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기억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오른쪽 엉덩이가 항상 툭 튀어나와 있는 모양새였다. 짝궁둥이는 아니었다. 날아오는 총알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은 현금과 영수증으로 뚱뚱했던 지갑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아버지의 지갑엔 신용카드만 몇장 달랑 꽂혀 있다. 아버지는 봉툿값 100원을 결제할 때도 주저하지 않고 직원에게 카드를 내민다. 점점 줄어드는 현금 결제로 ‘현금 없는 사회’가 된다고 하는데, 봉툿값을 내는 데까지 현금이 필요 없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대학축제로 한창이었던 지난 5월이었다. 학보사 기자들과 함께 한 학과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누가 술을 마셔? 정민석이 마셔! 정! 민! 석!” 술 게임에 문외한인 나에게 “마시면서 배우는 재밌는 놀이”라고 말하는 얄미운 후배에게 복수심이 불타오르던 찰나였다. 저기 멀리서 허름한 옷차림의 한 할머니가 구부정한 몸을 이끌며 테이블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껌과 초콜릿을 파는 할머니였다. 보통 이런 할머니들의 물건을 구매할 때는 현찰이 필수다. 안타까운 마음에 매번 사드리고는 싶었지만, 평소 현금을 안 가지고 다니는 나로서 사양하기 일쑤였다. 그러고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술잔에 눈길만 주던 적이 다반사다.
주점 구석에 있던 우리 테이블에 할머니가 도착했다. “학생들 하나만 사줘요”라며 ‘후라 보나’ 껌 한 통과 가나 초콜릿을 내게 들이밀었다. 여느 때처럼 현금이 없던 나는 “죄송해요. 현금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가셨나 싶어 고개를 돌리던 순간 들려오는 할머니의 한마디가 들렸다. “계좌이체도 되는데….” 입버릇처럼 “현금이 없다”고 핑계를 댔던 분들이 앞으로 할머니를 피할 도리는 없어 보였다.
정민석 대학생 교육연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