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스타일
2016 가을/겨울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 미리 살펴본 올 하반기 유행 스타일
2016 가을/겨울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 미리 살펴본 올 하반기 유행 스타일
일간지 기자는 남들보다 하루를 먼저 산다는 말이 있다. 오늘 일하지만 내일치 신문을 만들기 때문이다. 패션계는 남들보다 최소 두 계절을 먼저 산다. 두 계절 뒤에 어떤 옷을 만들어 팔지 미리 고민을 해놔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상급 디자이너들이 두 계절 뒤 본격적으로 내놓을 옷의 향연이 지난 22~26일 2016 가을/겨울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 펼쳐졌다. 올 가을·겨울 유행할 옷들과 쇼에서의 다양한 볼거리 등을 짚어봤다.
오버사이즈와 애슬레저 룩은 계속된다
헐렁하고 커다란 오버사이즈 룩의 인기는 오는 가을·겨울에도 계속될 것 같다. 이번 패션위크에 참가한 거의 모든 디자이너들이 넉넉한 품의 재킷과 풀오버, 와이드팬츠, 롱스커트 등을 선보였다. 양복 재킷 라펠의 폭도, 바지의 통도 다같이 넓어졌는데 바지의 경우엔 부츠컷(나팔바지) 스타일도 꽤 많았다. 1990년대 아이돌 팬덤을 주제로 옷을 만든 ‘문수권’은 그 시절 온 동네를 청소할 듯 땅바닥에 질질 끌리던 길이의 바지를 소환했는데, ‘오빠 오빠!’가 프린트된 스웨터와 어울려 웃음을 자아냈다.
가을·겨울에 빼놓을 수 없는 옷인 코트는 대체로 무릎 길이까지 길어졌다. ‘김서룡’과 ‘푸시버튼’, ‘레쥬렉션’ 등은 무릎을 넘어 발목까지 내려간 롱코트를 선보였다. 와이드 커프스(셔츠 소매 끝단을 넓고 길게 만든 것)도 꽤 많았는데, ‘푸시버튼’의 쇼에선 셔츠가 아니라 재킷의 소매 끝을 극단적으로 넓고 길게 만들어 손 전체를 뒤덮은 디자인도 등장했다.
애슬레저 룩과 밀리터리 룩 역시 올 하반기에도 사랑받을 것으로 보인다. 발목 부분을 신축성 있는 소재로 처리한 조거팬츠는 정장 브랜드와 캐주얼복 브랜드, 남성복 브랜드와 여성복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대거 등장했다. 몸에 꼭 붙는 여성 정장 재킷에 조거팬츠를 매치한 ‘미스지 컬렉션’은 매우 세련된 느낌을 줬고, ‘에이치 에스 에이치’는 트레이닝 팬츠에 오버사이즈 코트만 걸쳐도 멋진 남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에이치 에스 에이치’의 디자이너 한상혁은 “애슬레저 룩이라는 세계적인 큰 유행을 어떻게 내 색깔로 표현할지 고민했다. 청소년들의 길거리 패션에서 자주 보이는 트레이닝 팬츠에 (브랜드 특유의) 잘 재단한 코트를 입히면 독특한 느낌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서리얼 벗 나이스’와 ‘문수권’ 등은 흔히 보이는 ‘삼선 추리닝’처럼 재킷과 바지 등의 옆에 선을 넣어 트레이닝복 느낌을 강조했고, ‘제이쿠’ 등은 벨벳 소재의 트랙 슈트를 내놨다.
‘무홍’은 항공점퍼의 길이를 늘려 롱재킷으로 만들었고, ‘오디너리 피플’은 코트의 어깨에 군복 견장 느낌의 장식을 달았다. 항공점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옷과 섞여 색다른 느낌의 옷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레쥬렉션’에선 딱 떨어지는 코트와 니트의 몸통에 항공점퍼 팔을 붙였고, ‘디그낙’은 허리 윗부분은 항공점퍼로, 아랫부분은 모직코트로 만들거나 그 반대로 만든 외투로 눈길을 끌었다.
