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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째 먹는 건강, 버터 없는 프렌치

등록 2017-03-22 20:24수정 2017-03-23 14:48

[ESC] 요리
요리사 히라타 아쓰시의 ‘프렌치 매크로바이오틱’
‘대두와 버섯 현미 크림 리소토’. 박미향 기자
‘대두와 버섯 현미 크림 리소토’. 박미향 기자
“매크로바이오틱은 채식과는 다른 요리의 세계입니다. ‘프렌치 매크로바이오틱’도 흥미로운 맛의 세상이죠.” 장수식 혹은 자연식 식이요법으로 알려진 매크로바이오틱(macrobiotic) 연구가인 이명희(59)씨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히라타 아쓰시(56) 셰프가 10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차 카페 ‘북스쿡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9~10일 ‘프렌치 매크로바이오틱 스페셜 디너’를 인사동에 위치한 식당 ‘꽃, 밥에 피다’와 ‘북스쿡스’에서 펼쳐 보였다.

음양 조화 따지는 매크로바이오틱

매크로바이오틱은 1927년 일본에서 ‘식사를 통한 건강법’으로 출발해 미국, 유럽 등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정작 발원지인 일본에서는 홀대받았는데 2000년대 톰 크루즈, 마돈나 등 미국 유명 인사들의 건강유지 비결로 알려지면서 일본에 역수입됐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흐름에 따라 한국에서도 몇해 전부터 관심을 갖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배추를 곁들인 순무 포타주’. 박미향 기자
‘배추를 곁들인 순무 포타주’. 박미향 기자
매크로바이오틱 전문가들은 식재료 본연의 영양소를 제대로 섭취하려면 뿌리, 잎, 껍질 등을 통째로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미나 최소로 도정한 쌀만을 권장한다. 이런 이유로 유기농이나 무농약 농산물을 재료로 쓴다. 이명희씨는 “지구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식사법”이라고 자랑했다. 내가 딛고 있는 땅과 날씨에 순응해 생산된 제철재료 섭취도 매크로바이오틱의 원칙이다. 하지만 채식과 달리 매크로바이오틱은 육류 섭취를 금지하지 않는다. 히라타가 자세히 설명했다. “매크로바이오틱에선 ‘음양의 조화’를 따집니다. 채소의 잎이나 줄기는 ‘양성’, 뿌리는 ‘음성’ 등으로 분류해요. 통째로 다 먹어야 우리 몸이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단것은 ‘음성’으로 분류하죠. 고기는 ‘양성’이고요. 쫓기며 사는 바쁜 현대인의 몸은 빠르게 양성화됩니다. 당연히 음성인 단것들을 먹고 싶어 하죠. 단것들을 자주 먹어 몸의 조화가 깨지면 각종 병에 노출될 수도 있죠.” 이씨는 “몸의 균형이 조화로울 때는 한달에 한번 정도 육류를 섭취해도 됩니다”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버터·생크림 없는 프랑스 요리

 ’흑미와 렌즈콩 요리, 두부와 오트밀 파테’. 박미향 기자
’흑미와 렌즈콩 요리, 두부와 오트밀 파테’. 박미향 기자
히라타는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매크로바이오틱 전문가다. 본래 그는 버터와 설탕, 생크림 등을 듬뿍 사용하는 프랑스 요리사였다. 고급 식재료인 푸아그라(거위 간), 캐비아(철갑상어 알)도 자신의 솜씨를 드러내는 데에 아낌없이 썼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푸아그라 같은 식재료가 생산되는 방식을 찾아봤더니 억지로 다량의 사료를 먹이는 등 매우 부자연스러운, 자연에 역행하는 방법이었어요. 미식이라는 이름 아래 이런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죠. 인간으로 치면 병든 간을 먹는 셈이잖아요.” 이런 질문이 마음속을 배회하며 불안을 증폭시킬 때쯤 그는 매크로바이오틱을 만났다. 15년 전 일이다.

