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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 손맛 말고 뭣이 중헌디!

등록 2016-06-16 09:04수정 2016-06-23 14:13

서울 방배동 프렌치 레스토랑 ‘더 그린 테이블’의 김은희 오너셰프가 만든 뵈르블랑 소스에 익힌 랍스터.
서울 방배동 프렌치 레스토랑 ‘더 그린 테이블’의 김은희 오너셰프가 만든 뵈르블랑 소스에 익힌 랍스터.
남성 일색 요리계에서 최고 실력으로 살아남은 여성 요리사 김은희·김민지

식탁에 ‘사계절’ 올린 김은희
활력·개성 넘치는 밥상 김민지
여성 셰프에 인색한 현실에도
노력·강단으로 ‘롤 모델’ 만들어
·
최현석, 오세득, 정호영, 샘 킴…. 이들의 공통점은? 요리사인데,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식품을 넘어 가전제품의 광고모델로도 활약 중이다. 올해 들어 요리사의 인기가 거품 빠진 맥주 같단 말도 나오지만, 여전히 ‘셰프 전성시대’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들 틈에 여성은 없다. 음식전문채널은 남성 요리사 공화국이다. 전국 116개 대학 조리학과의 한해 졸업생은 약 2만여명이다. 그중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그런데 여성 스타 요리사는 없다.

<한국방송>의 이욱정 음식문화 전문피디는 “일단 숙련된 여성 셰프의 수가 매우 적다”고 지적했다. 또 “요리 프로그램의 주 시청층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요리하는 남성은 은연중에 성적 매력을 풍기는 반면, 거친 주방 환경을 버텨낸 여성 셰프한테선 남성스러운 면이 도드라져 보인다. 남성 시청자도, 여성 시청자도 남성스러운 여성 셰프에게는 큰 매력을 못 느낀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가뭄에 단비처럼 ‘여성 셰프’로서 롤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이들은 있다. 더구나 1~2년 버티기도 어려운 레스토랑 업계에서 7~10년을 ‘오너 셰프’(주인장 겸 요리사)로 한자리를 지킨 이들이다. 한국의 프렌치 파인 다이닝(고급 정찬)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거의 유일한 여성 요리사 김은희(40) 셰프와 한식 요리연구가들 사이에서 실력으로 검증받은 김민지 셰프를 만났다.

김은희 셰프, 녹색 식탁에 땀 쏟다!

서울 방배동의 레스토랑 ‘더 그린 테이블’의 김은희 셰프는 ‘신기하게도’를 입에 달고 산다. “신기하게도, 제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천사 같은 이가 직원으로 들어왔어요.” “신기하게도, 월세 낼 돈도 없었을 때 강연 요청이 들어와 도움이 됐어요.”

‘신기하게도’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부적이다. 힘을 주어 되뇔수록 그 부적에선 지독하게 짠 땀 냄새가 난다. 2009년 ‘더 그린 테이블’이 세상에 나온 뒤 7년 동안 그가 쏟아부은 땀이다.

그는 환경공학을 전공한 웹디자이너였다. 2000년대 초, 당시만 해도 내성적이던 그가 몇 초라도 한눈을 팔았다가는 피칠하기 딱 좋은, 좀비 세상을 방불케 하는 주방에서 건장한 사내들을 진두지휘하게 될 줄은 몰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직장이 홍익대 근처여서 그는 홍대 인디 음악문화에 푹 빠졌다. 고3 때도 <유리알유희>(헤르만 헤세의 소설)를 끼고 살 정도로 감성이 풍부했던 그는 록그룹 ‘시나위’, ‘도어스’ 등의 음악을 접하고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음악이 요리사의 길로 인도한 셈이죠. 어렸을 때 미술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오남매 집안에서 뒷바라지를 해주기엔 빠듯해 포기했어요. 그 뒤론 미술 대신 요리 방송에 푹 빠졌어요. 미술처럼 손으로 하는 작업이라 그런지 끌리더군요. 그런데 음악을 듣다 보니 그때의 감성이 되살아나더라고요.” 그러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가벼운 접촉사고였지만 “인생을 돌아보게 됐”다. 인생이 실컷 맘껏, 제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도 짧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은희 셰프.
김은희 셰프.
그길로 그는 미국 뉴욕주의 유명 요리학교 ‘시아이에이’(C.I.A.)로 향했다. “산수 시험도 봐요. 영어는 어려웠는데!”(웃음) 17~18살인 미국 동급생들은 주방에서 100인분을 20인분으로 바꿀 때 줄여야 하는 식재료 계산을 못했다. 휴일에는 학교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의 뉴욕시에 가 유명한 레스토랑 탐방을 했다. 졸업 요건인, 여덟달 동안 식당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과정은 ‘블레이’, ‘크루’, ‘파크 애비뉴 카페’ 등에서 거쳤다. 하루 꼬박 16시간 동안 200~300인분의 양파를 깎고 설거지를 했다. 옷은 언제나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허수아비처럼 말라갔다. 일이 끝나면 2g도 안 되는 신문지도 집을 수가 없었다. 잡으면 툭 떨어졌다. 팔 힘은 무거운 무쇠 팬이 이미 가져가버렸다. 밤 1시, 배고파서 퇴근길에 먹은 도넛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야말로 눈물 젖은 도넛이다.