‘카루소’도 양복 재킷 몸통에 항공점퍼 팔을 달거나 반대로 항공점퍼 몸통에 양복 팔을 다는 등의 방식으로 믹스매치를 시도했다. 양복 정장 안에 후드티와 트레이닝 재킷을 함께 입도록 했고, 커프스(셔츠 소매 끝단)를 넓고 길게 만든 뒤 동그란 단추로 장식하거나, 남성복에 셔링을 잡아 여성복처럼 허리를 강조하는 등 유니섹스 느낌의 옷도 무대에 올랐다. ‘카루소’의 디자이너 장광효는 “이젠 더는 새로 표현해낼 디자인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옷이 나와서 그런지 믹스매치가 세계적인 트렌드”라며 “티피오(T.P.O. 시간, 장소, 상황)에만 맞다면 정장에 트레이닝복을 같이 입든, 전혀 안 맞을 것 같은 색상을 같이 입든 생뚱맞게 입어도 재밌는 느낌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소재로 보자면, 자연모피와 인조모피가 가장 눈에 띄었다. 표범을 연상시키는 무늬의 모피 재킷과 롱코트를 선보인 ‘이치’, 경쾌한 기하학 무늬를 넣은 인조모피 롱코트를 보여준 ‘에이치 에스 에이치’, 인조모피로 만든 파란색과 형광색 롱코트로 특유의 유쾌함을 드러낸 ‘카이’, 바짓단과 망토, 코트 등을 자연모피로 장식해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 ‘미스지 컬렉션’ 등이 화제가 됐다. 정구호 헤라서울패션위크 총감독은 “화려한 색상의 인조모피 코트나 재킷을 입으면 케이팝 스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식지 않는 오버사이즈 룩 열풍
애슬레저 룩, 밀리터리 룩도 인기
정장에 트레이닝복 믹스매치
화려한 색상 인조모피 코트 눈길 퍼포먼스로 관람객을 사로잡아라 패션쇼에 패션만 있는 건 아니다. 조명, 배경음악, 화장과 모델들의 퍼포먼스 등 여러 장치가 옷을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카루소’는 녹음한 배경음악을 트는 대신, 정가 가수 정마리가 무대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 흰색 한복을 입고 제일 먼저 런웨이에 등장한 그는 쇼가 끝날 때까지 런웨이 가운데쯤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정가는 한국 궁중음악인 정악 가운데 성악곡을 일컫는데, 단아한 그의 목소리는 ‘직관’을 주제로 잡은 ‘카루소’의 옷들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카루소’의 디자이너 장광효는 “옷보다 노래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더 가서 옷이 안 보이지 않을까, 한복 쇼가 아닌데 이번 쇼와 어울릴까 우려도 했었다. 하지만 관객들이 오히려 옷에 더 집중했고, 쇼 분위기와도 잘 어울려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황제를 숭배하는 자메이카 종교 신자 ‘라스타파리안’에서 단초를 얻어, 저항과 자유를 주제로 해 만든 옷을 선보인 ‘디그낙’은 레게 가수 스컬의 랩 공연으로 쇼를 시작했다. 스컬의 공연에 이어 쇼 내내 흘러나온 강렬한 헤비메탈 음악은 전위적인 디자인의 옷들을 돋보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에이치 에스 에이치’의 쇼에선 모델들이 전동휠을 타고 등장했고, 손에 스마트폰을 든 채 런웨이를 걸어나오며 관람객을 촬영하는 모델들도 있었다. 쇼가 끝난 뒤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러 나온 디자이너 한상혁도 전동휠에 올라탄 채 스마트폰을 들고 나왔는데, 전동휠의 속도가 너무 빨라 넘어지는 바람에 예기치 못한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백스테이지와 연결되는 런웨이 맨 앞에, 빨간 풍선을 든 수십명의 ‘오빠부대’를 앉혀둔 ‘문수권’의 쇼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들은 모델들이 등장할 때마다 풍선을 흔들며 환호하고 열광했는데, 이번 쇼를 통해 자신이 그룹 룰라의 팬클럽 회원이었음을 ‘커밍아웃’한 디자이너 권문수의 재치가 빛나는 무대였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문수권’의 오버사이즈 코트와 와이드팬츠. 헤라서울패션위크 제공
‘미스지 컬렉션’의 모피 장식 코트. 헤라서울패션위크 제공
‘비욘드 클로젯’의 롱재킷. 헤라서울패션위크 제공
‘카루소’의 트레이닝 재킷과 정장. 헤라서울패션위크 제공
‘카이’의 인조모피 롱코트. 헤라서울패션위크 제공
애슬레저 룩, 밀리터리 룩도 인기
정장에 트레이닝복 믹스매치
화려한 색상 인조모피 코트 눈길 퍼포먼스로 관람객을 사로잡아라 패션쇼에 패션만 있는 건 아니다. 조명, 배경음악, 화장과 모델들의 퍼포먼스 등 여러 장치가 옷을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카루소’는 녹음한 배경음악을 트는 대신, 정가 가수 정마리가 무대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 흰색 한복을 입고 제일 먼저 런웨이에 등장한 그는 쇼가 끝날 때까지 런웨이 가운데쯤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정가는 한국 궁중음악인 정악 가운데 성악곡을 일컫는데, 단아한 그의 목소리는 ‘직관’을 주제로 잡은 ‘카루소’의 옷들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카루소’의 디자이너 장광효는 “옷보다 노래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더 가서 옷이 안 보이지 않을까, 한복 쇼가 아닌데 이번 쇼와 어울릴까 우려도 했었다. 하지만 관객들이 오히려 옷에 더 집중했고, 쇼 분위기와도 잘 어울려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 황제를 숭배하는 자메이카 종교 신자 ‘라스타파리안’에서 단초를 얻어, 저항과 자유를 주제로 해 만든 옷을 선보인 ‘디그낙’은 레게 가수 스컬의 랩 공연으로 쇼를 시작했다. 스컬의 공연에 이어 쇼 내내 흘러나온 강렬한 헤비메탈 음악은 전위적인 디자인의 옷들을 돋보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에이치 에스 에이치’의 인조모피 망토. 헤라서울패션위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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