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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모던뽀이, 모던껄, 을지로로 돌아오다

등록 2016-03-23 20:36수정 2016-03-24 15:23

[매거진 esc] 을지로
도심 공동화로 빈집 늘어가는 산림동 조각골목에 젊은 예술가들 들어와 활력 충전
해와 달이 서로 마주 보던 19일 늦은 오후, 서울 중구 산림동엔 사람보다 집이 더 많았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엔 문 닫힌 빈집뿐이었다. 학창 시절 지리 시간에 배운 ‘인구 공동화’가 떠올랐다. 처음엔 공동화가 ‘공동체’라는 말처럼 좋은 뜻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도심이 도넛 가운데 구멍처럼 뻥 뚫려 비어 있다는 말이었다.

북쪽의 청계천, 남쪽의 을지로3·4가 사이에 위치한 산림동엔 금속을 깎거나 연마해 상패 등을 제작하는 이른바 ‘조각 공장’과 각종 기계 부품을 만드는 기계·정밀 공장이 550여곳 몰려 있다. 동 한가운데에는 종로의 세운상가와 이어지는 청계·대림상가가 위치해 있다.

공동화가 심해진 산림동은 아예 슬럼화된 상태였다. 청계상가 입구에는 ‘흥분제’ ‘몰카’ ‘도청기’ 등을 판다는 간판이 버젓이 걸려 있었다. 서울 강남역에 오피스텔 성매매를 한다는 전단이 뿌려지는 세상이지만,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이런 불법 제품을 판다는 정식 간판이 붙어 있는 모습은 생경했다.

청계상가 옆 90년이 넘었다는 한 적산가옥(일본식 집)을 끼고 골목에 들어서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직 해는 떠 있는 상태였지만,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골목은 들어갈수록 더 깊어졌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에 나온 공장도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 속 그 분위기였다. 낮에는 그나마 공장이 문을 열어 사람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주말 저녁이 되니 모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맞은편에서 오는 넝마주이가 반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골목을 따라 15분 정도 걸었더니 불이 다 꺼진 골목길에 유일하게 불이 켜진 2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건물로 20대 젊은 남녀들이 드나들었다. 대체 뭐 하는 곳일까?

젊은 예술가들 하나둘씩 모여들다

겉으로 봐선 그저 낡은 2층 건물이었다. 사람 하나 겨우 올라갈 정도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그 안은 다른 세상이었다. 밖은 산림동이지만, 안은 서울 ‘홍대’였다. 최근 유행하는 노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8명의 젊은 작가가 모여 만든 전시관 겸 작업공간 R3028이 19일 개관 파티를 열었다.  이정국 기자
8명의 젊은 작가가 모여 만든 전시관 겸 작업공간 R3028이 19일 개관 파티를 열었다. 이정국 기자

젊은이들은 한 손에 간단한 먹을거리와 음료를 든 채로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눴다. 한눈에 봐도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예술공간이었다. 이곳은 젊은 예술가 8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예술공간 ‘R3028’이다. 이날은 오픈 파티 날이었다. R3028은 작가들의 작업공간과 전시장, 교육장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대학원 동기인 작가들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처음 만난 방이 302호였단다. 8은 ‘무한대’(∞) 표시를 세운 것이다. ‘302호여, 영원하라’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인테리어는 작가들 스스로 했다. 각종 인테리어 자재를 파는 상가들이 밀집한 을지로여서 재료 구입이 쉬웠다. “젊은이들이 기특하다”며 ‘사장님’들이 도매가에 재료를 대주고, 무료로 작업을 해주기도 했다. 거의 쓰러져가는 건물이어서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원래 한 채의 건물이 아니라 2~3채의 건물을 이은 형태라 옆 건물의 벽을 같이 쓰는 등 구조가 엉망이었다. 법이 허용한 선에서 내부 구조를 바꾸고, 도색 등 작업을 했다. 석 달간의 작업을 거쳐, 쓰러져가는 빈집은 4개의 작업공간과 1개의 전시장을 갖춘 버젓한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

3D 프린터를 이용한 조소 작업을 해온 고대웅(27) 작가는 “집 짓다 죽는다는 옛말을 실감할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지만, 그 과정을 사진과 영상(<인터넷 한겨레>참조)으로 남겨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 작가들 스스로 해냈다는 것이 더 뿌듯하다”고 말했다. 같이 입주하게 된 동료 작가들도 설레긴 마찬가지다. 동양화를 전공한 정두연(26) 작가는 “젊은 나이에 개인 작업실을 갖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만의 작업공간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예술가들에겐 행복한 일”이라며 웃었다.

