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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디자이너 이주영 “방탄소년단, 이제 제 옷 입을 차례!”

등록 2018-12-20 09:18수정 2018-12-20 11:14

김성일이 만난 완소 피플

의류 브랜드 ‘레쥬렉션’ 주인 겸 디자이너 이주영
2000년대 중반 톡톡 튀는 디자인으로 주목받아
레이디 가가 등 국외 유명 뮤지션도 즐겨 입는 옷
뉴욕·밀라노·방콕 등 전 세계에 매장 열어 성업 중
패션 디자이너 이주영씨의 옷은 미국 팝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 등 국외 유명 뮤지션에게 인기다.  한 카페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이주영씨.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패션 디자이너 이주영씨의 옷은 미국 팝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 등 국외 유명 뮤지션에게 인기다. 한 카페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이주영씨.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패션 디자이너 이주영(47)씨. 2004년 그가 선보인 패션 브랜드 ‘레쥬렉션’에 누구보다 먼저 관심을 보인 건 바로 국외 유명 뮤지션들이었다. 그로테스크 스타일로 유명한 미국 록 스타 마릴린 맨슨을 비롯해 미국의 팝 가수 ‘레이디 가가’, 미국의 팝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 등이 그의 대표적인 단골이다. 국내 1세대 패션 디자이너 설윤형씨의 첫째 딸이기도 한 이씨는 ‘어머니 덕 본 디자이너’라는 편견 어린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려고 노력한 결과, 오늘의 성공에 이르렀다고 강조한다.

이주영 패션 디자이너는 중학교 때부터 대학 시절까지 10년 간 첼로를 배웠다. 1994년 미국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한 그를 두고 주변에서는 주목받는 첼리스트가 될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돌연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택한다. 23살에 미국 패션스쿨 파슨스에 입학해 패션 디자인을 배우고, 귀국 후에는 어머니 설윤형씨의 밑에서 또다시 9년 간 패션 실무를 익혔다. 올해로 자신만의 패션 브랜드를 선보인지 15년째를 맞는 이씨. 그의 성공 노하우는 뭘까. 10월9일 김성일 스타일리스트가 서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김성일(이하 김) 2000년쯤 설윤형 선생님을 뵈러 갔다가 주영씨를 처음 만난 때가 생생해요.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더군요. 한참 지나서야 주영씨가 설 선생님의 딸이라는 얘기를 듣고 놀랐어요.

이주영(이하 이) 왜 놀라셨어요?(웃음)

디자인 스타일이 너무 달랐으니까요. 설 선생님은 한국적인 색채의 여성복을 만든다면, 주영씨는 독특한 디자인의 남성복을 만들잖아요. 원래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어요?

아뇨. 예술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며 첼로를 배웠어요. 할아버지가 1970년대 음악 감상실 ‘쎄시봉’의 디제이를 하셔서 저도 자연스럽게 음악과 가까웠어요. 음악가의 길을 당연히 갈 줄 알았지요.

결국 어머니처럼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됐군요.

패션 일은 늦게 배웠지만,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옷 짓던 모습을 보고 자랐어요. 방과 후 집에 가면 당대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들, 모델들과 어머니가 담소를 나누고 계셨죠. 그러면서 패션이 자연스레 제 삶 속에 들어 온 것 같아요. 제 첼로 무대 의상도 직접 만들곤 했어요. 어느 날 문득 ‘음악 말고 패션으로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길을 선택했어요.

패션 일을 하겠다니깐 어머니가 뭐라고 하던가요?

반대하셨어요. 너무 힘든 길인 걸 알고 그러셨던 것 같아요. 저도 제 아이들에게 추천하고픈 직업은 아녜요.(웃음) 겉에서 보면 창조적인 직업 같지만, 실상은 옷 제작 공장도 관리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아요. 말 그대로 ‘장사’라서 만만찮아요.

어머니 밑에서 9년 동안 혹독하게 일을 배웠다면서요?

