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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아니죠~ ‘개그 크리에이터’죠!

등록 2016-09-22 10:52수정 2016-09-22 11:47

[esc] 라이프
유튜브 통해 코미디 선보여 연예인 못지않게 주목받는 유준호·조섭·안재억씨
지난 1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서 유튜브 개그 크리에이터 ‘억섭호’ 멤버인 유준호(왼쪽부터), 안재억, 조섭씨가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지난 1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서 유튜브 개그 크리에이터 ‘억섭호’ 멤버인 유준호(왼쪽부터), 안재억, 조섭씨가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초등학생 때, ‘박재현’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코미디언 뺨치는 아이였다. 입만 열면 아이들이 자지라졌다. 웃음소리마저 특이해 웃기만 해도, 반 아이들 모두가 웃었다. 저렇게 웃긴데 왜 텔레비전에 안나올까라는 궁금증이 일 정도였다.

지금이었다면, 재현이는 스타가 됐을지도 모른다. ‘유튜브’라는 강력한 미디어가 있기 때문이다. 남을 웃기는 재능이 있다면, 언제든 영상을 찍어 올리기만 하면된다.

실제 유튜브에는 유명한 스타 개그맨의 인기를 넘어서는 아마추어 개그맨들이 많다. 이들은 코미디의 소재 발굴부터 촬영, 편집까지 스스로 해결한다. 프로듀서(PD)도 겸하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개그맨·코미디언이 아닌 ‘크리에이터’라는 호칭이 붙는다.

개그 크리에이터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은 이들이 유준호(27), 조섭(25), 안재억(26)씨다. 유준호씨는 이른바 ‘더빙 아티스트’라 불리며 광고 영상이나 애니메이션 등에 통통 튀는 더빙을 해 인기를 끌고 있다. 조섭씨는 각종 실험의 귀재다. 열대 과일인 리치를 많이 먹으면 코피가 난다는 속설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리치 수백개를 먹기도 한다. 안재억씨는 패러디 전문이다. 본인을 모나리자 초상화처럼 분장해 그림과 비교하는 식이다. 이들의 영상은 수억 회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고, 구독자는 수십만명에 이른다. 광고 수익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기가 치솟자 올해 초 이들의 이름을 딴 ‘억섭호’라는 전용 채널까지 만들어졌다. 이들을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회사도 있다.

소재 발굴부터 영상 촬영·편집까지
혼자 모든 과정 진행하며 ‘웃기기’
재밌다 입소문 나며 수십만명이 구독
“돈 보고 달려들면 망해…영상 신경써야”

각종 크리에이터들이 팬들을 위해 공연을 하는 ‘유튜브 팬페스트 코리아 2016’ 행사가 열리기 전날인 지난 1일,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에서 리허설 중인 ‘억섭호’를 만났다. 현실의 그들은 영상 속 ‘웃기는 인물’과 달랐다. 고민이 많은 진지한 청년들이었다.

이정국 기자(이하 기자) 어떻게 개그 크리에이터가 됐나?

안재억(이하 억) 원래 연기자가 되고 싶었다. 이런저런 오디션도 몇 번 봤는데 잘 안되더라. 그러던 중 다른 개그 크리에이터의 영상을 보고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고백송’ 영상을 만들었는데 고백송을 부르다가 갑자기 물벼락을 맞는 영상이었다. 이 영상 때문에 확 뜨기 시작했다.

개그 크리에이터 유준호.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개그 크리에이터 유준호.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유준호(이하 호) 영상회사 취직하려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더라. 성우가 되기 위해 학원을 다닌 것도 더빙하는 데 도움이 됐다.

조섭(이하 섭) 직업이 될 줄은 몰랐다. 원래 영상을 습관적으로 찍어왔다. 처음에는 혼자 밥 먹는 걸 찍어서 올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번 콘돔을 풍선처럼 갖고 노는 영상을 찍었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 이 뒤로 사람들이 나를 찾기 시작했다.

기자 처음부터 잘되진 않았을 텐데.

내가 조급해야 뭔가 할 수 있을 거 같아 1년 전 무조건 집 밖으로 나왔다. 처음엔 ‘별풍선’(인터넷 개인방송 ‘아프리카티브이’에서 시청자가 크리에이터에게 선물하는 돈의 일종) 벌어 보려고 별짓을 다 한 거 같다. 당시엔 월세 낼 돈도 없었다. 한 달에 10만원 정도 벌었다.

부모님이 “취직하라”고 닦달하셨다. 뭐하는 짓이냐며. 하하. 처음엔 스마트폰으로 촬영해서 올릴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인기가 올라가서 수입이 생기니 장비도 살 수 있고 점점 퀄리티가 좋아지더라. 지금은 좋아하신다.

기자 수입이 어떤가?

우리 나이 또래보단 많이 번다.

