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은 사찰의 지옥 그림은 보는 맛이 쏠쏠하다. 꼬챙이에 어묵 꽂듯 사람을 장대에 꿰어 쇳물이 펄펄 끓는 솥에 집어넣는 확탕지옥, 샌드위치에 햄 넣듯 널 사이에 사람을 묶은 채 커다란 톱으로 슬근슬근 썰어대는 거해지옥, 삐쭉삐쭉한 칼날이 산처럼 솟아 있고 그 위로 사람을 던져 푹푹 꽂는 도산지옥 등. ‘지옥 관광’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째서 우리는 지옥 그림에 끌리는가. 화가의 고삐 풀린 상상력에 감탄해설까, 아니면 잔인한 광경이 마음을 홀리기 때문일까.
가장 눈길을 끄는 지옥은 발설지옥이다. 입을 다물지 못하도록 머리채를 형틀에 묶은 채 죄인의 혀를 잡아당긴다. 혀를 뽑고 또 뽑아 밭뙈기처럼 넓게 펼쳐놓는다. 그 위로 황소가 쟁기를 끌고 지나간다. 무슨 죄를 지으면 이런 벌을 받을까? 입으로 짓는 죄는 종류도 많다. 술을 많이 마신 죄, 거짓말을 하고도 즐거워 한 죄, 남의 흉을 본 죄, 말로 가족 사이를 갈라놓은 죄. 제주 큰굿인 ‘시왕맞이’에 따르면 “어른 말에 겉대답”한 죄도 발설지옥 감이라고 한다. 어르신이 “한국이 어쩌고 좌파가 어쩌고” 같은 이야기할 때마다 건성으로 말을 받으며 딴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은 큰일 났다.
혀는 예민하다. 캐나다에서 활동한 와일더 펜필드라는 의사가 있다. 산 사람의 두개골을 열고 전기 자극을 주면서 ‘뇌의 지도’를 그렸단다. 대뇌 피질의 어떤 부분이 우리 몸 어느 기관을 담당하는지 연구했다. 감각 신경으로나 운동 신경으로나 가장 넓은 영역을 차지하는 것은 손과 혀. 이 내용을 그림으로 풀기도 한다. 손과 입과 발이 몸통보다 커 보이는 ‘펜필드의 호문쿨루스’라는 기괴한 그림을 한 번쯤 보신 적 있으리라.(호문쿨루스란 연금술로 만들었다는 작은 사람이다.) 이 그림에서도 혀는 큰 부분을 차지한다.
혀가 아플 때 심하게 고통스러운 까닭은 그래서다. 살짝만 다쳐도 혀가 얼마나 아픈지 혓바늘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잠시만 눌려 있어도 얼마나 뻐근한지 치과 치료를 받아본 사람은 안다. 그러니 발설지옥의 고통이 어떠할지 상상해보자. (야, 신난다!) 혀를 부풀리고 넓게 펴기 위해 쇠뭉치로 두드린다고 한다. 그 위로 쟁기가 지나간다. 보습의 날이 혀를 가르고 고랑을 판다. 살점이 옆으로 말려 이랑이 된다. 쟁기를 끄는 것은 느릿느릿 걷는 황소.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묵직한 고통이 혀뿌리를 타고 오른다.
옛날 서양에서도 비슷한 상상을 했나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혀 위의 황소’라는 표현을 썼다. 요즘 인터넷에서 쓰는 ‘할말하않(읍읍)’과 비슷한 의미다. ‘할 말은 있지만 하지 않는다(읍읍).’ 무거운 황소가 혀를 누르는 바람에 자유롭게 혀를 놀릴 처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혀 위에 황소가 앉아있다’는 그리스 속담에서 황소는 진짜 황소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런데 다른 해석도 있다. 옛날 아테나이 사람들이 주화 앞쪽에 황소 그림을 찍었는데, 혀 위의 황소는 이 황소를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돈 때문이라는 것. 매수당해 해야 할 말을 안 하거나 벌금이 두려워 하고 싶은 말을 못하거나, 어느 쪽이든 자주 보는 상황이다.
할 말을 못 하는 고통 역시 혀 위에 황소가 타고 누른 발설지옥의 고통에 포함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 눈치를 살피느라 입을 다물고 마는 이승의 지옥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김태권(지옥에 관심 많은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