완전 바닥부터 배웠죠. ‘어머니가 유명 디자이너라서 이주영도 쉽게 디자이너 됐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매일 새벽에 나와 일했어요.

유명 디자이너의 딸로서 득과 실이 있을 것 같아요.

2004년 저만의 브랜드를 선보였는데,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더라고요. 한번은 어떤 기자가 제게 ‘낙하산 타고 내려온 거 아니에요? 설윤형씨의 따님이잖아요’라고 하더군요. 아무리 잘 해도 본전인 상황이었던 거죠. 그런 편견을 뛰어 넘기 위해 제가 만들고 싶은 디자인에 주력했어요.

패션 브랜드 레쥬렉션은 파격적이라서 놀랐어요. 여성복도 나오긴 하지만, 남성복이 메인인 브랜드였는데요.

당시 스타일리스트도 겸했는데, 남자 옷이 생각보다 선택의 폭이 좁은 거예요. 여성복에 견줘 다양한 디자인이 없었어요. 그래서 망사, 가죽, 야광 천 같은 실험적인 소재를 사용해 독특한 디자인의 남성복을 직접 만들었어요.

그게 신의 한수였네요. 외국 유명 남성 뮤지션들이 주로 찾는 옷이 됐죠.

레쥬렉션 옷을 입은 디제이 ‘스티브 아오키’(사진 왼쪽). 사진 레쥬렉션 제공
레쥬렉션 옷을 입은 디제이 ‘스티브 아오키’(사진 왼쪽). 사진 레쥬렉션 제공
이씨의 옷은 2000년대 중반엔 상상하기도 어려운 소재와 디자인이었다. 망사 와이셔츠, 밧줄이 달린 겉옷, 주머니가 과도하게 여러 개 달린 옷 등. 파격이 곧 그의 아이콘이 됐다.

그의 이런 행보는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2012년 2월 미국의 음악 시상식 ‘그래미’에서 미국의 팝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의 멤버 윌아이엠(will.i.am)은 이씨의 독특한 디자인의 검은색 정장을 입고 나와 시선을 끌었다. 마릴린 맨슨은 2007년·2012년 자신의 뮤직 비디오를 촬영할 당시 레쥬렉션 옷을 입었다. 세계적인 디제이 스티브 아오키(Steve Aoki)도, 미국의 록 밴드 린킨파크(LINKINPARK)도 레쥬렉션 팬이라고 한다.

레쥬렉션은 현재 서울뿐만 아니라 미국 뉴욕(6곳)·엘에이(LA)·댈러스 등과 방콕에 매장이 있다. 패션의 메카 이탈리아 밀라노에도 열었다.

2012년 ‘그래미’에서 ‘윌아이엠’은 이주영씨가 제작한 옷을 입었다. 사진 레쥬렉션 제공
2012년 ‘그래미’에서 ‘윌아이엠’은 이주영씨가 제작한 옷을 입었다. 사진 레쥬렉션 제공
외국 유명 스타들이 레쥬렉션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군요.

발로 뛰었죠.(웃음) 마릴린 맨슨은 기괴하면서 독특한 의상을 입는 뮤지션으로 유명했는데, 그런 면을 제가 좋아해서 팬이 됐지요. 2005년 마릴린 맨슨이 내한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꼭 만나야 겠다’고 생각했죠.

2005년 2월 마릴린 맨슨이 방한했을 때 이씨는 무작정 그가 묵은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서울 호텔에 갔다. “마릴린 맨슨에게 전해 달라”며 호텔 안내원에게 레쥬렉션의 옷들을 건넸다. 바로 그날 저녁 이씨는 전화 한통을 받았다. 마릴린 맨슨의 매니저였다. “마릴린 맨슨이 당신이 만든 옷을 마음에 들어 한다. 당장 만나고 싶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미국 록 스타 ‘마릴린 맨스’은 평소 ‘레쥬렉션’의 옷을 즐겨 입는다. 사진 레쥬렉션 제공
미국 록 스타 ‘마릴린 맨스’은 평소 ‘레쥬렉션’의 옷을 즐겨 입는다. 사진 레쥬렉션 제공
2000년대 중반 레이디 가가가 공식 석상에서 레쥬렉션의 빨간 쇼핑 백을 들었던 것을 기억해요. 가가와는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2000년대 중반 뉴욕에 매장을 내고 활동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어요. 제 지인이 그를 소개해줬죠. 우리는 음악 얘기를 하면서 단박에 친해졌어요. 가가는 화통한 성격에 인간미 넘치는 친구예요. 한 번은 레이디 가가가 ‘레쥬렉션’이라고 적힌 쇼핑 백을 들고 어떤 파티의 포토 라인 앞에서 선 거예요. 제가 괜히 민망해서 ‘하지 마’라고 했는데도요.(웃음)

