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오전, 미국 필라델피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는 오후 12시33분에 떠날 예정이었다. 짐을 부치고 받아든 탑승권에는 ‘불행하게도 좌석을 확인할 수 없으니 네 게이트에 가서 확정을 받아라’라고 쓰여 있었다.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뭔 일 있겠냐’ 싶었다.
탑승이 시작됐다. 직원에게 탑승권을 보여주자 난데없이 ‘옆에 서 있으라’고 했다. 좀 이따 태워주겠지~. 다른 승객들이 모두 탑승하고 난 뒤 게이트 문이 닫혔다. 헐! 항공사 직원에게 말했다. “난 지금 샌프란시스코에 가야 한다. 거기서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컴 다운, 컴 다운(진정해).” 너 같으면 진정하겠냐?
내 짐을 실은 비행기는 이미 활주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어~ 어~. 발을 동동 굴렀다. 검색해보니 항공사의 초과 예약(오버 부킹)으로 자리가 없는 상황. 미국 국내선은 오버 부킹으로 악명 높다는 글도 있었다. ‘공항장애’가 엄습해 왔다. 탑승하지 못한 승객은 4명이나 됐다. 이상하게도 모두 평온한 얼굴이었다. 직원은 내게 호텔 이용권(바우처)과 다음날 시카고를 경유하는 새벽 6시 출발 항공권을 내밀었다. 망할~ 웬 경유여! 영어가 짧아서 항의는 못 했다.
호텔에서 뒤척이다 이튿날 6시 비행기에 올랐다. 아침 8시께 도착한 시카고 오하라 공항에는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4월에 눈이라니. 설마~. 활주로로 나아간 비행기는 2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무지하게 빠른 말로 블라블라 하는데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둘러보니 한국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단어로 조합하니 대략 다음과 같은 뜻. “기상 상황 악화 때문에 이륙할 수 없어서 게이트로 돌아가야 한다.” 결국 다시 비행기에서 내렸다. 기이하게도 승객들은 항의하지 않았다. 한국 같았으면 난리가 날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게이트 주변을 서성였다. 항공사 직원이 이내 소리쳤다. “샌프란시스코, 낫띵(없음)! 낫띵!” 짧은 문장에 감사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다. 그날 그렇게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는 모두 결항됐다. 이틀 연속으로 공항장애라니. 없던 공황장애도 생길 지경이었다. 내 짐은 이미 샌프란시스코에 가 있었다. 간신히 호텔을 예약한 뒤 밖으로 나왔다. 해는 지고 오하라 공항 앞은 여전히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홑잠바를 입은 난 절규했다. “나 좀 샌프란시스코로 보내줘~.”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