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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꾼의 끈기, ‘돈가스의 역사’를 쓰다

등록 2016-09-21 19:49수정 2016-09-21 19:53

[매거진 esc] 일본식 돈가스 맛의 원조 ‘명동돈가스’ 30여년 운영해온 윤종근씨
‘명동돈가스’의 로스가스. 박미향 기자
‘명동돈가스’의 로스가스. 박미향 기자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돈가스는 빈대떡처럼 얇고 겉이 딱딱했다.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폼 잡고 먹는 음식이었다.” 서울 명동 ‘명동돈가스’ 주인 윤종근(81)씨의 회상에는 어딘가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그가 대학생이었던 1950년대에는 두께가 2㎝ 정도인 도톰한 돈가스가 없었다. 미리 잘라져 나와, 포크와 나이프 없이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두꺼운 일본식 돈가스는 그가 명동돈가스를 개업하면서 이 땅에 널리 퍼져 나갔다. 1983년, 그의 나이 마흔일곱일 때다.

전처럼 납작하고 성인 남자 얼굴만한 돈가스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을 통해 전해졌다고 한다. 당시 수프와 곁들여 먹는 ‘돈까스’는 최고로 우아한 외식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도톰한 일본식 돈가스는 1880년대에 이미 일본인을 통해 소개된 적이 있지만, 조선인의 입맛에 맞지 않아 대중화에는 실패했다. 그로부터 100여년 뒤, 외식문화가 확산되고 색다른 맛을 찾는 사람들의 욕구가 커지면서 명동돈가스의 일본식 돈가스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명동이다 보니 개업 첫날부터 손님이 몰려왔다. 하지만 다들 ‘뭐 이런 두꺼운 돈가스가 있느냐’며 시비조였다”고 한다. 하지만 항의는 오래가지 않았다. 납작한 돈가스와 달리 도톰해서 고기 자체의 풍미가 제대로 느껴졌다. 고깃결은 쫀득하면서 부드러웠다. 겉은 딱딱하지 않고 바삭했다. 사람들은 그 맛에 빠져들었다. 아삭한 양배추샐러드와 살짝 달콤한 듯 쓴 듯 한 독특한 소스도 입소문에 한몫했다. 하루 700~800명이 몰려들고 구자경(엘지그룹 명예회장) 같은 기업인이나 가수 현인 등이 찾자 더 유명해졌다. 전국에 ‘명동돈가스’란 간판을 단 식당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윤씨는 “상표등록을 했기에 바로 전화를 걸어 간판을 내리라고 했다. 지방까지 쫓아간 적도 있다. 하지만 다들 먹고살려고 그런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일을 관뒀다”고 말했다.

30년 넘게 명성을 이어온 명동돈가스는 지난해 초 갑자기 문을 닫아 많은 단골들을 아쉽게 만들었다. 일본식 돈가스 맛의 원조가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두 달 전 명동돈가스는 건물을 리모델링해 말끔한 얼굴로 다시 나타났다.

‘명동돈가스’의 코돈부르. 박미향 기자
‘명동돈가스’의 코돈부르. 박미향 기자

지난달 30일 찾은 명동돈가스는 만석이었다. 주인 윤씨는 “경기가 안 좋은데 여전히 찾아주는 손님이 많아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3층 건물 1층에는 누구나 조리과정을 지켜볼 수 있도록 주방이 개방돼 있었다. 눈앞에서 지글지글 기름 소리를 듣고 고소한 향을 맡을 수 있었다.

명동돈가스는 하루 두번 기름을 바꾼다. 90kg 정도 돼지의 등심이나 안심에 후춧가루만 쳐서 하루나 이틀 동안 냉장고에서 숙성시킨다. 밀가루와 달걀, 빵가루로 만든 튀김옷을 입혀 170℃ 정도의 온도에서 평균 7분간 튀기면 완성이다. 납작한 돈가스에 비해 두꺼워 손님이 직접 잘라 먹기에는 불편할 수 있다. 그래서 먹기 좋게 잘라서 나온다.

“창업 초기에는 기름이 붙은 등심을 썼다. 높은 온도에서 녹으면 고기에 스며들어 맛이 더 좋다. 하지만 손님들이 건강에 안 좋다면서 불만을 말하기 시작해 지금은 살코기로만 만든다.”

