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앞에서 시민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페이스북의 성차별적 규정에 항의하는 상의 탈의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 3일 오전, 멀리 사시는 어머니가 전화하셨다. 평소 같으면 “밥은 잘 먹었니?”라는 말을 먼저 꺼내시는데, 그날은 달랐다. “정연아…”하고 잠깐 주저하시는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 겁이 덜컥 났다. 어머니는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너, 혹시 그 시위 나갔니?” 무슨 시위를 말씀하시는 건지 몰랐다. “어디요?”라고 묻자 “그 시위, 페이스북 (사옥) 앞에서 했다는 시위 말이야. 가슴 내놓고…”. 그렇다. 어머니는 지난 2일 ‘불꽃페미액션’이 상의 탈의 사진을 페이스북 코리아가 삭제한 것에 항의하는 의미로 서울 강남구 역삼동 페이스북 코리아 앞에서 진행한 상의 탈의 시위 기사를 보신 것이다.
만약 얼굴 사진이 찍혔다면, ‘너 거기 갔구나!’ 하면 되실 일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사진에 찍힌 시위 참가자의 몸을 보고 내가 아닌가 추측을 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아닌 걸 믿을 수 없다는 눈치셨다. “아니라고? 염색한 머리 색깔이랑 등판이랑 옆 모습이 딱 넌데?” 이실직고를 촉구하는 추궁이 이어졌다. 어떤 설명을 덧붙여도 어머니의 의구심만 커질 것 같았다. 크게 웃어버렸다. “으하하, 아니라니까요. 등판이랑 옆 가슴 보고 어떻게 나인 줄 알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전히 심각했다. “등판이랑 옆 가슴만 봐도 엄마는 알지!”라며 솔직한 대답을 내놓길 바라셨다.
그러나 그날 나는 집 밖에 나가지 않고 고양이와 함께 오랜만에 토요일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어머니는 알리바이가 부족하다고 하셨다. 인정한다. 내가 집에 있던 사실을 증언해 줄 수 있는 존재는 고양이뿐이다. 어머니는 아직도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신 듯하다. 그 가슴은 내 가슴이 아닌데…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