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우 요리사가 만든 칼국수. 사진 정신우 제공
‘삶을 위로하는 게 별것인가.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을 벗이 있고, 더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고 있다는 기쁨이야말로 행복이자 희망이다.’ 최근 출간된 <먹으면서 먹는 얘기할 때가 제일 좋아>의 한 구절이다. 술술 읽히는 책엔 어디에도 죽음의 공포와 마음을 흠뻑 적시는 눈물은 없다. 지은이는 정신우(50·본명 정대열) 요리사. 그는 흉선암 말기 환자다. 4번의 수술 끝에 종양은 도려냈으나, 언제 발동할지 모르는 암세포가 신장(콩팥)을 공격해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 투석 치료받기 위해 병원을 간다. 이미 폐 일부도 잘라낸 상태다.
한때 그는 한국 최초 남성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여러 방송을 종횡무진 누비며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스타였다. 음식업계에 몸담기 전엔 <문화방송> 공채 탤런트로 드라마 <장미와 콩나물>, <상도> 등에 출연해 주목받았다. 이미 고등학생일 때 길거리 캐스팅돼 모델로 활동하다가 <한국방송>(KBS) 드라마 <갈채>에 출연한 바 있다. “캐스팅 로비, 박수부대 동원, 선배들의 차 심부름 등 당시 관행이 싫어서” 공채 탤런트 생활을 2년 만에 접은 그에게 요리는 생의 다른 돌파구였다. 2000년대 초반, 푸드채널의 <정신우의 요리 공작소>·<이비에스>(EBS)의 <최고의 요리비결> 등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은 동종 콘텐츠 중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면서 요리 초보자에게 길라잡이가 됐다. 당시 출연료는 최고 인기 연예인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성공은 바람의 끝을 붙잡는 것처럼 허망하게 사라졌다. 추락은 벌판에 벼락처럼 닥쳤다. 2014년, 그는 넘어져서 다치는 바람에 박은 철심을 뽑으러 병원에 갔다가 흉선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생이 6개월 정도 남았다고 했다. 길어야 1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3일 고민했다. 다른 이들에게 밝힐 것이냐를 두고. 장단점을 따졌을 때 장점이 많았다.” 한동안 그의 이름엔 ‘흉선암’이 연관 검색어로 따라다녔다. 그는 지지 않았다. 다른 삶을 선택했다.
2000년대 초, 정 요리사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때의 모습. 사진 정신우 제공
■ 환자와 고민 나누는 광장 만든 정신우
“라면은 먹어도 되냐는 질문이 가장 많다. 나트륨이 많아 간호사는 말리는데 먹고 싶다, 짜장면도 먹으면 안 되냐고 묻는다.” 그의 블로그 ‘기적의 정셰프’에 쪽지를 보낸 암 환자나 가족들의 문의다. “종이컵 한 개 정도 먹으라고 한다. 어차피 환자는 많이 못 먹는다. 먹는 기쁨이 오히려 자신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발병한 후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투병일기’, ‘항암밥상 레시피’, ‘항암생활 가이드’, ‘입맛 없을 때 맛집’, ‘믿고 사는 식재료 구입처’ 등 하위 카테고리를 개설해 같은 고통을 겪는 암 환자들과 음식으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꽃게탕, 아귀 해물찜, 풀치무침 등 암이 발병하면 쉽게 젓가락이 가
최근 정신우 요리사가 출간한 책. 사진 위즈덤하우스 제공
질 않은 음식을 환자식으로 바꾼 레시피도 소개한다. 17㎝ 크기의 종양을 제거한, 14시간 걸린 첫 번째 수술을 한 후에도 그는 블로거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그의 블로그엔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겼다. “암 환자 가족이 환자가 밥을 안 먹는다고 쪽지를 보내면 데리고 오라고 한다. 만나서 음식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알려준다.” ‘눈으로 먹는 음식’ 코너는 쓸모도 많다. “딸이 뇌종양인데 음식을 도통 못 먹다가 내가 올린 음식 사진을 보고 ‘나, 이것 먹고 싶어’라고 하고, 요즘은 내가 먹는 음식을 따라 먹는다는 사연을 보내온 어머니가 있었다. 감사할 뿐이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남편이 모든 것을 비관할 때 그의 블로그를 보고 힘을 내 다시 삶의 의욕을 찾았다는 사연은 오히려 그에게 힘이 됐다.
