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동안 조금씩 작업해 완성한 쌍둥이 책상.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도 쓸 수 있을 만큼 튼튼하게 만들었다. 오래도록 질리지 않도록 한국 전통 책상의 디자인을 따왔다.
‘버킷 리스트’라고 할까, 예전부터 꼭 배워보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암벽등반, 스카이다이빙, 그리고 목공. 마흔이 넘으면, 더구나 아내 뱃속에서 커가는 쌍둥이가 태어나면 영영 시작하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들었다. 익스트림 스포츠보다는 아무래도 목공이 쌍둥이 아빠에게 조금 더 어울릴 것으로 판단했다. “신문은 대표적인 사양산업이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노후를 위한 투자로 이해해 달라”, “나중에 혹시 쌍둥이 교육을 위해 이민이라도 가려면 기술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허술한 설득에도 아내는 흔쾌히 넘어와줬다. 그렇게 2015년 1월초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에 자리한 ‘청원산방’의 문을 두드렸다.
청원산방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소목장 심용식 선생이 운영하는 공방이다. 한옥을 짓는 장인을 대목장이라 하고, 가구나 창호 등을 만드는 장인을 소목장이라 한다. 청원산방에서는 톱, 대패, 끌 등 수공구만 사용한다. 공방 대부분은 기계 공구를 주로 사용하는 편이다. 서안, 사방탁자, 문갑 등 전통 가구도 일부 만들지만, 선생님의 전공이 전통 창호인 만큼 교육 과정도 창호에 집중돼 있다.
처음부터 꼭 수공구만 써야겠다거나, 꼭 전통 창호를 만들어야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막연히 목공을 하고 싶다는 욕구만 강했을 뿐, 어디서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왜 굳이 청원산방이었나. 물론 심 선생님의 명성도 명성(수많은 고궁과 어지간히 이름난 사찰이나 한옥에는 심 선생의 창호가 들어가 있다)이지만, 내게 더 중요했던 건 집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닿을 만큼 가까웠다는 점이었다.
유신재 기자가 서울시 무형문화재 심용식 소목장이 가르치는 청원산방에서 만든 팔각 불발기 창호를 들고 있다.
집과 공방 사이 거리의 중요성은 그해 여름 쌍둥이들이 태어난 뒤에 입증됐다. 집에 홀로 남은 아내가 쌍둥이를 상대하다 한계에 부딪혀 긴급호출을 하면 나는 10분 안에 달려갔다. 그러지 못했다면 내 목공 수련은 1년을 넘기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2년여 동안 매주 토요일 아침 10시부터 저녁 5시까지 청원산방에서 톱질을 하고, 끌질하고, 대패질했다. 대략 열댓 종류에 이르는 다양한 문양의 창호를 만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창호만큼 수공구 사용법을 집중적으로 익힐 수 있는 것도 없는 것 같다. 하나의 창호 안에는 수많은 창살이 서로 만나고 교차한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는 말이다. 또 부피가 큰 가구는 초보자가 수공구만 이용해서 만들기가 무척 어렵지만, 창호는 가능하다.
그래서 난 이제 수공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가? 턱도 없는 소리다. 여전히 톱은 마음먹은 대로 똑바로 들어가지 않고, 끌로 판 구멍은 매끈하지 못하고, 대패는 제대로 유지 관리하는 것도 버겁다. 소목이란 게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단순한 디자인의 벤치이지만 주먹장 맞춤으로 만드느라 품이 많이 들었다.
수공구 교육 커리큘럼으로 탁월하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창호의 치명적인 약점은 실용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한옥을 짓기로 마음이라도 먹은 게 아닌 이상 전통 창호를 어디에 쓸 텐가. 더구나 나처럼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말이다. 액자처럼 벽에 걸어두는 것도 방법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집이 열댓 개의 창호를 걸어둘 만큼 넓지는 않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창호가 뭔가 실용적인 기능을 수행한 사례는 쌍둥이들이 위험한 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는 바리케이드 구실을 한 것이 전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창호는 평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간을 적게 차지한다는 점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적절한 용도를 찾을 때까지 집에 보관하는 것이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올해 초 서울에서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를 왔다. 청원산방은 너무 멀어졌다. 또 집에서 가까운 한 공방을 찾았다. 기계장비를 두루 갖췄고, 만들 것들을 미리 정해놓지 않은 공방을 선택했다. 목공에 발을 들인 지 2년 반 만에야 내게 필요한, 내가 원하는 가구를 만들기 시작한 셈이다.
가구를 직접 만들면 시중에서 판매하는 것을 사는 것보다 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천만의 말씀이다. 목공을 왜 하나. 자기만족이다. 나사못 드르륵 박아서 대충 만들자고 하는 게 아니다. 내 경우에는 처음부터 무형문화재 선생님한테 배운 영향으로 전통 짜맞춤 기법을 고집하려는 편이다.
