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포르나세티 특별전’에서 관람객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정국 기자
“어머, 너무 예쁘다.” 125개의 쟁반이 전시된 ‘꿈을 담아내는 방법’ 전시관에서 사람들의 감탄사가 연신 터져나왔다.
첫눈에 봐도 ‘이야’ 소리가 저절로 날 정도로 아름다운 디자인의 수납장 앞에선 흥분 섞인 말들이 들렸다. “갖고 싶다”, “이거 어디서 팔아?” 사람들은 마음이 ‘꽂힌’ 작품 앞에서 인증샷을 찍기 바빴다.
2일, 이탈리아 미술가 피에로 포르나세티의 특별전시회가 진행 중인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디자인전시관. 평일 낮 시간인데도 연인, 가족, 친구, 학생 단체 관람객들로 전시관은 적잖이 붐볐다. 지난달 22일부터 내년 3월19일까지 열리는 이 특별전엔 접시, 넥타이, 우산꽂이, 의자, 수납장 등 포르나세티의 작품 1300여점이 14개 주제로 나뉘어 전시돼 있다. 2013년 포르나세티 탄생 100주년(1913~1988)을 기념하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처음 열린 뒤, 파리 등을 거쳐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로 열린 전시회다. 특별전을 기획한 아트몬의 정아름씨는 “주말엔 관람객이 3천명 이상 몰린다”고 했다.
125개의 쟁반을 전시한 ‘꿈을 담아내는 방법’ 전시관. 이정국 기자
포르나세티라는 이름은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미술이나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작품은 ‘꼭 갖고 싶은 것’으로 꼽힌다.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 서울 1층의 빵집 ‘컨펙션’은 매장 한쪽 벽을 포르나세티 접시 6개로 장식했다. 접시에 프린트된 여성의 다채로운 표정이 밋밋한 벽을 재치 있고 역동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는 평을 받는다. 호텔 관계자는 “매장을 찾는 고객들이 사진을 찍어 에스엔에스(SNS)에 올리며 포르나세티 제품이라는 것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결혼을 앞두거나 신혼인 여성이 많이 가입하는 카페 등에선 “포르나세티 액자 샀어요”라든가 “신혼집 인테리어로 포르나세티 접시 어떨까요” 같은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인테리어 관련 카페에 올라온, 포르나세티 제품으로 꾸민 쇼룸 사진엔 “나도 꼭 이렇게 꾸며놓고 살아보고 싶다”는 댓글이 달린다. 향초를 직구했다는 블로거의 글엔 구입처 ‘좌표’를 찍어달라는 부탁이 줄을 잇는다. 대체 포르나세티가 누구길래, 그의 작품이 어떻길래 이토록 ‘선망’과 ‘자랑’의 대상이 되는 걸까?
화가로 시작한 포르나세티는 조각가, 설치미술가, 판화가, 스타일리스트 등 미술에 관련된 일은 모두 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특히 유명한 것은 19세기 이탈리아의 오페라 가수 ‘리나 카발리에리’의 얼굴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대단한 수집가이기도 했던 포르나세티는 우연히 프랑스 잡지에서 카발리에리의 얼굴을 발견하고 영감을 받아 1952년부터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카발리에리의 얼굴을 소재로 한 디자인만 350여개에 이른다. 또 다양하게 변형된 카발리에리의 얼굴은 쿠션, 향초, 접시, 쟁반, 액자, 가구 등 여러 생활용품에 프린팅돼 판매된다. 컨펙션에 걸린 접시 속 얼굴도 바로 그녀다.
벽을 포르나세티 접시로 장식한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빵집 ‘컨펙션’. 포시즌스 호텔 제공
포르나세티의 ‘인기 비결’은 바로 이런, 미술을 활용한 생활용품 판매 전략이다. 포르나세티의 작품은 그림뿐만 아니라 그림을 활용한 생활용품 자체의 디자인 완성도가 뛰어나다. 미술작품은 어쩐지 낯설고 어려울 것 같은데, 그의 작품은 미술관이 아닌 인테리어숍 등에서 만날 수 있어 대중 친화도가 높은 것이다. 아트몬 쪽은 “포르나세티의 그림 자체가 워낙 수준이 높은데 이를 친숙한 생활소품으로 접할 수 있어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서울시내 한 미술관 관계자도 “미술관 안 아트숍에서 파는 물품들은 기존 제품에 그림을 입히는 수준이 대부분인데, 포르나세티는 제품 자체의 디자인이 독특해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인테리어 마니아 사이에서
’얼굴’ 변주한 디자인소품 등 인기
디디피에선 아시아 최초 특별전도
한국선 가격 비싸 ‘직구’가 유리
의표를 찌르는 익살스러움도 큰 매력으로 꼽힌다. 카발리에리의 얼굴은 윙크를 하거나, 찌푸리거나, 안경이나 모자를 쓰는 등 다양한 변주로 유명하다. 찰리 채플린을 연상케 하는 콧수염이 달리거나, 눈을 가운데로 모으거나, 엉덩이에 눈, 코, 입을 그린 것들도 있다. 그런 얼굴들을 보다 보면 웃음이 터진다. 전시장에서 만난 디자인 전공 대학생 이현이(23)씨는 “포르나세티의 작품에는 요즘 말로 ‘빵 터지는’ 요소들이 많다.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하지’ 같은 의외의 것들이다. 다른 디자이너에게선 볼 수 없는 차별성”이라고 말했다.
실용성도 인기에 한몫을 한다. 가령 향초는 초를 태우고 난 뒤 펜꽂이나 꽃병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 특별전에 내놓을 작품을 직접 고른 그의 아들 바르나바 포르나세티는 “예쁜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어야 더 맛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작품을 관상용으로만 바라보지 말아달라는 의미다. 예술품을 사는 ‘미적 즐거움’과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생활의 즐거움’ 두 가지를 모두 챙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만족감을 주는 게 바로 그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가수 리나 카발리에리를 소재로 한 다양한 제품들. 이정국 기자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현재 공식 수입처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운영하는 편집매장 ‘10 꼬르소꼬모’다. 가장 인기 있는 카발리에리 접시가 개당 29만원이다. 머그잔은 26만원, 쿠션 27만원, 향초 28만원, 벽시계 70만원이다. 좀 더 큰 제품으로 올라가면 ‘넘사벽’ 수준이 된다. 꽃병이 150만원, 우산꽂이 280만원, 의자 890만원 등이다. 수납장 같은 대형 가구는 대형승용차 ‘그랜저’나 ‘제네시스’를 살 정도의 가격이다.
인터넷 오픈마켓에선 병행 수입 제품도 검색이 되는데, 정식 수입 제품보다 1만~2만원 싼 수준이라 이점이 별로 없다. 가품도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오픈마켓 판매자가 아예 가품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으니 잘 봐야 한다. 싸다고 덥석 샀다간 ‘짝퉁’ 소비자가 될 수도 있다.
가장 저렴한 방법은 역시 외국 직구다. 직구족이 명품을 살 때 많이 이용하는 ‘파페치’(farfetch.com)에선 카발리에리 접시가 18만원대, 향초 18만~20만원대, 꽃병 80만~90만원대다. 국내보다는 확실히 싸다. 직구의 경우 200달러(미국 기준·약 23만원)까지 면세이니, 이를 잘 활용하면 합리적인 가격에 포르나세티 제품을 살 수 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이탈리아의 오페라 가수 리나 카발리에리를 소재로 한 다양한 접시. 이정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