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딤섬 전문점 ‘딤섬’의 딤섬. 박미향 기자
최근 중국 미식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이 주목하는 지역은 베이징, 상하이 같은 대도시가 아니다. 쓰촨성의 청두나 후난성의 창사 같은, 중국인도 그다지 찾지 않는 변두리다. 단지 지금 서울에서 유행하는 매운맛의 고향이라는 점 때문이다. 미식탐험이 더 정교해지고 있다. 하지만 10~20년 전만 해도 중국음식의 대명사는 화려한 홍콩의 맛이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홍콩은 여전히 변화무쌍한 맛의 천국이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를 보면 매년 개업이 늘어나 현재 홍콩엔 식당이 1만5000여개 있다고 한다. 설 연휴가 코앞이다. 홍콩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강지영 세계음식문화연구가의 도움을 받아 맛집을 소개한다. 여행의 진짜 재미는 맛이다.
지난해 11월11일 도착한 홍콩국제공항엔 겨울치고는 따스한 바람이 불었다. 박준우 요리사 겸 푸드 칼럼니스트는 스산한 풍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딤섬이 가장 기대된다”며 들떠있었다. 그와 동행한 홍콩 미식여행의 출발지는 딤섬집.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인 딤섬은 우리로 치면 간식이지만, 홍콩인에게 생명수와 다를 바 없는 음식이다. 홍콩인은 하루를 딤섬으로 시작한다. 홍콩 해피밸리의 ‘싱 우 로드’(Sing Woo Road)에 있는 딤섬 전문점 ‘딤섬’(Dim Sum·譽滿坊)는 세상을 떠난 배우 장궈룽(장국영)의 생전 단골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청나라 말기 신문물이 한창 유입되던 중국의 반점 같은 분위기다. 그 시대의 퇴폐적이고 나른한 바람이 천장에 붙은 커다랗고 납작한 선풍기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종업원은 앉자마자 에이포(A4) 한 장 정도 크기의 종이를 내밀었다. 90여개 딤섬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주문서였다. 왼쪽엔 네모 모양의 공란이 있어 먹고 싶은 딤섬을 표시하면 된다. 가격은 개당 55~240홍콩달러. 하지만 외계어보다 더 복잡해 보이는 광둥어 차림표는 답을 몰라 하얘진 수험생처럼 일행을 새파랗게 질리게 했다.
홍콩의 딤섬 전문점 ‘딤섬’의 딤섬. 박미향 기자
홍콩의 딤섬 전문점 ‘딤섬’의 딤섬. 박미향 기자
중국음식은 보통 음식명에 재료와 조리법이 표기돼 있어 적당히 읽을 수만 있다면 주문이 어렵지는 않다. 앞쪽 글자는 부재료와 조리법 등을 뜻하고, 뒤쪽은 주재료와 손질법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최근엔 네이버 ‘파파고나 ‘구글번역’ 같은 앱의 수준도 높아져 몇 단계만 거치면 메뉴판을 거침없이 번역해준다. 하지만 이날 앱 연동은 생각지도 못하고 당황할 때쯤 종업원이 화려한 그림이 쫙 깔린 다른 메뉴판을 가져왔다. 거기엔 인기가 많은 음식이 한글로 소개돼 있었다. 겸연쩍은 분위기는 금세 나온 ‘채소 돼지고기 물만두 수프’, ‘왕새우 하가우’, ‘샤오룽바오’ 등으로 화기애애해졌다. 보들보들한 작은 만두가 폭 빠져있는 수프는 이가 부실한 노인이 먹어도 될 만큼 부드러웠다. 한 입 베어 물면 즙이 쭉 피를 뚫고 나오는 샤오룽바오는 서울에선 맛보기 힘든 원조의 품격이었다.
딤섬은 과거 중국 북쪽에서는 귀족이나 부유층이 즐겼던 간식이었지만, 남쪽에선 평민이 주식처럼 먹은 음식이었다. 그중에서 홍콩의 딤섬은 모양이나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19~20세기 초 쏟아져 들어온 서양식 베이커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진나라 진시황제의 승전고엔 딤섬이 큰 역할을 했다는 설도 있다. 최전선에서 싸우는 모든 군인에게 맛있는 딤섬을 감사의 표시로 제공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딤섬’의 주방 안엔 딤섬만 만드는 작은 방이 따로 있고, 거기엔 40여년 경력의 고령인 딤섬 장인이 있다. 박준우 요리사는 “일상의 포근함 같은 맛”이라며 “장국영이 찾은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찾아간 곳은 팀초이키(Tim Choi Kee·添財記). 1948년 개업한 이곳은 배우 저우룬파(주윤발)가 종종 찾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지난해 8100억원을 기부한 그의 선택은 이 집의 창펀을 맛보면 공감한다. 창펀은 돼지고기 등 갖은 재료를 쌀가루 등으로 만든 얇은 피로 돌돌 만 다음 진한 소스를 뿌려 먹는, 홍콩을 포함한 광둥지역의 대표적인 서민음식이다. 땅콩소스를 흥건하게 뿌려 먹는 달콤한 창펀도 있다. 소박하면서도 털털한 맛이기에 누구나 사랑한다. 저우룬파처럼 말이다. 화려한 홍콩의 허름한 뒷모습 같지만, 맛은 중국 최고라는 평이다. 40분 이상 줄 서 있다가 들어간 팀초이키는 시골장터처럼 정겨웠다. 현지인도 관광객도 합석은 기본이다.