하지만 “존경하는 셰프님”이 해주는 “은희, 잘했어!” 한마디면 “만사가 ‘오케이”(OK)였다. “불에 데고, 칼에 베여 상처가 났지만 정말 재미있었죠.” 실력은 좋았다. 파크 애비뉴 카페에서는 인턴인데도 샐러드, 파스타 같은 요리의 한 파트를 책임졌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턴 모집에서 탈락한 적도 있지만, 일단 주방에 입성하면 그를 보는 눈길이 달라졌다. 단 전제조건은 있었다. “미친 듯이 일한다면!”

2006년 귀국한 뒤엔 레스토랑 컨설턴트와 푸드스타일리스트였던 두 언니들과 함께 3년 동안 쿠킹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치열한 외식 시장에 진입한 건 2009년 레스토랑을 열면서다. 쉽지 않았다. 그는 특히 올림픽과 월드컵이 싫다. 응원을 하다가도 한숨이 나온다. 개업 이듬해 남아공 월드컵이 열렸고, 2012년엔 런던 올림픽이 있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땐 매출이 반으로 뚝 떨어지죠. 며칠 동안 손님이 한 명도 없기도 해요.” 하지만 다시 칼을 잡으면 힘이 났다.

그의 식탁은 한국의 사계절을 소포장한 느낌이다. 20여 가지 허브, 과일, 채소 등을 버무린 샐러드의 소스에는 매실청이 들어간다. 에스카르고(프랑스식 달팽이요리)는 국내산 달팽이로, 아이스크림은 오디 퓌레(갈아 만드는 것)로 만든다.

이탈리아 음식인 파스타와 리소토가 코스에 들어가는 점이 독특하다. ‘뵈르블랑 소스(버터, 샬롯 등으로 만든 소스)에 익힌 랍스터’는 단아하고 강단 있는 그의 성품을 잘 드러낸다. 거품 아래 누운 랍스터 살은 이가 짜릿한 탄성을 지를 정도로 탱탱하다.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소박하지도 않다.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셰프로 꼽히지만 어려움은 여전하다. 직원들과의 소통, 출근하기가 겁날 정도로 자주 고장나는 펌프와 전기, 손님들과의 감정노동 등. “뉴욕에서 발간한 요리책 <온 더 라인>에 쓴 ‘매일 출근하는 것이 겁난다. 매일 고장나는 것이 너무 많다’라는 글귀가 매일 떠올라요.” 주방 전기가 다 꺼져 촛불을 켜고 조리한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차 한 잔 들고 2층의 비밀계단을 통해 옥상에 올라간다. 하늘과 작은 허브 정원을 보고 ‘신기하게도’를 또 읊조린다. 결혼? “당연히 하고 싶죠. 나를 닮은 인격체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보고 싶어요. 아들은 꼭 요리사를 시킬 거예요. 하지만 그 전에 음식이 맛있어서 오는 작은 호텔을 만들고 싶어요.”

일과 사랑 모두 잡은 김민지 셰프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여성 셰프들은 결혼이 쉽지 않죠. 주방에만 있다 보면 이성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어요.” 요리사들의 하루 일과는 빡빡하다 못해 물 샐 틈이 없다. 식재료 욕심이 많다면 업무는 동트기 전부터 시작한다. 새벽 수산물시장에 가 누구보다 먼저 신선한 생선을 잡아채야 한다. 오전 9시에 연 레스토랑은 밤 11시가 돼야 닫는다. 남들 한가하게 데이트하는 주말은 가장 분주한 날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서울 청담동 ‘민스키친’ 김민지(41) 셰프의 결혼은 한동안 요리업계의 화제였다. 한달 전에는 출산도 했다.

“아이는 가질 생각이 없었어요. 이 일을 육아와 병행할 자신이 없었죠.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식당을 키워왔는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잖아요. 전 제 일이 좋습니다.” 2007년, 레스토랑 문 열고 6개월간 손님이 없어 매일 울었다. 2009년부터 소문이 나면서 이제 겨우 적자를 면한 상태다.