아픈 후 둘도 없는 인연이 된 이들도 많다.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제주에서 펜션 ‘돌집조앤정’ 운영하는 정경숙씨, 베제카올리브오일의 최선희 대표, ‘강은미요리곳간’의 강은미씨, 깊은샘블루베리농원의 김영일 대표, 디포인덕션의 허진숙 대표 등, 이들은 철마다 올리브유와 제철과일 등을 그에게 보냈다. “성격상 거절하는 편인데, 어느 순간 그들의 마음이 진심임을 알았다”고 그는 말한다.
온라인 ‘이웃’만도 5000명이고, 하루 평균 1000명이 다녀가는 그의 블로그는 이제 암 환자와 그의 가족들이 소통하고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광장이 됐다. 블로그엔 지독한 절망도 섣부른 희망도 없다. 그저 소소하게 나누는 위로의 음식만이 빛난다.
신선한 채소를 섞어 만든 돼지고기 음식. 사진 정신우 제공
‘항암밥상 콘서트’에서 선보인 제철 나물을 이용한 고기 요리. 사진 정신우 제공
■‘항암밥상 콘서트’는 위로를 나누는 자리
그는 감사하는 마음을 나누기로 했다. “아픈 후 알게 됐다. 나누는 게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는 4년째 ‘항암밥상 콘서트’를 열고 있다. 환자와 환자 가족을 초대해 밥상을 대접하는 것이다. 자신의 투병 얘기를 나누고, 한의사 등의 강의를 함께 듣는다. 행사의 백미는 그가 창작한 밥상이다. “그분들이 못 먹어본 음식 2~3가지를 차린다. 건강식은 기본”이라며 “평생 기억에 남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한다. 뿌리채소를 우려 만든 육수에 수비드(저온조리) 한 채소와 문어 등 해산물을 올리고 향신료 사프란을 살짝 뿌린 음식이 그들을 맞았다. 최근 한 ‘항암밥상 콘서트’에선 들기름 막국수를 만들었다. “가장 큰 보람은 오신 분들이 음식을 다 드신 것”이라며 “먹는 즐거움을 찾아 준 것 같아 기뻤다”고 한다.
그는 환자의 가족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많다. “우리는 가족에게 늘 미안한 존재다. 시간이 지나면 가족은 환자의 고통이 일상이 돼 자칫 ‘보채지 마라’, ‘이것도 못 참느냐’면서 타박하기도 한다. 환자는 여전히 아프고 고통스럽고 죽음의 두려움에 떤다. 아내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짜증을 내면 차라리 밖으로 나가 피했다가 오라고 한다.”
그는 지금도 건강하고 슴슴한 밥상을 차리는 맛집을 찾아다닌다. 일주일에 두 번 하는 투석치료가 세 번으로 늘어나질 않길 바란다. 8년을 버텨야 겨우 신장 이식이 가능한 몸이 되는데, 그때까지 버티고 싶다. 죽음은 여전히 그를 옭아매는 공포지만 “이렇게라도 하루 더 살 수 있다면 살고 싶다”는 게 소원이고 바람이다. 이제 그는 ‘굵고 짧게 살자’란 말을 하지 않는다. 곧 ‘정신우의 신장식단’도 블로그에 올릴 계획이다.
그에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인터스텔라>를 봤다. 주인공이 딸에게 ‘영원한 것은 시간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루를 살건, 100년을 살건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좋은 시간을 보냈느냐다. 기억에 남지 않는 시간, 누군가가 기억해주지 않는 시간은 의미가 없다.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기억해주냐다. 나도 누군가가 기억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5년 전 먼저 먼 곳으로 간 동료 윤정진 요리사의 납골당을 지금도 찾는 이유다.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는 언제였냐는 질문에 그는 “책에 그린 음식들을 먹던 바로 그때”라며 프랑스 포도밭 여행에서 외롭게 버려지다시피 땅에 떨어진 작고 초라한 포도 한 알을 새벽에 먹었을 때 입안에 퍼졌던 시큼한 즙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한다. “요리사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다.” 천생 요리사다.
그의 어린 시절 꿈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기자였다. 전 세계를 구름처럼 주유하며 별 지구를 찰칵찰칵 셔터에 가두고 그 맛을 음미하고 싶었다. 생경한 피사체를 향하고 싶었던 그의 눈은 이제 고통을 감내하는 인간 내면의 아득한 지평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친구들은 말한다. “힘내라! 기적의 정 셰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