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ESC]
“매일이 사무치게 그리워서….”
“그럴 거 뭐하러….”
“어리석어서….”
지난 주말, 이 장면을 보다가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왕여(이동욱)와 김선(유인나)이 이별하며 나눈 대화. 900년의 회한과, 제대로 아끼지 못한 안타까움과, 그럼에도 어쩌지 못하는 사랑이 함축된 대사. 저한텐 김신(공유)이 소멸하는 마지막 장면보다 이 대화가 더 슬펐습니다.
다음날 아침. 눈이 잘 떠지지 않았습니다. 어, 왜 이러지. 가만히 누운 채 간밤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도깨비>를 봤고, 보면서 와인을 홀짝였고, 보다가 울었고, 울면서 맥주를 마셨고…. 네, 그랬습니다. 드라마에 지나치게 몰입해 감정이 격해진데다 이성의 작동을 ‘완화’시키는 술까지 들어가니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쏟아냈던 겁니다. 그러니 눈을 뜨지도 못할 정도로 탱탱 부어 아침을 맞이할 수밖에요.
창피했습니다. 어쩜, 한 살 더 먹어도 드라마 보다가 우는 습관을 못 버리나. 굴러가는 낙엽 보고 깔깔거릴 나이도 아니고, 공상에 빠져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망상증도 아닌데. 어쩌자고 잊을 만하면 이 난리일까. 자책감 때문에 한동안 기운이 쏙 빠지더군요.
작심삼일을 주제로 한 이번 주 커버스토리 기사를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받아들이자. ‘드라마 폐인’을 자처할 정도로 드라마를 좋아하고, 그 속의 다른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니 등장인물한테 감정이입을 하는 건 당연한 일. 드라마 보며 웃을 때가 있으면 울 때도 있는 거고,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건 내가 ‘공감능력’이 있기 때문일 터. 게다가 드라마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데 뭐가 문제랴. 이제 그만 울자 할 게 아니라 우는 나를 받아들이자.
‘정신 승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애초부터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세워놓고 스스로를 닦달하는 것보단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도전을 시도하는 것, 그조차 어렵다면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마음을 바꿔먹는 것 아닐까요. 전 그게 왕여처럼 “나조차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구나” 뒤늦게 후회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혜정 팀장 zesty@hani.co.kr
티브이엔 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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