유튜브 쪽은 “일반 직장인보다 수입이 훨씬 많다”고 했다.

기자 텔레비전에서 활동 중인 개그맨과 차별점은 무엇인가?

그분들은 연예인이다. 우리는 일반인이고.(웃음) 우리는 시청자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다.

개그 크리에이터 안재억.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개그 크리에이터 안재억.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우리는 카메라 구도 잡는 것까지 생각한다. 콩트 하나를 기획하면, 촬영은 물론 편집, 소품 제작까지 다 우리가 한다. 개그맨보다는 연출자에 가깝다.

장르로 따지면 개그보다는 버라이어티 예능에 가깝다. 당연히 우리도 개그맨이 아니고. 우리가 개그맨이라고 하면 그분들에게 미안하다.

기자 학생들 사이에선 인기가 연예인 못지않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

억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가끔 학생들이 사인도 받아 간다. 신기하긴 하다.

지나가는데 “와, 조섭이다” 하면서 사람들이 몰려올 때가 있다. 조금 부담되기도 한다. 기 빨리는 느낌이랄까.

(신기해하며) 나는 목소리만 올라가서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 별로 달라진 건 없다.

유준호씨는 영상과 달리 말을 굉장히 ‘재미없게’ 했지만, 발음이 좋아 귀에 콕 박혔다.

개그 크리에이터 조섭.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개그 크리에이터 조섭.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기자 개그 소재는 어떻게 찾나?

지금은 제작 시스템 자체가 독자와 소통하는 방식이라 크게 어렵지 않다. 시청자들이 아이템을 준다. 시청자들이 방송 중에 댓글로 이런저런 주문을 한다. 전부 아이템이다. 웬만하면 다 하는 편인데, ‘‘63빌딩에서 떨어져봐라”, “호랑이 사육장에 들어가봐라” 이런 무리한 요구는 못 한다. 하하.

나도 비슷하지만, 어린 친구들이 많이 보기 때문에 자극적인 소재는 가능하면 안 하려고 한다.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책임감도 생기더라.

기자 가장 자신있는 개그 분야는?

몰래카메라다. 스케일을 크게 하고 싶다. 크리에이터 중에 몰카만 하는 사람이 없어서 특화하려고 한다.

막말로 난 목숨 안 아끼고 다 도전한다. 역동적인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한번은 끓는 기름에 얼음을 넣는 실험도 해봤다. 무모했던 걸 인정한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더빙이다. 예전엔 3~4분짜리 영상 하나 만드는 데 20분 정도 걸렸는데 지금은 5분이면 끝난다. 그만큼 익숙해졌다. 별도의 대본도 없다. 영상 보면서 바로 더빙한다.

“대본이 없다고? 우와!” 유준호씨의 답변에 모두 감탄했다. 대본 없이 그렇게 자연스런 더빙이 나올 수 없다는 듯 “정말이냐”는 질문도 이어졌다.

기자 제2의 ‘억섭호’를 꿈구는 이들에게 해줄 말은?

보통은 처음에 돈을 보고 달려든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돈이 더 안 벌리더라. 재능을 믿고 안일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조회수도 안 나오고, 수익도 없으니 다들 중간에 포기한다. 꾸준하게 해야 한다. 나도 4년을 매일같이 영상을 올렸더니 하나가 걸려 뜬 거다. 슬렁슬렁 하면 안 된다.

지금도 이들은 일주일에 4~5개씩의 영상을 꾸준히 올린다.

맞다. 돈 벌고 싶어서 한다면 접는 게 맞다.

동감한다. 뉴스에서 크리에이터가 한 달에 몇천만원 번다 이런 기사 보고 시작했다간 오래가기 힘들다. 일단 이 일이 재밌어야 한다. 그리고 돈을 벌 생각보다 영상 만드는 데 재투자를 해야 한다.

투자가 중요하다. 더빙용 마이크 구입에 300만원 정도 썼다. 수익이 생기면 돈에 대한 집착이 커지는데, 투자로 돌려야 한다. 그래야 영상의 품질이 좋아진다.

기자 앞으로 꿈이 궁금하다.

다양한 영상을 찍으면서 시청자와 소통하고 싶다. 아직 연출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다.

행복해지고 싶다. 돈 많이 버는 게 꼭 행복한 건 아니었다. 매일 영상 찍어 올렸더니, 돈은 벌지만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더라. 간혹 영상 업데이트 시간이 늦어지면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최근 촬영할 땐 일이라는 생각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길게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삶의 안정도 찾고 싶고.

지금은 집에서 촬영을 하고 있어서, 일과 쉼이 구분되어있지 않다. 은근 스트레스다. 집 밖으로 출근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싶다. 마지막 목표는 ‘웃기는 장례식’이다. 내가 죽었을 때 나의 영상을 보며 다함께 웃는 장례식이었으면 좋겠다.

글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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