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나는 기자이기 이전에 한국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소비자다. 최근 소비자로서 황당한 사건을 당했다. 취재차 시내를 돌아다니던 지난 5월말께 문자 한 통을 받았다. 한 인터넷서점의 광고 문자였다. 좋아하는 영국의 록 밴드 ‘라디오헤드’의 명반 <오케이 컴퓨터>(OK Computer) 출시 20주년 기념 한정판 엘피(LP)의 사전 예약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3000장만 파란색 엘피로 제작해 희소성이 높은데다 미수록곡까지 들어 있다니, 가던 길을 멈추고 바로 결제했다.
오매불망 기다리다, 7월4일 드디어 물건을 받았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었다. 아니, 이런! 분명 파란색 한정판 엘피를 주문했는데 일반 검은색 엘피가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사진) 다음날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처음 돌아온 대답은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였다. 설마 내가 색맹이 아닌 이상, 파란색과 검은색 구분을 못할까. 살짝 기분이 상했다. 사진을 찍어 보내려고 하는데 다시 고객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배송이 잘못됐다. 그런데 파란색 엘피 재고가 없어 교환할 수가 없다. 환불 처리 하겠다”는 기상천외(?)한 답변이 돌아왔다.
어떤 상황인지 쉽게 설명하자면, 전세계 3000켤레 한정 생산한 나이키 에어조던을 예약 주문했는데, 일반 신발을 보내놓고, “물건이 없다”며 환불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 뒤 나의 투쟁은 시작됐다. 소비자를 ‘봉’으로 생각하는 기업을 향한 소비자 투쟁이었다. 트위터 등 에스엔에스(SNS)에 회사의 무책임함을 비판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올렸다. 그 와중에 나 같은 피해자가 19명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환불을 거부하고, 포털의 지식검색 서비스에 피해 사실을 상담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피해자를 모으기 위해 누리집 카페까지 만들었다. 난생처음 만든 카페였다.
나의 지속적인 ‘진상질’에 결국 회사는 “주문한 물건을 보내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연락을 받고도 왠지 마음 한편이 찜찜했다. 원하던 물건을 못 받고 순진하게 환불받은 소비자도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만있으면 소비자를 ‘가마니’로 보는 한국 기업들, 이제는 정신 좀 차리시라!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