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때 브라를 벗고 자야 하나? 답답하잖아.” 매일 밤 브라 ‘탈의’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일은 이젠 옛말이다. 타인의 눈에 비친 아름다움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편안함을 중시하는 ‘자기 몸 긍정주의’가 최근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국내 여성 속옷들도 달라지고 있다. ‘노와이어브라’, ‘브라렛’(와이어나 패드 없이 가슴을 받쳐주는 브래지어) 등 편안한 착용감을 내세운 속옷이 인기다. 뷰티 분야도 비슷한 현상이 일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기초 화장품들을 덧바르기보다는 스킨(토너) 하나에만 신경 쓴, 이른바 ‘덜어내고 덜 바르는’ 간단한 화장이 주목받고 있다. 편안함이 곧 ‘멋’인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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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와이어브라···스타일의 시작
직장인 이근정(31)씨는 최근 노와이어브라만 착용한다. 분홍색 면 레이스가 달린 노와이어브라는 몇장이나 샀을 정도다. 셔츠 안에 입고 단추 몇 개만 풀어 슬쩍 보이게 입는다. 그에게 세련된 노와이어브라는 속옷 이상의 의미다.
‘노와이어브라 패션’. 최근 에스엔에스에는 노와이어브라에 티셔츠나 로브(가운)를 걸치거나 재킷만 입은 모습의 사진을 올리는 20~30대 여성이 많다. 스타일리스트 서정은 스타일홀릭 대표는 “패션은 개인의 신념을 나타내는 장치다. 최근 ‘나의 만족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신체의 편안함을 강조한 노와이어브라 등이 인기다”라고 말한다.
기능성 속옷으로 출발한 노와이어브라는 그동안 단순한 디자인에 무채색이 대부분이었다. 패션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최근 레이스를 덧대거나 다양한 색의 원단으로 만든 세련된 노와이어브라가 등장하면서 속옷 패션 판도도 달라졌다. 서 대표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이 자체 속옷 브랜드를 출시하거나 기존 브랜드들과 협업하면서 기능성 속옷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패션 브랜드 휠라는 2017년부터 노와이어브라 라인 ‘마이버블’ 등을 선보였다. 명품 패션 디자인에 주력했던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도 ‘패션 속옷’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일본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는 미국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과 협업한 ‘유니클로 앤 알렉산더 왕’ 컬렉션을 선보였다. 2014년 ‘뉴욕패션위크’에서 실용성을 강조한 평상복을 선보여 주목받은 알렉산더 왕은 ‘스트리트 패션’을 고급 패션 반열에 올린 이로 유명하다.
유니클로·알렉산더 왕 컬렉션 중 하나인 ‘심리스 브라’.
그가 만든 노와이어브라도 실용적이면서 세련미가 넘친다. 서 대표는 “브라 위쪽 라인을 유(U)자형으로 만들어서 티셔츠와 함께 입으면 멋스럽다. 속옷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다”라고 말한다.
유니클로 관계자는 “컬렉션 중 노와이어브라인 ‘유니클로 와이어리스 브라 뷰티 라이트’는 유니클로 온라인스토어에서 판매량이 계속 증가 추세”라고 말했다.
이에 뒤질세라 비비안, 엠코르셋, 좋은사람들 등에서도 기존에 노와이어브라에 다양한 색을 입히거나 소재에 변화를 주는 등 스타일에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엠코르셋의 ‘원더브라 바바라 에디션’은 가슴 컵에 레이스 면을 덧대는 식으로 디자인에 변화를 줬다. 좋은사람들도 면 소재의 분홍색 레이스로 제작한 ‘쁘띠 레이스 노와이어브라’ 덕분에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브라렛도 덩달아 인기다. 흡사 스포츠브라와 비슷해 보이지만, 화려한 무늬의 어깨끈 등 디자인적인 요소를 추가한 게 다른 점이다. 시스루룩에 매치하기 좋다.
노와이어브라를 고를 때는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서 대표는 “자신에게 맞지 않은 사이즈를 선택하면 가슴 컵 밑에 부착된 밴드 부분이 조여 오히려 불편하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훅을 없앤 ‘노와이어브라 톱’을 추천한다”고 덧붙인다. 특히 잠잘 때 입으면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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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어내는 화장···스킨의 진화
대용량 스킨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패션에 이어 뷰티에서도 편안함이 주목받고 있다. 화장법이 간소화하면서 스킨(토너) 한 종류만 제대로 바르려는 경향이 생겼다고 한다. 김도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로션, 에센스, 아이크림, 보습크림 등 얼굴에 화장품 여러 종류를 덧바르는 게 반드시 피부에 좋은 게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덜어내는 화장’이 유행하고 있다”며 “실제 스킨만 충실히 발라도 피부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화장할 때 처음 바르는 게 스킨이다. 스킨만 제대로 바르면 굳이 다른 종류 화장품을 덧바를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다양한 스킨 활용법도 주목받고 있다. 심지어 세안제로 스킨 제품을 활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토너워시’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세안 막바지에 물과 토너를 섞어 얼굴을 씻어내는 걸 뜻한다.
김도은 메이크업아티스트는 “물에 석회질 함량이 높아 수질이 좋지 않은 유럽에서 발달한 방법”이라며 “세수로만 세안을 마무리할 때보다 피부가 촉촉하게 유지되고, 유분과 수분 밸런스 조절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점성이 있는 토너는 잔여 노폐물과 엉겨 붙어 트러블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다고 한다. 세안제로 스킨 사용이 늘다 보니 400~500㎖ 대용량 제품도 출시됐다. 일명 ‘짐승 용량’이라 불리는 제품들이다. 닥터브로너스의 ‘라벤더·로즈 발란싱 스킨 소프트너’, 이니스프리의 ‘아티초크 레이어링 스킨’ 등이 있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① 찬물과 토너를 8 대 2 또는 9 대 1 비율로 섞는다. ② 세안 후 얼굴의 물기를 닦아준다. ③ ①의 액체를 얼굴에 10회 정도 끼얹듯이 세수한다. 남은 물기는 수건으로 닦지 않고 두드려 흡수한다.
‘닦토’도 유행이다. 화장품을 닦아내는 용도로 쓰는 토너를 말한다. 알코올 성분이 있는 토너는 노폐물이나 피지·각질 제거에 용이해 지성 피부에 적합하다. 김도은 메이크업아티스트는 “리더스 코스메틱의 ‘카밍 클리어 클렌징 워터’ 등 토너로 닦토를 하고, 피부 건조가 심한 경우 맥스클리닉의 ‘프로에디션 하이드로 퍼밍 젤토너’ 등 에센스형 토너를 충분히 사용하는 게 좋다”며 ‘3스킨법·7스킨법’을 추천했다.
스킨만 얼굴에 여러 번 발라 피부의 촉촉함을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다. 바르는 횟수에 따라 ‘3스킨법’, ‘7스킨법’ 등으로 부른다. 하지만 반드시 횟수를 지킬 필요는 없다고 한다. “피부의 건조와 당김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반복하면 된다.” 그는 보습크림, 에센스, 아이크림, 영양크림 등을 바르지 않고, 오로지 스킨만 활용하는 ‘덜어내는 화장법’에도 순서가 있다고 한다.
① 세안 후 스킨을 화장 솜에 적셔서 전체적으로 피부 결을 정돈한다. ② 스킨을 손에 덜어 얼굴에 부드럽게 발라준 후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주면서 흡수한다. ③ 피부에 건조와 당김이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반복한다. 건성이나 민감한 피부는 스킨을 분사 장치가 있는 빈 병에 담아 얼굴에 뿌리고 두 손으로 감싸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각 업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