지금 명동돈가스에는 ‘로스가스’, ‘히레가스’, ‘코돈부르’ 등 6가지가 있다. 개업 초창기 5000원이었던 가격은 현재 1만2000~1만8000원이다. 여성들은 주로 채소가 들어간 코돈부르를, 남성이나 단골들은 로스가스를 찾는 편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조리법 배워 ‘한국적’ 변주
개업초 5천원 ‘고가’에도 문전성시에
‘도톰한 돈가스’ 전국으로 퍼져나가
1년여만에 재개장한 지금도 인기 여전

윤씨는 본래 요리사도, 외식업계의 큰손도 아니었다. 반도패션(현 엘지패션)의 영업임원까지 지낸 “장사꾼”이었다. 1983년 상사와 마찰 등으로 인생의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 잦은 일본 출장으로 알게 된 재일동포 지인의 조언이 가슴에 와닿았다. 먹는장사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그의 추천으로 찾아간 메구로 지역의 ‘돈가스 동키’는 최고였다. “그(재일동포 지인)의 주선으로 주인을 만났다. 큰절까지 하면서 조리법을 알려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주인은 요리조리 핑계를 대면서 피했다.”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일본어까지 배워 수시로 찾아가 끈질기게 설득했다. 석달 만에 결국 승낙을 받은 그는 한국인 요리사 2명을 대동하고 가, 소스를 제외한 조리법을 배웠다. “돈가스 동키의 주인은, 소스는 집집마다 다른 거라면서 그것만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는 돈가스 동키의 소스 맛을 기억해내, 그 맛을 바탕으로 명동돈가스만의 소스를 개발했다. 튀김옷을 세 번이나 입히는 돈가스 동키와 달리 그는 한번만 입힌다. “처음 돈가스 동키 식으로 하니 시간이 너무 걸려 손님들이 문제제기를 많이 했다.” 고객의 취향에 맞게 변주한 셈이다.

‘명동돈가스’ 주인 윤종근씨. 박미향 기자
‘명동돈가스’ 주인 윤종근씨. 박미향 기자
그의 철저한 사업철학과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투지를 칭찬하는 지인들도 있다. 지인들은 1982년 일본 도쿄의 뉴재팬호텔 화재 사건을 예로 든다. 당시 뉴재팬호텔 10층에 묵던 그는 불이 나자 시트 여러 장을 묶어 탈출했다. 일본인 신혼부부도 구해 각종 일본 미디어에 소개가 되는 등 화제의 인물이 됐다. 아픔도 있었다. 당시 사망한 33명 가운데 8명이 한국인이었다. 일본의 경영기법을 배우러 동행한 그의 동료들이었다. 보상 협상과 수습단장을 맡은 그는 주검 33구를 일일이 확인해 동료들을 가려내야 했다. 귀국해 한동안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응접실에 앉아 창밖을 보면 낮인데도 죽은 이들의 얼굴이 영화처럼 떠올랐다. 연기만 봐도 불안해서 잠을 못 잤다.”

요즘 인기있는 식당 주인들이 뛰어드는 분점이나 프랜차이즈 사업을, 그는 거들떠도 안 본다. 심지어 유명 백화점의 입점 요청도 거절한다. “백화점은 그들 계획에 맞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백화점 안의 가게 위치를 바꾸게도 한다. 주종관계의 종은 되지 않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요즘 그는 명동이 공동화될까 걱정이다. 명동은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화장품가게 거리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사드 배치 결정으로 최근 벌어진 중국과의 갈등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이 줄면 거리가 황량해질 게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양품점, 꽃집 등 다채로운 풍경이 공존했던 예전 명동 거리가 그립다고 그는 말한다.

1995년 3월28일치 <한겨레> 사회면에는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지면 한 귀퉁이에 실린 원고지 서너장 정도의 작은 기사에는 회갑을 맞은 그가 모교 경희대에 3억원을 기부해 장학재단을 설립했다는 내용이 실렸다. 평소 명동돈가스의 성공은 찾아온 많은 이들의 덕분이라는 그의 생각과 연결되는 결정이었다.

전문가들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으로 단절의 역사를 가진 우리 외식업계에서 우리 근현대 음식사의 한 장을 차지하는 명동돈가스가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음식칼럼니스트이자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인 예종석 한양대 교수는 “노포(역사가 긴 가게)는 외식업계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산이다. 명동돈가스처럼 역사를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식당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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