출산 고민을 덜어준 이는 8년간 연애해 결혼한 남편이었다. 육아를 적극적으로 분담하겠다는 남편의 말이 힘이 됐다. “믿음직스러운 신랑”은 문 연 이듬해에 찾아왔다. 잠시 아르바이트를 할 요량으로 매니저로 들어온 남편은 그와 연인이 됐고, 두 사람은 이제 같은 길을 걷는다. 자영업자의 어려움, 새로운 맛의 창조자로서의 고뇌를 함께한다.

서울 청담동 한식 레스토랑 ‘민스키친’의 김민지 오너셰프.
서울 청담동 한식 레스토랑 ‘민스키친’의 김민지 오너셰프.
경호학과를 졸업한 남편은 다부진 몸집에 6살 연하로 말이 적고 우직한 반면, 그는 잘 웃고 애교 많은, 화사한 스타일이다. 서로 톱니가 잘 맞는 천생배필이다. 때로 사장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종업원이 하극상을 벌이거나, 나이 많은 손님이 묘한 눈초리로 “여자가 주인이냐?” 되묻는 현실에서 자신을 지지해주는 배우자는 레스토랑을 키워가는 데 큰 힘이 된다.

그는 출산 전날까지도 80인분의 요리를 해낸 지독한 일 중독자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식당으로 전화를 했다. “진통이 와 병원에 가면서 식당 식구들에게 전화를 했어요. 알레르기 있는 손님, 돼지고기 안 먹는 손님, 맥주잔을 자주 바꿔줘야 하는 손님을 다 알려줬죠.” 병원에서도 좌불안석이었다. 주방의 지글거리는 소리와 생새우의 비릿한 향이 그리워 미칠 지경이었다. 육아휴가는 한달 만에 끝났다.

‘워킹 맘’으로서 고민은 없을까? “결혼했다고, 아이를 낳았다고 요리사로서 내 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주변 지인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의 총량보다 질을 높이자 결심했죠.” 요즘 그는, 점심 장사가 끝난 뒤 두어 시간 있는 브레이크 타임에 집에 들러 아이의 볼을 쓰다듬고 입을 맞추며 놀아준다.

본래 그는 요리와는 거리가 한참 먼 이였다. 19살에 목관악기 연주자의 꿈을 안고 네덜란드로 유학 갔다. 캠핑 여행에서 프랑스 요리의 맛에 홀딱 반해버렸다. 하루 3시간 기차를 타고 파리로 요리를 배우러 다녔다. “하얀 조리복이 어찌나 멋있어 보였는지 오페라 무대는 생각도 안 났어요.” 친구들에게 해준 카펠리니(얇은 파스타 면) 비빔국수, 숙주냉채, 갈비는 ‘원더풀’ 소리를 들었다. 2000년에 귀국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일하면서 쿠킹 클래스도 운영했다. 체력은 타고났다.

레스토랑을 연 이유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 때문이었다. 부친은 2007년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제 뿌리가 뽑힌 것 같았어요. 모든 일을 놓아버렸죠. 어릴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께 의지를 많이 했거든요. 편찮으실 때 콩잎보쌈, 배추탕 등 매우 맛있는 건강식을 자주 해드렸어요. 그 메뉴로 나를 추스르려고 식당을 낸 겁니다.”

김민지 셰프가 만든 잣소스를 뿌린 새우냉채.
김민지 셰프가 만든 잣소스를 뿌린 새우냉채.
그의 음식은 활력이 넘치고 개성이 뚜렷한 한식이다. 차림표만 보면 평범해 보인다. 콩나물냉채, 차돌박이구이, 소고기찹쌀구이, 삭히지 않은 홍어찜, 참기름에 버무린 나물과 청포묵무침 등. 하지만 막상 눈앞에 나타나면 젓가락을 대기가 아쉬울 정도로 아름답다. 자르고 저미고 두드리고 버무리고 무치는, 한식의 번거로운 조리 과정도 잊게 된다. 잣 소스를 뿌린 새우냉채는 바다와 산이 만났다.

그도 자영업자다. 창업시장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2012년 서울 연희동에 연 2호점은 곧 닫을까도 고민 중이다.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 스트레스가 심할 때, 그는 걷는다. 집에서 30분이면 도착할 레스토랑을 골목골목 누비면서 1시간을 걷는다. 레스토랑에 도착하면 힘이 난다. 그리고 “계속 ‘민스키친’을 하는” 자신의 꿈을 되새긴다. 그와 2년간 호흡을 맞춘 종업원 최혜림씨는 그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레스토랑 운영도 열심히 하고, 요리도 잘하고, 가정도 행복하게 꾸리는 사장님은 여성으로서 제 롤 모델입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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