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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내가 지옥 여행을 쓰게 된 이유

등록 2019-09-19 09:39수정 2019-09-19 20:55

김태권의 지옥 여행

“새로 시작할 연재, 고전 속 저승 여행을 소개하려 해요.” 내가 말했다. 그런데 지인들의 반응이 별로였다. “어, 지루할 것 같아요.” “예?” 나는 진땀이 났다. 자료도 모아놓고 연재 시작할 날도 받았는데. “아이고, 재미없을까요? 발랄한 문체로 쓰면…. 여러 신화와 종교의 지옥 이야기도 나올 텐데요.” “아, 지옥이요? 지옥은 관심 있어요.” 지옥이라는 말을 꺼내자 바라던 대답을 들었다. “다행이네요. 그럼 지옥에 초점을 맞춰 써보겠어요.” 내가 지옥 여행에 대해 쓰는 첫 번째 이유다. 이 말도 들었다. “발랄한 문체 안 돼요. 중년 아저씨가 그러는 거 보기 흉해요.” 맞는 말씀이다.

우리는 지옥에 끌린다. 남이 지옥에서 고생하는 꼴이 보고 싶다거나 나 스스로 천국보다 지옥에 갈 것 같다고 느껴서 그럴지도 모른다. 움베르토 에코는 ‘왜 우리는 단테의 <신곡>을 읽을 때 <천국편>을 <지옥편>만큼 재밌다고 느끼지 않을까’라는 주제로 강연도 했다.

천국 생활은 지옥보다 심심할 것 같다. 마크 트웨인은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썼다. 거지 소년으로 살던 허크(허클베리의 애칭)는 천국에 대한 설명을 듣고 어이없어한다. “거기서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온종일 하프를 갖고 노래를 부르는 것뿐인데, 그걸 영원히 계속한단다. 내 생각엔 별로 좋지도 않은 것 같았다.”

왜 하필 하프일까. 자주 보는 악기도 아닌데 말이다. 마크 트웨인은 어느 편지에서 투덜댔다. “(천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하프를 뜯습니다! 솔직히 지상에 살며 악기를 하나쯤 연주하던 사람은… 천명 중 스무명도 안 될 텐데 말입니다.”

노래도 문제다. “천국의 합창은… 휴식도 없이 온종일 계속되고 날마다 거듭되고 12시간 내내 지속된다고 합니다. 부르는 노래는 오직 찬송가뿐.” 쉬지 않고 노래하는 일, 힘들다. 내가 합창단도 성가대도 해봐서 안다. 몇 시간이고 노래를 연습하는 일은 고문이다. 같은 소절을 수십번씩 부르는 이유는 늘 틀리는 사람이 또 틀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량한 천국 주민이라도 날마다 이래서야 서로 미워하게 될 것이다.

허크는 지옥에서 악동 친구 톰 소여와 어울릴 일을 기대한다. “나는 혹시 톰 소여도 천국에 갈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는데, 그럴 것 같지는 않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이야길 들으니 나야 좋았던 것이, 녀석과 같이 붙어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구절 때문일까. 천국과 지옥에 대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농담이 마크 트웨인의 말이라고 소개되기도 한다. ‘좋은 날씨 때문이라면 천국, 친구를 보려면 지옥.’ 마크 트웨인이 강연할 때 자주 쓰기는 했지만,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말이란다. 사람들 생각은 비슷하다.

한국 사람이 공감할만한 말이기도 하다. “한국이 재미있는 지옥이라면 ○○○는 지루한 천국”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 자리에는 캐나다, 스위스, 뉴질랜드 등이 들어간다. 아무려나 ‘헬조선’이라는 말도 자주 듣다 보니 옛날처럼 슬프거나 원망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 모두 이 상황에 익숙해진 걸까. 어떤 사람 눈에는 지옥 같아 보이는, 하지만 나름 재미없지도 않은, 한국의 상황에 말이다. “지옥 이야기 재밌을 것 같아요. 한국사회 보고도 ‘헬조선’이라 그러잖아요.” 지옥 여행에 대해 쓰게 된 두 번째 이유다.

김태권(지옥에 관심 많은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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