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요리
‘환경파괴·생명경시’ 비판 피해 대체 식재료 찾은 ‘도원’
‘환경파괴·생명경시’ 비판 피해 대체 식재료 찾은 ‘도원’
죽생버섯으로 식감 살리고
민어 부레로 풍미 더해
건해삼·건관자도 ‘특급 대체재’
품격 있는 육수는 가리비관자로
더 플라자 중식당 도원의 추성뤄 수석요리사가 지난 8일 ‘산라수프’, ‘상탕홍소건부레조림’, ‘불도장’, ‘해황소스활해산물’을 기자 앞에 선보였다. 산라수프는 쓰촨식 수프로 불도장만큼이나 최고 보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상탕홍소건부레조림은 말린 부레(어류의 공기주머니) 등으로 ‘상탕육수’(돼지뼈와 고기, 닭 등을 넣고 오래 끓여낸 대표적인 중식 육수인데, 도원에선 이곳만의 독특한 비법을 쓴다고 한다)를 내고 말린 농어 위, 청경채, 말린 부레 등을 같이 조린 음식이다. 향과 맛이 최고라 스님마저도 담장을 넘는다는 불도장, 커다란 킹크랩이 떡하니 얼굴을 내미는 해황소스활해산물도 보양식이다. 예전 같으면 샥스핀(상어 지느러미)이 들어갔거나 샥스핀에 곁들여 먹는 메뉴들이다. 하지만 추성뤄 요리사가 낸 어느 요리에도 샥스핀은 없었다. 지난 8월 샥스핀 사용 중단을 선언한 바 있는 더 플라자는 이날 대체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선보였다.
보양에 특급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중국인들이 특히 즐겨 먹는 샥스핀은 인간의 난폭한 식탐이 만들어낸 식재료다. 유럽 등의 환경보호주의자들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정한 멸종위기 동물인 상어를 식용으로 쓰는 데 분노했다. 특히 산 채로 지느러미만 잘라내고 몸통을 버리는 폭력적인 채취 방식에 오랫동안 문제를 제기해왔다. 국제사회의 압박에 샥스핀 최대 소비국인 중국조차 공식 연회 메뉴에선 빼는 것으로 결정했다. 유럽, 미국 등의 세계적인 호텔 체인들도 이미 몇년 전 주방에서 샥스핀을 퇴출시켰다. 국내에서도 메이필드호텔과 더 플라자, 그랜드앰배서더 서울 등 특급호텔 일부가 샥스핀 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더 플라자의 도원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40년 넘게 사용했던 샥스핀을 대체할 식재료를 발굴해, 지난달부터 메뉴에 넣었다. 샥스핀 사용을 금한 호텔 체인 메리어트와의 전략적 업무 제휴도 대체 식재료를 찾아낸 이유가 됐다. 이날 요리사가 내놓은 음식은 모두 샥스핀 대신 다른 재료로 만든 것들이다. 추성뤄 요리사는 “한국식 중식에서도 샥스핀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지만, 환경을 보호하자는 세계적인 여론 등을 무시할 수 없어 지난 1년간 샥스핀을 대체할 식재료 연구 및 메뉴 개발 등을 해왔다”고 말했다.
도원은 샥스핀과 유사하면서도 그 이상의 맛과 영양소를 가진 요리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도원의 요리사와 식음기획팀, 구매팀이 한 팀을 이룬 5명이 1년 동안 한국뿐만 아니라 홍콩, 중국의 산지와 고급 마트 등으로 대체 식재료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고른 식재료로 만든 요리로 여러 차례 시식회를 거쳐 5가지 넘는 음식을 최종적으로 골랐다. 추성뤄 요리사와 함께 대체 식재료를 찾아 다녔던 요리사 이경률씨는 “도원에서 40여년간 쓴 재료를 갑자기 쓸 수 없게 되었을 때 조금은 난감했지만 요리사로서 더 많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이들이 찾아낸 ‘무기’는 죽생버섯, 건민어 부레, 화고버섯, 자연산 건해삼, 건관자, 건송어 위 등이다. 모두 말린 것들이다. 이경률씨는 “말린 재료에서 풍미가 더 진하게 나온다. 재료에 따라선 말린 것의 영양소가 10배가 넘기도 한다”고 말했다.