어떻게 슬럼화가 진행된 도심 한복판에 젊은 작가들이 작업공간을 열게 된 걸까? 여기에는 지자체의 예술인 지원 사업이 큰 몫을 했다. 중구청은 건물주와 협의해 공간을 마련해주고 임대료의 90%를 부담한다. 작가들은 한 달에 몇만원만 내면 작업실을 얻을 수 있다. R3028의 임대료도 한 달에 12만원이다. 작가 한 명당 1만5천원꼴이다. 이런 예술공간이 산림동에만 6곳 있다. 이들 공간에는 각각의 이름이 있지만, 을지 1~5호(2-1호 포함)라는 별칭도 붙었다.

중구청 시장경제과 관계자는 “공동화 현상 때문에 빈집이 늘어난 상태여서 건물주들도 환영하고 있다. 예술가들의 입주로 공동화 현상도 막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점차 지원을 늘려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거주지역 조성
새 문물 받아들인 젊은층 예술 싹터
70년대 산업화 시대 다시 한번 부흥
90년대 들어 쇠락했다 최근 기지개

일제강점기 ‘모던뽀이’들의 주 무대

이 지역의 옛 이름은 ‘구리개’다. 일대에 누런 진흙으로 된 낮은 언덕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갑오개혁 뒤 한자로 옮겨 ‘동현동’으로 바뀌었는데, 일제는 이를 다시 ‘황금정’으로 바꾸었다. ‘동’(洞)은 조선식 행정구역이고, ‘정’(町)은 일본식 지명이다. 지금의 명동인 ‘혼마치’(本町·본정)가 대표적인 일본식 지명이다. 명동은 을지로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황금정 일대는 해방 직후인 1946년 정부가 대대적으로 일본식 동명 정리 사업을 하면서 을지문덕 장군의 성을 딴 을지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인근의 충무로도 이순신 장군의 호를 딴 것이다.

일제는 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쪽은 북촌, 남쪽은 남촌이라 불렀는데, 일본인 거주 지역을 조성하기 위해 남촌을 집중적으로 개발했다. 종로 일대의 북촌 민족자본과, 일본인 거주지로 개발된 남촌 식민지자본의 대결구도가 펼쳐진 것이다.

당시 남촌은 지금 서울 강남에 해당한다. 신식 문물을 받아들인 ‘모던뽀이’와 ‘모던껄’의 주 무대가 바로 이 남촌이었다. 모두들 한복을 입던 시절 양복을 입고 ‘딴스홀’을 출입하던 모던뽀이와 모던껄들은 당대 ‘퇴폐의 상징’이라며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근대 문학과 예술이 싹튼 곳도 바로 여기다. 혼마치부터 황금정으로 이어지는 을지로는 ‘모던의 상징’이었다.

당시 황금정이 어느 정도 번화했던 곳인지 나타내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다. 1935년 5월11일치 <동아일보>를 보면 “조선광업 개발회사가 공사비 300만원을 들여 황금정에 8층짜리 조선 제일의 빌딩을 짓는다”는 내용의 기사가 있다. 조선 최고층 빌딩이 들어설 정도로 자본과 문화가 집중된 곳이 바로 을지로였던 것이다.

을지로는 광복 이후 1970년대 산업화 시절 다시 한번 부흥기를 맞게 된다. 무엇이든 만들기만 하면 돈이 되던 시절, 제조업의 중심지였던 을지로에 사람과 돈이 몰린 것이다. “을지로가 돈을 쓸어담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하지만 건물이 본격적으로 낙후하기 시작한 1990년대 들어 급속한 슬럼화가 시작됐다. 돈이 돌지 않으니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빠져나갔다. 근대의 그늘이 드리운 을지로 골목길에 최근 모던뽀이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예술가들의 천국…원주민들도 “반갑다”

