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수 작가(왼쪽)가 서울 풍납동 자신의 작업실에서 술 애호가 권태훈씨와 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국 기자
[매거진 esc] 라이프
술 만화 <한잔의 맛>펴낸 김양수 작가와 술 애호가 권태훈씨의 음주 인터뷰
술 만화 <한잔의 맛>펴낸 김양수 작가와 술 애호가 권태훈씨의 음주 인터뷰
취미가 뭐냐고 물었더니 “술 마시기”라는 답이 돌아온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혹시 알코올중독?’ 아무래도 부정적 생각부터 들기 마련이다. 때문에 실제 술 마시기가 취미여도 공개적으로 밝히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여기, 자신의 취미가 ‘술 마시기’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사람이 있다. 알코올중독자는 아니다. 바로 웹툰 <생활의 참견>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김양수 작가다. 최근 그는 술을 소재로 한 만화 <한잔의 맛>을 펴냈다.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 ‘피키캐스트’에 연재했던 것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프리랜서 기자 태백이 ‘옐로우 마스크’라는 바에서 만난 술과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위스키 종류와 기원, 칵테일 제조법 등 다양한 ‘술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쩌다 술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리게 됐는지, 또 한국의 술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체질적으로 술을 못 받아들여 술 마시기의 즐거움을 잘 모르는 기자를 대신해 김 작가의 팬이자 술 애호가를 자처하는 직장인 권태훈씨가 인터뷰어로 나섰다. 만남은 지난달 31일 오후 3시 서울 풍납동 김 작가의 작업실에서 이뤄졌다.
“맨정신에 싱글몰트 위스키 마시니
그동안 만취해 마신 술에 미안해져
‘단 술’로만 알았던 칵테일에 관심
한국 바텐더 수준 세계적이더라” 권태훈(이하 권)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며) 작가님과 한잔하려고 술을 하나 챙겨왔습니다. 김양수(이하 김) 와! ‘요이치’(일본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이자 브랜드)네요! 감사합니다. 이거 귀한 건데. 권 얼마 전 일본 삿포로 여행 갔다가 그곳 양조장에서만 파는 술이 있길래 사왔습니다. 김 (술을 한모금 마시며) 캬! 이거 좋은데요. 스모키 향이 죽입니다.
권 요이치에선 지금도 석탄 증류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요. 위스키의 고향 스코틀랜드에서조차 대부분 석탄 대신 석유로 바꿨는데 말이죠. 이 위스키의 스모키 향은 석탄 때문에 나는 겁니다. 그나저나 원래 기자 생활을 하셨던 걸로 압니다. 어쩌다 만화가가 되셨나요?
김 <페이퍼>라는 잡지에서 1997년부터 기자 생활을 했어요. 대학교 4학년 때였죠. 잡지의 특성상 담당 면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었어요. 몇번인가 만화를 그려서 제 지면에 넣으려 했는데, 계속 거부당했어요.(웃음) 그러던 중 갑자기 사고로 지면이 펑크 날 상황이 생겼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이전에 그려두었던 만화 중 하나를 급히 실었죠. 그런데 이게 독자 반응이 좋은 거예요. 그 뒤로 여기저기 요청도 오고 해서 꾸준하게 그리기 시작했어요.
권 <생활의 참견>이 큰 인기를 끌었잖아요.
김 지금도 네이버웹툰에 연재중이고요. 2008년부터 연재를 시작했는데, 1년 동안 기자 생활과 병행하니까 정말 죽겠더라고요. 양쪽 모두 ‘퀄리티’가 떨어지는 거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2009년 과감히 기자 생활을 정리했습니다. 좀 두렵기도 했어요. 전업 뒤에도 2~3년 동안은 스스로 만화가라고 부르지 못했어요. 요즘 와선 좀 자신감이 생기네요.
권 술이라는 한가지 주제로 만화를 연재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김 굉장히 전문적인 내용이 담긴 만화는 아니어서 부담을 갖진 않았어요. 이 만화를 보고 ‘나도 싱글몰트 위스키 한번 마셔볼까’, ‘칵테일 한번 만들어볼까’라는 반응만 나와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술에 대해 취재해보니, 술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었어요. 마치 우리 삶이랑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술과 우리 삶의 이어지는 부분을 맞춰보려고 했어요.
권 만화에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김 싱글몰트는 와인하고 비슷해요. 개성이 강하죠. 어떤 양조장이냐, 어떤 통에서 숙성을 했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다 다릅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섞어서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들잖아요. 어떻게 보면 위스키의 고향 같은 맛이죠.
권 어떤 과정을 거쳐 싱글몰트의 세계로 오게 된 건가요?
김 처음 술을 칵테일로 시작했어요. 드문 예죠. 아버지께서 진토닉을 좋아하셨는데, 일요일에 가끔 도수를 낮게 해서 한잔씩 타주셨죠. 그거 먹고 잠들었다가 일어나면 월요일 아침이고, 하하. 대학에 입학하니 선물로 ‘시바스리갈’ 2병을 주셨어요. 그리고 당신의 양주 찬장을 오픈하셨죠. 마음껏 먹으라고. 친구들이 우리집 오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대학에선 남들처럼 소주 먹고, 직장 가서 소맥 먹고 다 해봤죠. 블렌디드 위스키도 먹었고요. 그러다 싱글몰트를 먹었는데, 그동안 왜 술을 그런 식으로 먹었는지 후회되더라고요.
