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우리 아빠는 엄마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다. 엄마는 영화배우 ‘유해진’처럼 감성이 풍부하고, 분위기 있는 남자를 좋아한다. 어릴 적 내 기억엔 부부싸움을 자주 하셨는데, 그 모습이 어른이 된 지금도 영화 필름처럼 마음 한곳에 찍혀 있다. ‘나를 두고 헤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어린 마음에 조마조마하곤 했다. 이번 한가위 때도 두 분은 뭔가 서로에게 불만이 있었는지 온종일 묵언 수행을 하셨다. 그러다 뜬금없이 던진 엄마의 한마디. “난 다시 태어나면 당신이랑 결혼 절대 안할 거다. 몬산다 몬살아.” 이에 질세라 아빠도 “내도!” 묵직한 짧은 한마디로 응수하셨다.
서른쯤 된 나는 이제 이 불협화음의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다. 그건 바로 성격 차이나 부부관계의 문제가 아닌, 바로 ‘생활습관’ 차이라는 걸. 아빠는 더위를 전혀 타지 않지만 엄마는 더운 걸 참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주무시는 동안에도 선풍기를 켜고 끄고 켜고 끄고…. 괜한 선풍기만 불이 나기 일쑤였다. 반복되는 ‘온도 전쟁’에 패배한 엄마는 “아이고 치아라 내가 사라져 주께” 하고는 거실서 잠을 청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각방 생활은 시작됐다. 나도 엄마처럼 더위를 잘 타는 체질이라 습관적으로 선풍기를 끄는 아빠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올해 여름, 용광로 같던 지독한 폭염에도 아빠는 여전히 에어컨과 선풍기를 사용하지 않고 용무를 보신다고 한다. 사실 아빠의 직업은 화마에 맞서 싸우는 소방관이다. 내가 에어컨과 선풍기의 시원한 바람을 쐬는 동안, ‘다른 세상 속’에서 아빠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불길 속을 드나든 30년 소방관 경력이 뜨거운 여름 날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 것이다.
엄마는 “몬산다” 하면서도 언제 싸웠냐는 듯 나에게 이따금 전화해 “아빠랑 데이트하러 나간다”고 자랑을 하신다. 부모님은 그저 각방을 쓰는 걸로 서로를 배려하면서 ‘투박한 사랑’을 이어가고 계신 것이다. 이제 그게 뭔지 알겠다.
글·사진 이경희 기자 modaki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