죽생버섯은 한국에 송이버섯, 서양에 송로버섯이 있다면 중국에는 죽생버섯이 있다고 할 정도로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버섯이다. 부드러우면서 아삭아삭한 식감이 샥스핀과 닮았다.
샥스핀은 꼬리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 두 가지가 있는데, 꼬리지느러미를 더 고급 부위로 친다. 지금도 ‘통꼬리지느러미찜’ 등을 수십만원대의 고가로 파는 호텔이 있다. 도원은 말린 민어 부레로 그 맛을 낸다. 입술이 끈적끈적 붙는 듯한 말초적인 쾌감을 선물하는 상탕홍소건부레조림은 샥스핀찜 요리와 유사하다. 민어 부레의 힘이다. 이씨는 “몸에 좋은 민어 부레가 샥스핀의 진한 풍미를 만든다”고 한다. 민어 부레에는 샥스핀보다 콜라겐, 아미노산 등의 성분이 많다고 한다. 이 요리에는 말린 농어 위까지 들어가 특별한 식감을 제공한다.
해삼은 본래 중식에서 샥스핀과 맞수였다.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 해삼을 최고로 치는데 주로 자연산 해삼은 동해안에서, 양식은 서해안에서 구할 수 있다. 자연산 해삼은 15g 정도가 7000원이 넘을 정도로 고급 재료다. 과거 도원에서는 샥스핀을 넣는 요리에 해삼을 넣지 않았다. 고가 식재료 두 가지가 들어가면 가격도 오르고 지나치게 무거운 맛이 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샥스핀이 사라진 도원의 식탁에는 자연산 고급 해삼이 물을 만난 듯 접시마다 춤춘다. ‘광둥식 모듬해산물’, ‘불도장’ 등에서 제 자랑을 멈추지 않는다.
표고버섯 중에 고급으로 치는 화고버섯은 불도장에 샥스핀 대신 등판해 묵직하고 은은한 국물 맛을 낸다. 홍삼, 말린 민어 부레 등도 같이 들어가 화고버섯의 샥스핀 유사 맛 내기에 힘을 실어준다.
식재료를 쭉 설명하던 이씨가 말린 가리비관자를 내밀면서 “육수를 내는 데 가다랑어포, 멸치 등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은 재료”라고 말했다. 날로는 키조개관자를 많이 먹지만 진하고 품격있는 육수를 내는 데는 가리비관자가 더 좋은 재료라고 한다. 가리비관자는 샥스핀의 대체 주재료가 아닌 부재료다.
해황소스활해산물은 임진강 참게알을 쪄서 만드는 ‘해황소스’가 들어가는데 예전에는 이 소스가 주로 샥스핀과 만나 맛을 냈다고 한다. 희고 고운 킹크랩의 살 위에 올라간 해황소스는 보드라운 비단을 덮은 듯 따스한 맛이다. 샥스핀을 넣어 끓였던 산라수프도 화고버섯, 죽순, 송이버섯, 말린 해삼, 전복 등이 들어가 샥스핀의 맛을 낸다.
요즘 섬세한 맛을 찾아다니는 세련된 미식가들은 허영이 낀 먹을거리로 혀의 욕망을 몇초간 채우기보다는 자신만의 취향을 제대로 찾아주는 맛에 더 열광한다. 로고가 크게 박힌 루이뷔통 가방 대신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낸 디자이너의 백을 선호하는 젊은 ‘패피’(패션피플)들의 기호와 비슷하다. 샥스핀 없이도 샥스핀 맛을 내는 요리도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민어 부레로 풍미 더해
건해삼·건관자도 ‘특급 대체재’
품격 있는 육수는 가리비관자로
‘도원’의 불도장.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도원’의 상탕홍소건부레조림. 박미향 기자
‘도원’의 산라수프. 박미향 기자
‘도원’의 해황소스활해산물. 박미향 기자
‘도원’이 샥스핀 대체 식재료로 찾아낸 말린 민어부레, 관자, 해삼 등과 인삼 등.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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