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하남 스타필드서 열린 ‘스타워즈 로그원’ 특별전. 월트디즈니코리아 제공
“3대가 같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흔한가요.”
6일 ‘스타워즈 로그원 특별전’이 진행 중인 경기 하남 ‘스타필드’ 야외 특설 전시장 입구, 딸 현우(5)와 아들 민수(4)의 손을 잡은 김민석(39)씨가 말했다. 김씨는 “이 전시회 때문에 하루 연차를 냈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6: 제다이의 귀환>을 본 게 스타워즈 첫 경험이었다. 그의 아이들은 아직 어려 극장에 데려가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나온 7개 전 시리즈를 집에서 다 보여줬다. “애들이 나중에 커서 아이를 낳으면 또 스타워즈를 보여주겠죠. 그러면 4대가 함께 영화를 보게 되는 셈이네요.” 전시장 문이 열리자 김씨는 흥분한 표정으로 아이들과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전시는 최근 개봉한 영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 맞춰 기획됐다. 관람객이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미션을 수행해 나가는 체험형으로 짜여 있다. 성인 기준 입장료 1만8000원, 결코 저렴하지 않다. 그런데도 주말에는 한팀 최대 인원인 30명을 꽉 채워 입장을 할 정도로 줄을 선다고 한다. 행사를 주관한 라이브모션픽쳐스엔터테인먼트 쪽은 “아이들을 위해 초점을 맞춘 전시임에도 어른들이 더 좋아한다. 스타워즈는 세대를 초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타워즈족 정나영씨 부부의 결혼식 청첩장. 정나영씨 제공
스톰트루퍼 의상을 직접 제작한 김동훈씨. 김동훈씨 제공
전시회의 인기가 아니더라도, 스타워즈는 더는 마니아들만 열광하는 콘텐츠가 아니다. “그 사람 포스 있더라” 따위의 말은 일상적 용어가 된 지 오래일 정도로 스타워즈는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일종의 ‘기’에 해당하는 ‘포스’는 스타워즈 속 제다이 기사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능력을 일컫는다.
학습만화 스토리 작가인 정나영(37)씨와 공무원 남편은 일상생활에서 스타워즈 관련 콘텐츠를 즐기는 ‘스타워즈족’이다. 시작은 정씨였다. 그는 어릴 때 극장에서 가족과 함께 스타워즈 오리지널 시리즈를 보고 팬이 됐다. “영화는, 광속 우주선 등 고도의 과학 기술을 지닌 세상을 매우 오래된 과거로 설정하면서 시작한다. (우리가 미래의 일이라고 상상하는 것을 과거로 설정한) 시대적인 불일치가 흥미로웠다”고 그는 말했다. 스타워즈가 좋아 영화를 보고 관련 수집품을 모으며, 온라인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동호회까지 만들었다. ‘뉴 엠파이어’라는 모임인데, 회원 10여명이 모두 여성이다. “여성이 스타워즈 같은 공상과학(SF)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편견이 있지만 우리는 스타워즈 외전 소설까지 챙겨 볼 정도로 적극적”이라고 그는 말했다.
2013년, 결혼식을 앞둔 정씨는 결혼도 스타워즈 스타일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청첩장은 부부가 ‘스톰트루퍼’ 헬멧을 쓰고 찍었고, 식전 영상은 스타워즈의 유명한 ‘자막 오프닝’을 패러디해 각자의 삶을 글로 담았다. 행진을 할 때 친구들은 꽃가루 대신 광선검으로 부부의 앞날을 축하해줬다.
이런 정씨와 지내다 보니, 남편도 자연스럽게 스타워즈에 빠져들게 됐다. ‘다스베이더’ 같은 피규어나 광선검, 각종 의류, 운동화를 수집했고, 재작년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4 스타워즈 한정판을 40만원 넘는 가격으로 구입하기도 했다. “아디다스 밀레니엄 팰컨 야구 점퍼는 소량만 수입되는 바람에 예약을 걸고 힘들게 구매했던 기억이 나요.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이죠. 지금 있는 ‘아나킨 스카이워커’(훗날 다스베이더) 광선검 말고, 모양이 더 멋있는 ‘오비완 케노비’의 광선검과 ‘아르투디투’(R2D2) 모양을 한 프로젝터를 꼭 갖고 싶어요.” 정씨의 작은 소원이다.