산림동 일대를 취재하던 도중, 서울 성수동에 작업실이 있다는 디자이너 2명을 길에서 만났다. 그들은 “이곳 임대료가 몇만원 수준”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 작업실 임대료가 80만원”이라고 밝힌 그들은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다. 들어올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고 말했다. 작업공간이 절실한 이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임대료를 지원하는 지자체 정책도 한몫했지만, 예술가들이 이곳에 둥지를 트는 또다른 이유는 ‘을지로’라는 공간이 주는 정서와 이점 때문이다. 국내 미술 전공 학생들은 을지로를 수시로 드나든다. 이곳에 아크릴, 금속공예, 인쇄 등 작품 만드는 데 필요한 업체가 몰려 있다. 고대웅 작가는 “일반인에게 을지로는 낙후된 도심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미술 전공 학생들에겐 고향 같은 곳이다. 작품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거나 작업을 발주하기 위해 수시로 드나들던 곳”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3·4가 사이에 위치한 산림동에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있다. 도자기 예술 작품을 만드는 퍼블릭쇼(을지 1호) 앞 골목길을 한 시민이 걷고 있다.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서울 중구 을지로3·4가 사이에 위치한 산림동에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고 있다. 도자기 예술 작품을 만드는 퍼블릭쇼(을지 1호) 앞 골목길을 한 시민이 걷고 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도자기 작품을 생산하는 ‘퍼블릭쇼’(을지 1호)의 장준기 매니저도 같은 생각이다. 원래 경기도 이천에 작업공간이 있었지만, 을지로에 터를 잡은 뒤 생산 제품이 다양해졌다고 한다. 용접이나 ‘시보리’(원형 금속판을 고속회전시켜 모양을 만드는 작업) 하는 업체가 몇 걸음만 걸으면 나오기 때문이다. “교통여건도 좋다. 광화문, 홍대, 강남 등지로 가기에 매우 편하다”는 것도 장점 가운데 하나다. 근처 지하철역엔 2·3·5호선이 지나간다.

을지로 기록관(을지 5호)의 이현지 작가.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을지로 기록관(을지 5호)의 이현지 작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학연이 없어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해외파 작가들에게도 을지로는 매력 있는 곳이다. 임대료 4만원을 내고 ‘을지로 기록관’(을지 5호)이라는 작업실을 연 이현지(24) 작가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뒤 한국에 와 딱히 연고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작업을 이어갈지 막막해하던 그에게 을지로는 구세주 같았다. 1평 규모의 작은 공간이지만, 그는 이곳에서 변화하는 을지로를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낼 예정이다.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는 것도 을지로의 강점이다. 교과서에서나 볼 줄 알았던 서울 근대 풍경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청계상가 2층에 올라 산림동 일대를 내려다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하다. 이현지 작가는 “서울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것 같다. 이국적인 느낌마저 준다”고 했다.

산림조형(을지 3호)의 소동호 작가.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산림조형(을지 3호)의 소동호 작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가구·조명을 디자인하는 ‘산림조형’(을지 3호)을 운영 중인 소동호(33)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 앞 건물에 붙어 있는 빛바랜 포스터 앞으로 안내했다. 지금은 없는 한 약국 광고 포스터인데 ‘정력부족·조루증, 1제 복용으로 회춘’이라는 글귀가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별것 아닌 거 같지만 남아 있는 옛 정취들이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써클활동(을지 4호)의 최현택(왼쪽), 조민정 작가.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써클활동(을지 4호)의 최현택(왼쪽), 조민정 작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을지로에서 만난 젊은 예술가들은 “을지로를 오랫동안 마주하고 싶다”고 했다. 이러다 재개발이라도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싹 밀고 다시 지어올리는’ 재개발이 당분간 성사되긴 어려울 것 같다. 중구청 관계자는 “을지로 일대 토지·건물주들의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하다. 다른 지역과 달리 쉽게 재개발이 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R3028의 김도연(25) 작가는 “우리도 이곳을 급하게 바꾸고 싶지 않다. 이곳 원주민들과 교류하며 천천히 진행할 것이다. 다 함께 잘되고 싶다”고 말했다. 조만간 작가들은 슬럼화된 골목길에 벽화를 그리는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원주민들 기대도 크다. 산림동의 한 기계공업사 사장은 “갑자기 젊은 학생들이 늘어나 신기하다. 침체된 골목에 활력이 생기는 거 같아 반갑다”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도움말 및 참고자료: 서울 중구청 시장경제과,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신명직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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