권 어떤 후회였나요?
김 소주, 맥주 등을 진탕 먹다가 양주를 3~4차에서 먹었거든요. 혀가 마비된 상태에서 먹었으니 맛을 알 수가 있나요. 맨정신으로 싱글몰트를 먹었더니 그동안 취해서 먹었던 게 다 미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다 칵테일에 관심이 갔어요. 처음엔 여자들이 먹는 ‘단 술’로만 알았는데 매우 섬세한 술이더라고요.
권 바텐더마다 술맛 차이가 크죠?
김 하늘과 땅 차이죠. 바텐더 개성마다 술맛이 너무 달라요. 같은 이름의 칵테일도 완전 다른 술이라고 느껴질 정도예요.
권 과거 회식자리로 대변되던 한국 술문화가 조금씩 바뀌는 거 같습니다. 이른바 ‘바’ 문화가 확산되고 있어요.
김 긍정적으로 봐요. 서울 청담동, 홍대 등에 좋은 바들이 정말 많죠. 다만 가격에 아직 거품이 끼어서 조금 비싸다는 단점이 있어요. 거품이 꺼지면 합리화될 거라고 봐요. 일본만 해도 동네마다 테이블 3~4개짜리 작은 바들이 다 있거든요. 거기서 건전한 주류 문화가 형성되는데 아직 한국은 모두 다 똑같은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죠. 큰 문제예요.
권 다시 싱글몰트 얘기를 해보죠. 특별히 좋아하는 싱글몰트가 있나요?
김 ‘매캘란’은 부드러운 맛 때문에 대중들이 선호하죠. 저도 첫 싱글몰트는 매캘란이었어요. 그 뒤 좀더 피트(땅속에 묻힌 지 오래되지 않아 완전히 탄화하지 못한 석탄의 일종으로 토탄 또는 이탄으로 불린다. 스코틀랜드 일부 증류소에서 싱글몰트 위스키 원료인 맥아를 건조할 때 연료로 사용하는데, 그 연기가 특유의 향을 만들어낸다) 향이 강한 제품을 찾게 됐어요. 요즘은 ‘라가불린’하고 ‘아드벡’이 좋더라고요. 이 술은 떡볶이로 치면 대구의 엄청 매운 ‘폭탄 떡볶이’예요. 호불호가 갈리죠. 초보자들이 이 술을 처음 마시면 병원 냄새 난다고 해요. 피트 향 강한 위스키는 일본 제품들도 좋더라고요.
권 지난해 일본에서 닛카 위스키 창업주 다케쓰루 마사타카를 소재로 한 드라마 <맛상>이 대박 나서 일본 안에서도 싱글몰트 바람이 엄청나다고 하더라고요. 다케쓰루는 1900년대 초 위스키를 배우려고 스코틀랜드로 간 선구자죠.
김 아시아에서 싱글몰트 위스키가 나오는 나라는 대만하고 일본뿐이에요. 위스키는 1~2년 장사가 아니라 50년 이상 내다봐야 하는 사업인데, 그런 면에선 일본이 대단한 것 같아요.
권 초보자들이 취미로 술에 입문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게 좋을까요? 초보자에게 어울리는 술도 추천해주세요.
김 좋은 선생님을 찾는 게 우선입니다. 한국 바텐더들 수준 정말 높아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요. 초보자에겐 블렌디드 위스키면서 스모키 향이 강한 ‘조니워커 더블블랙’을 추천합니다. 가성비 최고죠.
권 저도 외국 출장 나가면 꼭 현지 바에 가보는데, 우리나라 바텐더들 정말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 거 같아요. 더블블랙은 저도 동감합니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칵테일로 먹어도 좋고, 최고죠. 마지막으로 원론적인 질문인데, 작가님에게 술은 어떤 의미인가요?
김 내 감정을 받아주는 친구라고나 할까요. 밖으로 표현 못하는 마음속 기쁨이나 슬픔을 어루만져주는 친구요.
권 멋있는 말이네요. 건배하시죠!
김 건배!
인터뷰는 인근 천호동의 핫플레이스 ‘유미마트’로 자리를 옮겨 밤 10시까지 장장 7시간 동안 진행됐다. 세계 여러 나라 진귀한 크래프트 맥주와 ‘육사시미’ 안주의 조합을 맛볼 수 있는 특이한 곳이었다. 그날 취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정리·사진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술을 소재로 한 만화 <한잔의 맛> 장면.
김양수 작가 제공
술을 소재로 한 만화 <한잔의 맛> 장면.
김양수 작가 제공
그동안 만취해 마신 술에 미안해져
‘단 술’로만 알았던 칵테일에 관심
한국 바텐더 수준 세계적이더라” 권태훈(이하 권)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며) 작가님과 한잔하려고 술을 하나 챙겨왔습니다. 김양수(이하 김) 와! ‘요이치’(일본 싱글몰트 위스키 증류소이자 브랜드)네요! 감사합니다. 이거 귀한 건데. 권 얼마 전 일본 삿포로 여행 갔다가 그곳 양조장에서만 파는 술이 있길래 사왔습니다. 김 (술을 한모금 마시며) 캬! 이거 좋은데요. 스모키 향이 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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