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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세상에서 가장 값진 내 이름 ‘이경희’

등록 2018-04-19 09:33수정 2018-04-19 09:38

[ESC] 헐~
손에 꼭 쥐고 있는 고등학교 때 명찰. 이경희 기자
손에 꼭 쥐고 있는 고등학교 때 명찰. 이경희 기자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서울 여자’였다.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살아왔지만 서울과 인연 없는 내가 왜 ‘서울 여자’일까? 내 이름을 한자로 풀어내면 서울 경(京), 여자 희(姬). 단지 이름 때문에 서울 여자로 살아왔다.

사실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개성 있고 예쁜 이름을 가진 또래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촌스럽고 옛날 어머니 이름처럼 많이 거론되는 내 이름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았다. 게다가 굉장히 흔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내가 마주한, 수많은 ‘경희’라는 이름이 붙은 상호들이다. 예컨대 경희대학교로 시작해서 경희태권도, 경희한의원, 얼마 전에는 ‘배달의 민족’의 광고문구 “경희야 넌 먹을 때가 제일 예뻐!” 등 스쳐 지나간 무수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친구들은 경희라는 상호를 보는 족족 사진을 찍어 내게 보냈다. 종종 놀림거리가 되기까지 했던 내 이름 때문에 가끔은 개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생각이 싹 사라지게 됐다.

올해 설에 고향에 다녀왔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치매 초기증상을 앓고 계신다. 천원·만원을 구분할 수 있는 경계선마저 희미해져 내게 용돈으로 천원 한장을 내미셨다. 자주 보기 어렵다며 어릴 적부터 항상 내게 큰돈인 만원을 주셨던 외할아버지였다. 치매 증상을 완화하고자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에게 계속 말을 시킨다. 그러다 외할머니는 나를 가리키며 “얘 이름이 뭐요?”라고 물었다. 외할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경희 아이요 경희! 경희잖아”라고 대답하셨다. “내가 만들어준 이름인데 어떻게 기억을 못하요”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외할아버지의 대답을 옆에서 듣던 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다. 내 이름은 외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오빠 이름은 아들이라 할아버지께서 지어줬지만, 난 딸이라 외할아버지께 맡겨졌다. 그래서 더 심사숙고해서 지었다고 한다. 내 이름이 서울 여자가 된 것은 큰 세상으로 나가 멋지게 살아가라는 뜻을 담고 외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값진 이름, 내 이름은 이경희! 외할아버지! 제 이름을 계속 불러주세요!

글·사진 이경희 기자 modak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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