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종류의 악기 가운데 나에게 맞는 악기는 무엇일까. 낙원악기상가 제공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정확한 키만 잡는 것뿐이다. 그러면 악기 스스로 연주할 것이다.”
과연? ‘음악의 아버지’ 바흐니까 가능한 말이다. 악기 연주는 결코 쉽지 않다. 악기 연주가 쉽다면 영화 <위플래쉬>의 주인공 앤드루가 피 나는 손을 붕대로 묶어가며 드럼을 연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목관이나 금관 악기의 경우 소리를 내기만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악기를 배우려고 한다. 연주하면서 희열을 느끼고 심리적 위안을 얻으려는 것이다. 상대방의 ‘하트 뿅뿅’ 눈빛을 받으려는 목적도 있다. 사춘기 시절 기타 한번 안 잡아본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악기 연주는 스스로 보기에도, 남이 보기에도 매력적이다.
직장인 정윤경(31)씨는 올해 초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바이올리니스트 헨리크 셰링의 ‘아름다운 로즈마린’을 듣고 감동을 받아서다. “간단한 멜로디인데 마음이 편안해졌다. 당장 인터넷으로 검색해 연습용 바이올린을 10만원에 구입했다.” 그리고 구청 문화센터 바이올린 강좌에 등록했다. 정씨는 “이제 겨우 활을 잡고 켜는 ‘보잉’ 자세가 잡혔는데, 가끔 울리는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나도 좋다. 일주일에 한번인 강의날이 기다려질 정도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는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악기 연주하는 사람이 더 행복
맞는 것 고르려면 ‘체험하라’ 조언에
바이올린·색소폰에 도전
해보니 알겠다 어떤 게 ‘내 것’인지
악기는 취미를 넘어, 평생의 동반자란 뜻의 ‘반려악기’로도 불리기 시작했다. 팍팍한 일상의 탈출구로서, 은퇴 뒤 여유로운 삶을 위해 자신에게 맞는 악기 하나쯤은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악기 연주는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2014년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의 ‘노인실태조사’ 결과에선 만 65살 이상 노인 가운데 악기를 연주하는 노인의 우울증 관련 점수가 일반 노인의 절반 수준이었다.
인터넷 오픈마켓 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피아노 등 건반악기의 판매가 전년 대비 210%, 클래식기타는 69%, 색소폰은 24% 오르는 등 대부분의 악기 판매가 늘었다. 많이 판매된 상위 5개 악기는 디지털피아노, 색소폰, 포크 기타, 바이올린, 하모니카 순서다. 대부분 친근한 것들이다.
최신해 한양악기사 대표가 바이올린을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이정국 기자
어떠한 악기가 나에게 맞는 것일까. 어떻게 구매를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수십년 동안 악기를 판매해온 악기상들의 조언을 들으려고 3일 서울 낙원동 악기상가를 찾았다. 악기상들은 악기 배우기를 포기하는 첫 번째 이유로 “싼 악기를 고집하는 것”을 꼽았다. 2대에 걸쳐 바이올린 수리와 판매를 해오고 있는 최신해 한양악기사 대표는 “연습용은 20만원 미만으로 구입이 가능하지만, 연습하다 보면 자기도 그 소리에 만족을 못하게 된다. 싼 악기만 고집하면 결코 오랫동안 악기를 배울 수 없다”고 말했다.
바이올린은 연주가 가장 어려운 악기 가운데 하나다. 기타처럼 코드를 잡는 표시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귀로 음을 조율하며 연주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 연주가 가능해지면 좋은 소리를 내고 싶어도 싼 바이올린 자체의 한계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 싫증을 낸다는 얘기다. 초기비용이 싸 바이올린을 많이 시도하지만 포기하는 사람도 그만큼 많은 이유다. 최 대표는 “정말 바이올린을 오래 두고 싶다면 조금 비싸더라도 어느 정도 소리가 나는 제품을 구입해 하루에 10분만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꾸준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루에 3~4시간 연습하는 것보다 좋은 악기로 매일 10분 연습하는 게 더 효과적이란 거다.
보통 추천하는 제품은 80만원 정도다. 기자도 이 제품을 잡고 활을 켜봤는데, 턱으로 전해지는 울림 소리가 썩 괜찮게 느껴졌다. 단풍나무와 소나무로 만든 몸체의 통울림이 바이올린 소리의 핵심이다. 알프스 산맥 인근 지역의 나무 품질이 좋아 유럽산을 쳐준다고 한다. 유럽산 명품 바이올린 가격은 수천만원대에서 측정 불가까지 다양하다. 취미용은 대부분 중국산이다.
김연성 베델악기 대표가 색소폰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정국 기자
그다음 중요한 것은 ‘체험’이다. 1990년대 중반 <사랑을 그대 품안에>란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 주인공 차인표 때문에 색소폰이 유행한 적이 있다. 당시 드라마 보고 색소폰 산 사람 가운데 지금까지 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물상에 팔지 않았으면 다행이다. 아무리 좋아 보여도 제대로 체험해보지 않으면 악기 궁합을 절대 알 수 없다. 낙원악기상가 색소폰 판매업체 베델악기의 김연성 대표는 “보기 멋있다고 무턱대고 사면 벽에 걸어놓는 장식용밖에 안 된다. 장식용은 별도로 판매하니 중도에 포기할 거면 괜히 비싼 악기 살 필요 없다”며 웃었다.
그에게 색소폰을 배워봤다. 한 시간도 안 돼 ‘도레미파솔라시도’를 해낼 수 있었다. 물론 숨도 차고 소리 내는 일 자체도 쉽지 않았지만, 확실히 바이올린보다는 색소폰이 나에게 더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우왕” 소리가 날 때는 마치 산 정상에서 “야호”를 외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 자리에서 살 뻔했을 정도로 매력을 느꼈다. 악기를 배우기 전에 직접 간단하게나마 연주해보라는 충고가 와 닿았다.
색소폰을 불기전에, 먼저 넥(목)으로 소리 내기 연습을 해야한다. 연습 중인 이정국 기자. 낙원악기상가 제공
색소폰은 바리톤부터 소프라니노까지 모두 8종류지만, 대부분 알토 색소폰에서 시작한다. 가장 중간의 소리이며,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김 대표는 “보통 80만~120만원 사이 제품이면 입문용으로 무난하다”고 말했다.
물론 바이올린이나 색소폰처럼 잘 알려진 악기 말고, 좀더 특이한 악기를 원할 수도 있다. 우쿨렐레는 한동안 열풍이 불었고, 최근엔 오카리나가 다시 유행 조짐을 보인단다. 초보용의 경우 우쿨렐레는 15만원, 오카리나는 5만원 미만이면 살 수 있어 경제적이기도 하다. 단, 이들이 배우기 쉬운 악기는 절대 아니다. “작은 악기일수록 어렵다”는 것은 악기상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충고다. 눈이 아닌, 몸으로 선택해 사야 하는 것이 악기라는 것을 잊지 말자.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