<로그원> 개봉에 전시회·패션쇼 등
다양한 문화행사·마케팅 인기
피규어 수집, 코스튬 제작에
결혼식까지 ‘스타워즈식’ 진행
스스로 영화 속 의상까지 제작한 경우도 있다. 취업준비생 김동훈(28)씨는 스타워즈 글로벌 팬클럽인 ‘501군단’에서 활약하면서 ‘스톰트루퍼’ 옷을 직접 만들었다. 초등학생 때 동네 청소년회관에서 오리지널 시리즈 재개봉 버전을 우연히 본 뒤로 스타워즈의 매력에 빠졌다. 2015년엔 ‘스톰트루퍼’가 출현해 화제가 된 서강대 서강문화제에 자문을 받아주기도 했다. “쉽고 재밌어요.” 그가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이유다. 어린아이가 봐도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이야기 구조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봐도 재밌을 정도라는 것이다. 게다가 오리지널 시리즈는 모두 7편이다.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정복’이 가능하다.
그가 코스튬 제작에 관심을 가진 것은 평소 즐겨 찾던 스타워즈 마니아 ‘잰나’의 블로그를 통해 ‘501군단’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이곳은 스타워즈 코스튬을 입고 활동하는 팬클럽이다. 가입하려면 반드시 코스튬을 만들어 심사를 받아야 한다. 단순히 따라하기 정도로는 가입이 안 된다. 영화 속 캐릭터와 세심한 곳까지 일치해야 한다는 수백가지 가이드라인이 있을 정도다. 그는 인터넷을 뒤져 ‘501군단’의 공식인증을 받은 코스튬 제작 키트를 600달러에 구입했다. 본인이 제작할 경우 이 정도 가격이다. 업체에 조립까지 맡기면 두배가 넘어간다고 한다. 2015년 9월에 처음 키트를 구입해 이듬해 4월 완성했다. 501군단 가입 뒤엔 지난해 5월에 열린 스타워즈 데이와 지난달 <로그원> 팬 상영회에 공식 참여했다.
질레트 ‘프로쉴드: 로그원 기프트팩’. 질레트코리아 제공
왜 이렇게 열성일까. 답은 간단했다. “좋아하니까요. 스타워즈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스타워즈가 곁에 있으면 훨씬 더 좋으니까요.” 스타워즈 마니아이기도 한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이승한씨는 “스타워즈의 인기는 현실의 상황과 닿아 있다. 신적인 악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선을 이루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게 기본 구조다. 한국인에게 낯설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업의 ‘스타워즈 마케팅’도 활발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의류 쪽이다. 디자이너 한상혁은 지난달 20일 서울 청담동에서 스타워즈를 주제로 한 패션쇼를 열었다. 스타워즈의 미래적 이미지를 비즈나 컬러 은박지 등을 사용해 표현한 것인데, 애초 지난해 10월 서울패션위크 기간에 선보이려고 했던 것을 영화 개봉에 맞춰 미뤘다. 유니클로 같은 스파(SPA)브랜드도 <로그원> 맨투맨 티셔츠를 내놨고, 스포츠 브랜드 데상트도 관련 의류, 운동화, 모자 등을 출시했다. 면도기 브랜드 질레트는 ‘프로쉴드: 로그원 기프트팩’을 내놔 좋은 반응을 얻었고, 엘지전자는 스마트폰을 스타워즈 분위기로 꾸밀 수 있는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 스타워즈 마케팅은 의류, 생활용품, 아이티(IT) 제품을 망라하고 있다. “다스베이더 토스터를 사고 싶다”는 스타워즈족 동시통역사 박민아(36)씨는 “일단 스타워즈 관련 제품은 대체적으로 디자인이 잘 뽑혀 나온데다가 ‘나도 스타워즈 팬이다’라는 사소한 뿌듯함도 덤으로 준다”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