새 공방에서 처음 만든 벤치는 주먹장(주먹처럼 끝이 넓고 반대편은 좁게 된 장부)으로 상판과 다리를 연결했다. 품이 많이 든다. 당연히 시간도 많이 든다. 이렇게 정성 들여 만드는데 싸구려 나무를 쓴다면 그야말로 언밸런스 아닌가. 미국산 호두나무를 사용했다. 고급 목재다. 폭 1m짜리 벤치 한 개에 재료비만 10만원이 들었다. 만드는 데 한 달이 꼬박 걸렸다. 한 달 공방 회비가 40만원이다. 작업 시간에 최저임금만 적용해도 원가가 100만원에 육박한다. 그다음에 쌍둥이들을 위해 티크(teak. 열대 낙엽수)로 만든 책상은 더 한다.
공방장 황규성씨는 “이런 것 만들면 굶어죽기 딱 좋다”고 놀린다. 내가 보기엔 사돈 남 나무라는 격이다. 그가 주문받아 만든 가구를 보면 답답할 정도로 꼼꼼한 성격이 보인다. 더 비싼 값을 받고도 태커(철심찍개) 못 팡팡 박아 만든 서랍 끼워 넣는 사람도 많건만, 황씨는 주문자가 요구한 것도 아닌데 잘 보이지 않는 서랍 속까지 꼭 짜맞춤 방식으로 만든다. 나야 취미로 하는 거니까 이러나저러나 상관없지만, 우리 공방장은 장사로 하는 건데 저래도 되나 싶다. 그는 서른 중반에 토목설계 회사를 관두고 공방을 차린 지 곧 10년인데, 공방 운영이 쪼들려서 매일 걱정이다. 그 꼼꼼한 성격 때문에 돈을 못 버는 건지, 그 덕분에 10년이나 버텨올 수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청원산방에서 만든 사방탁자의 모서리 부분. 세 개의 목재가 하나의 점으로 만나는 삼방연귀 맞춤법.
가구가 지금보다 좀더 대접을 받는 날이 오면 좋겠다. 몇 년 쓰다가 버려도 그만인, 그렇고 그런 가구로만 채워진 집은 재미없지 않은가. 나름의 사연이 있는, 자식에게 물려줄 만한, 그런 가구 하나씩만 둬도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조금은 더 즐거워질 것이다. 직접 목공을 배워 만들든, 정직하고 솜씨 좋은 목수와 상의해 맞추든 말이다. 그런 날이 온다면 우리 공방장도 계속 자기 고집을 지키며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나도 공방을 차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긴 추석 연휴를 이용해 쌍둥이들을 위해 두 달 동안 작업해온 책상을 완성해 집으로 가져왔다. 아이들은 금세 자라니까 시중에서 판매되는 어린이용 가구는 대체로 저렴한 목재로 만든다. 아무래도 내구성도 떨어진다. 그런 가구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단단하고 색이 예쁜 티크로 어른이 밟고 올라서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아이들이 새 책상을 좋아한다. 그 위에서 책도 읽고 밥도 먹는다. 아내도 만족스러워한다. 당분간 목공을 계속할 수 있는 점수는 딴 것 같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자식을 낳아 내가 만든 책상을 물려주는 날을 상상해본다.
글·사진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목공 수련 초보자를 위한 조언
인터넷 카페나 유튜브에는 목공과 관련된 자료가 넘쳐난다. 인터넷으로 목공을 배우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작품을 만들려면 최소한 작업대는 있어야 한다. 보통 가정집에서 목공용 작업대를 둘 만한 공간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마련한다 해도 작업 과정에서 나오는 먼지와 소음은 가족과 이웃들에게 큰 민폐다. 공방에 다니는 것을 추천하는 이유다.
네이버 카페 ‘우드워커’에 들어가면 지역마다 어떤 공방들이 있는지 찾아볼 수 있다. 꼭 어떤 장인한테서 무엇을 배우겠다는 목표가 분명한 경우가 아니라면 집에서 가까운 공방을 선택하는 게 좋다. 쉽게 갈 수 있어야 꾸준히 할 수 있다.
공방마다 운영 방식은 다르다. 어떤 공방은 미리 정해둔 작품을 순서대로 만드는 방식을 고수하는가 하면, 어떤 공방은 회원이 저마다 만들고 싶어 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가르치기도 한다. 처음에 공방장이 정해둔 작품만 만드는 것이 답답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서툰 솜씨로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었다가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집에 애물단지만 늘어날 수도 있다.
하면 할수록 목공의 세계가 넓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공방에서건 일단 시작해서 재미를 붙이면 더 배우고 싶은 게 생기기 마련이다. 그때 공방을 옮기면 될 일이다. 제일 중요한 건 느긋한 마음인 것 같다. 내 페이스대로 내가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서둘다가 실수라도 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