김 외국 유명 뮤지션과 끈끈한 사이가 될 수 있었던 비법이 있을까요?

음악을 전공했다 보니, 뮤지션들과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게 컸던 거 같아요. 세계적인 뮤지션인데도 ‘당신의 옷을 입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식은 아니어서 감동 받을 때가 많아요. 옷을 협찬받지 않고 항상 구입하죠. 음반 제작 과정에서부터 패션 디자이너한테 연락해서 ‘한번 들어봐. 어떤 의상이 어울릴 것 같아?’라고 묻죠. 아직 국내에서는 ‘당장 내일 입을 무대 의상을 준비해 달라’는 요구가 흔하거든요.

미국 팝 스타 ‘레이디 가가’가 2009년 첫 내한 당시 쇼케이스에 들어가기 전 패션 디자이너 이주영씨의 ‘레쥬렉션’ 가방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레쥬렉션 제공
미국 팝 스타 ‘레이디 가가’가 2009년 첫 내한 당시 쇼케이스에 들어가기 전 패션 디자이너 이주영씨의 ‘레쥬렉션’ 가방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레쥬렉션 제공
한국 뮤지션과는 작업한 적 없나요?

리쌍 등과 작업했고요, <한국방송>(KBS) 프로그램 <톱(TOP) 밴드> 출연진과도 협업했어요. 영화 <패션왕>, <조작된 도시> 등에서는 의상감독도 했어요.

디자이너로서 철학도 궁금하군요. 그리고 요즘 아쉬운 게 있다면요?

패션 디자이너로서 제일 두려운 것은 나이 먹고 감 떨어 지는 거예요.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클럽가고, 미친 듯이 놀죠. 감성이 낡지 않으려면 돌아다니면서 많이 보고 느껴야 해요. ‘옷은 일단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특이한 옷을 만들어 ‘재미’를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요. 아쉬운 점은 패션 관련 정부 기관이나 단체가 이 분야를 잘 이해해서 제대로 된 지원을 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옷을) 입혀 보고픈 뮤지션이 있다면요

요즘 최고 뮤지션은 방탄소년단이죠! 제 옷을 보내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웃음) 방탄소년단 분들, 혹시 이 인터뷰를 읽었다면 <한겨레>로 연락주세요!!!

김성일 스타일리스트, 정리 김포그니 기자pognee@hani.co.kr, 사진 윤동길(스튜디어 어댑터 실장)

이주영 프로필

1994년 미국 커티스 음악원 졸업.

1996년 미국 패션스쿨 파슨스 졸업.

1996~2004년 ‘설윤형 부티크’ 재직.

2004년 패션 브랜드 ‘레쥬렉션’(Resurrection) 출시.

2007년 미국 록스타 ‘마릴린 맨슨’의 뮤직비디오 의상 제작.

2008년 뮤지컬 <헤드윅> 의상 제작.

2010년 미국 팝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의 월드 투어 콘서트 의상 제작.

2012년 ‘마릴린 맨슨’의 뮤직 비디오 의상 제작.

2014년 영화 <패션왕> 의상 제작.

2015년 영화 <조작된 도시> 의상 제작, 디제이 ‘스티브 아오키’·미국 록 그룹 ‘린킨 파크’의 뮤직 비디오 의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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