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6일 오후, 영등포구청역에서 5호선 지하철을 탔다. 인터뷰를 마치고 공덕역 근처 신문사로 복귀하는 길. 영등포시장에 멈춰 승객을 태운 열차는 곧 신길역에 도착했다. 여느 역에서처럼 출입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오르내렸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그런데 어, 이상하다. 열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왜 안 가지’ 하는 순간 다시 문이 열렸다. 일부 승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리번거렸다. 이유를 설명하는 안내방송도 없이, 열차는 그렇게 멈춰 섰다. “사고 났나.” 소곤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마침 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열차 안에는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렇게 30초, 그쯤 지난 것 같았다. 문은 닫혔고, 열차는 출발했다.
“안내방송 드립니다.” 그제야 굵지도 얇지도 않은 남자 기관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출입문 고장이거나 앞차와의 거리 조정이거나 누군가 끼었거나겠지.’ 속으로 생각했다. 흔한 상황이니까. 하지만 웬걸.
“손님 여러분, 5호선은 절대 일행을 떼어놓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승객들도 어리둥절. 잠시 후 몇몇이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아, 그랬구나. 일행이 지하철에 다 오르기도 전에 문이 닫혀 열차를 쫓아가며 “다음 역에서 봐” 소리쳐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다시 문이 열리는 게 얼마나 큰 은총인지를. 이런 센스쟁이 기관사라니! 나도 모르게 씩 웃음이 나왔다.
기관사의 배려로 다시 만난 일행은 잠시나마 이산가족 상봉만큼 큰 행복을 느꼈을 게다. 기관사가 떨어진 일행을 함께 태우기 위해 무려 30초 동안 문을 열어뒀는지, 앞차와의 거리 조정 등 다른 이유가 겹치면서 정차 시간이 좀 더 길어졌는지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다. 아무렴 어떤가, 말 한마디가 천냥빚을 갚는다는데. 같은 상황이라도 말을 달리하면 누군가에겐 웃음을 줄 수있다. 기관사님, 님좀짱!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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