댓국이 주메뉴인 식당이다. 최근 한 방송에 맛집으로 소개돼 요즘은 최소 30분 넘게 줄서야 한다. 순댓국에 많은 양의 밥을 말아서 내는 게 특징이다. 선지를 빼고 채소와 당면으로 속을 채운 순대가 별미다.
소동호 작가는 작업하다 출출할 때면 을지로3가역 8번 출구 앞 ‘동경우동’에 가서 튀김우동을 먹는다고 했다. 저녁에는 ‘동원집’을 찾는단다. “동원집은 가격도 싼데다 푸짐하고 맛깔스러워서 자주 간다. 노포만이 주는 감칠맛이 있다”고 했다.
1987년 문 연 동원집은 윤순영(61)씨가 변함없이 장사를 하는 노포다. 들머리에서 팔팔 끓고 있는 커다란 감자국 솥단지는 행인의 시선을 한동안 붙잡아두기에 충분하다. 이곳 메뉴판에는 감자탕이 아니라 ‘감자국’이라고 적혀 있다. 밤새 우려낸 돼지사골 국물에 3시간 삶은, 살코기 많이 붙은 돼지뼈를 넣어 끓인 감자국이다. 고기 사이에 폭 빠져 있는 감자도 맛있는 7000원짜리 감자국은 2~3명이 나눠 먹어도 될 만큼 푸짐하다. 순댓국(6000원)도 있다. 몇 시간을 계속 끓여 구수한 맛을 유지하면서 진하게 만드는 게 맛의 비결이다. 현재 동원집은 아들 김훈(34)씨가 이어받아 모친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고대웅 작가는 작업실 겸 전시공간인 ‘R3028’ 바로 앞에 있는 ‘한양식당’과 생태찌개 전문점 ‘장원정’, 유명한 평양냉면집 ‘우래옥’을 추가로 추천한다. “한양식당은 그냥 밥집인데 저렴하고 푸짐해서 맘이 편하다”고 했다. 좁은 인쇄 골목에 있는 한양식당은 인터넷 검색에도 잘 안 나오는, 고 작가의 숨은 맛집이다. 푸짐한 장원정의 생태탕은 소주 안주로 그만이다. 술꾼들은 장원정 바로 앞에 있는 ‘문화옥’보다 이곳을 즐겨 찾는다.
을지로3가역 인근에 카페 겸 작업실 ‘호텔수선화’를 운영하는 20~30대 여성 작가 이경연·이나나·원혜림씨는 노포에 자주 간다. 이경연씨는 “육전을 파는 ‘우화식당’은 연세 많으신 할머니가 하시는데, 휴일에는 문을 닫는다”고 설명했다. 노가리 골목 뒤편의 좁은 골목에 자리잡은 우화식당에선 푸짐한 소고기전이 고작 1만원이다. 직접 말려 만드는 코다리찜도 유명하다. 10명이면 꽉 차는 이 식당은 촌스러운 외관이 오히려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여성 작가들은 갈비찜과 어복쟁반으로 유명한 ‘진고개’와 평양냉면집 ‘우래옥’, ‘평래옥’도 자주 간다고 한다.
박미향 기자
전통아바이순대의 순댓국. 사진 박미향 기자
동원집의 감자국.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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