디저트 전문점 ‘칭칭’의 디저트. 박미향 기자
‘치칭’의 흑임자 국물을 잔뜩 뿌린 두부 디저트. 박미향 기자
재밌는 풍경은 중국인들이 식탁에서 목숨처럼 지키는 금기사항이 이곳에선 안 통한다는 것. 중국인은 술이나 찻주전자의 주둥이를 친구에게 향하지 않게 한다. 친구가 구설에 올라 곤욕을 치른다는 미신을 믿기 때문이다. 생선도 뒤집어 먹지 않는다. 잘 나가는 인생이 뒤집힐 수 있다고 여겼다. 박준우 요리사는 “대단하지 않은 메뉴지만 역동적인 분위기와 맛”이라고 칭찬했다.
하루 홍콩 미식여행의 마무리는 역시 디저트다. 강지영 세계음식문화연구가는 ‘칭칭’(CHiNG CHiNG·晶晶?品)을 하루에도 2~3번 갈 만한 좋은 집이라고 추천했다. 수십 가지가 넘은 디저트가 도열한 이곳의 맛은 뜻밖에 달지 않다. 우리네 단팥죽 같은 수프나 흑임자 국물을 잔뜩 뿌린 푸딩형 두부 등은 싱거울 정도로 밍밍하다. 하지만 자리가 없을 정도로 오는 이가 많다.
‘원 하버 로드’의 랍스터 요리. 박미향 기자
다음날 일행이 선택한 미식 여행의 테마는 ‘고급’과 ‘트렌드’. 번화가인 ‘퀸스 로드 센트럴’(Queen’s Road Central)에 있는 고급 식당 ‘이추’(ICHU)는 페루의 세계적인 요리사 비르힐리오 마르티네스가 두바이의 불도저그룹과 합작해 넉 달 전에 연 식당이다. 고급스럽고 독특한 페루비언 퀴진을 선보인다. 그의 페루 식당 ‘센트럴’에서 3년 이상 수련한 한국인 정상(31) 요리사가 책임자다. 12일 찾은 이추엔 홍콩 음식평론가들이 가득했다. 정상씨는 “선인장 열매, 블랙 퀴노아, 페루 감자 등 독특한 재료로 조리한다”며 “페루퀴진이 아시아에서 잘 정착하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실력을 더 쌓아 귀국하면 자신만의 한식을 펼치고 싶다고 한다. 박준우 요리사는 “국제적인 미식 도시 홍콩의 모습이 이런 것”이라면 “그 현장에 한국인 요리사가 페루음식을 선보이는 게 독특”하다고 했다.
‘이추’를 책임지고 있는 한국인 정상 요리사. 박미향 기자
그랜드 하얏트 호텔이 운영하는 ‘원 하버 로드’(ONE HARBOUR ROAD)도 가볼 만한 곳이다. 마천루와 불꽃놀이 등으로 유명한 빅토리아 하버가 한눈에 보이는 이 레스토랑은 1930년대 중국식 맨션에서 영감을 얻어 실내를 장식했다. 광둥식 전통 가정식과 게살을 결들인, 웍(중국식 프라이팬)에 익힌 랍스터가 인기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오세봉 요리사는 ‘원 하버 로드’의 메뉴 중 ‘가루파 찜’을 추천했다. ‘가루파 찜’은 납작한 모양의 생선 가루파를 찐 다음 대나무 속껍질로 싼 요리다. 오 요리사는 지난해 11월12일 홍콩에서 열린 ‘더 굿테이스트 시리즈’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결선에서 1위를 했다. ‘더 굿 테이스트 시리즈’는 ‘하얏트 호텔 앤 리조트’가 매년 여는 자사 요리 대회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선정하는 ‘2018 100 톱 테이블’에도 든 레스토랑이다.
타이음식전문점 ‘삼셈’(SAMSEN)은 지금 홍콩에서 가장 ‘핫’한 식당이다. 힙스터들이 성지가 된 지 오래다. 타이풍을 홍콩 스타일에 잘 버무린 실내장식과 수준급 맛이 인기 비결이다. 최소 30여분 줄 설 각오는 해야 한다.
홍콩의 밤은 길고, 체험해야 할 음식은 넘쳐난다.
홍콩/박미향 기자 mh@hani.co.kr
■ 홍콩 맛집 정보
딤섬(Dim Sum·譽滿坊) : 수십 가지가 넘는 딤섬을 맛볼 수 있는곳. (G/F, 63 Sing Woo Road Happy Valley, Hong Kong/852-2834-8893)
팀초이키(Tim Choi Kee·添財記) : 창펀 등 홍콩의 서민음식을 즐길 수 있는 허름한 식당.(35 Lung Kong Rd, Kowloon City Hong Kong/852-2383-9664)
칭칭(CHiNG CHiNG. 晶晶?品) : 홍콩의 디저트 전문점. (77, Electric Road, Tin Hau, Causeway Bay, Hong Kong/852-2578-6162)
이추(ICHU) : 페루비안 퀴진 전문점. 열정적인 남미를 드러내는 원색의 실내장식과 퀴노아 등으로 만든 독특한 음식이 매력적인 곳. (80 Queen's Road central, H Queen's, 3F Hong Kong/852-2477-7717)
원 하버 로드(ONE HARBOUR ROAD) : 고급스러운 광둥스타일 가정식이 있는 곳. 풍광이 멋지다. 8/F, Grand Hyatt Hong Kong, 1 Harbour RD Wan Chai Hong Kong/852-2584-7722)
삼셈(SAMSEN) : 지금 홍콩에서 가장 힙스터들이 많이 찾는 타이 전문 식당.(68 Stone Nullah Ln, Wan Chai Hong Kong/852-2234-0001)
홍콩/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