’구즈키리(칡전분요리)와 직접 만든 감식초 마리네’. 박미향 기자
’구즈키리(칡전분요리)와 직접 만든 감식초 마리네’. 박미향 기자
그 무렵 레스토랑 ‘쿠시 가든’의 총주방장으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매크로바이오틱을 연구하며 자기 생활에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 식당은 매크로바이오틱 창시자인 사쿠라자와 유키카즈의 제자 구시 미치오가 인증한 곳이다. 히라타는 “먹는 방식을 바꾸니 생활방식도 바뀌었다. 조바심과 불안감이 사라졌고, 몸무게도 20㎏ 줄었다”고 털어놓았다.

전공인 프랑스 요리와 매크로바이오틱을 접목한 그는 10여년 전부터 일본 전역에서 프렌치 매크로바이오틱 강연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의 수업을 들은 이만 1천명이 넘는다. 2012년부터는 후쿠오카현 구루메시로 이사해 프렌치 매크로바이오틱 레스토랑 ‘하제’(Haze)를 운영하면서 강좌도 열고 있다.

채소잎은 양성, 뿌리는 음성
조화롭게 먹는 게 좋아
백설탕 대신 현미감주 쓰고
감식초 활용해 소화 도와

그는 동료 요리사들로부터 “버터나 생크림을 쓰지 않고 맛있는 프랑스 요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프랑스 요리의 전통적인 식재료인 버터, 생크림, 백설탕 등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요리사들은 이런 재료를 쓰지 않는다면 프랑스 음식이 아니라는 의견도 편다. 하지만 히라타는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프랑스 요리 전문 요리사도 있지만 독창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이들도 있다”며 “백설탕 대신 현미감주, 물엿, 조청 등으로 단맛을 내는 내 프랑스 요리는 매크로바이오틱을 접목해 더 건강하고 독창적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특한 식감의 자연식 향연

(위)‘제철채소, 감귤과 한천 발사믹’, ‘어솔트 디저트’(아래). 박미향 기자
(위)‘제철채소, 감귤과 한천 발사믹’, ‘어솔트 디저트’(아래). 박미향 기자
이날 그가 선보인 요리는 6가지 코스요리였다. ‘구즈키리(칡전분 요리)와 직접 만든 감식초 마리네’, ‘제철채소, 감귤과 한천 발사믹’, ‘배추를 곁들인 순무 포타주(걸쭉한 수프)’, ‘주머니 모양으로 만든 흑미와 렌즈콩 요리, 두부와 오트밀 파테’, ‘대두와 버섯 현미 크림 리소토’, 그리고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다는 뜻이 담긴 ‘어솔트 디저트’다.

감식초는 그가 하제에서 만들어 3개월 숙성시킨 것이었다. “감식초의 산미는 침을 분비하도록 해 소화에 도움이 된다”며 “아직 과일향이 남아 있는 식초”라고 말했다. 두번째 요리에 대해 그는 “에도시대부터 지켜온 호박 종자로 만든 퓌레”라고 설명했다. 그는 씨앗을 지키는 것이 요리사로서 중요한 책무라는 철학도 빼놓지 않고 말했다. ‘배추를 곁들인 순무 포타주’는 도배용 풀처럼 부드러운 순무 포타주와 아삭한 식감을 제공하는 배추가 한 접시에서 묘한 조화를 이뤘다. ‘주머니 모양으로 만든 흑미와 렌즈콩 요리, 두부와 오트밀 파테’는 묵직한 고기 스테이크가 줄 수 없는 단아한 단백질 맛이었다. 이날 코스의 백미는 ‘대두와 버섯 현미 크림 리소토’. 대두의 고소한 맛과 겉이 탱탱하게 조리된 현미의 독특한 식감이 뇌리에 오랫동안 남았다.

히라타 아쓰시(사진 왼쪽)와 이명희씨. 박미향 기자
히라타 아쓰시(사진 왼쪽)와 이명희씨. 박미향 기자
이날 식사를 경험한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은 “자연식이라서 사찰음식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사찰음식보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정립된 것이 매크로바이오틱인 듯하다”고 평했다.

히라타는 이명희씨의 안내로 남양주에 위치한 유기농 채소 생산지 ‘준혁이네 농장’과 레스토랑 ‘주옥’ 등을 방문해 우리 식재료와 세련된 한식을 맛봤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색다른 맛의 채소를 경험했다. 자주 한국에 오고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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