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가 남기신 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 사진 이정연 기자
올해 환절기마다 고생 중이다.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즈음 한 번,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요즘 한 번. 몸이 적응할 틈을 안 주는 한반도 날씨의 변화무쌍함에 무력함을 느낀다. 욱신거리는 몸을 잘 돌볼 힘마저 남아있지 않은 느낌이다. 몸 따라 마음도 기운이 쭉쭉 빠진다.
입맛까지 뚝 떨어진 지난 17일 일요일, 비까지 세차게 오는 날씨에 야외에서 취재 일정이 잡혔다. 취재를 다 마치고 돌아가는데 얼굴에 열기가 뻗쳤다.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이 와중에 난데없이 먹고 싶은 게 떠올랐다. 제대로 된 된장찌개를 먹고 싶어졌다. 애호박, 감자 숭덩숭덩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뜨거운 된장찌개를 호호 불어가며, 방정맞게 입술을 씰룩거리며 먹고 싶어졌다. 분명히 바깥에서 사 먹을 수 없는 된장찌개다. 기운이 솟았다. “집에 가서 맛있는 된장찌개를 머억자~!” 혼자 운전석에 앉아 말도 안 되는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불렀다.
된장찌개, 왜 된장찌개란 말인가. 평소 김치찌개파인 나는 내 선택을 곰곰이 들여다봤다. 왜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졌을까. ‘그냥’이라고 하기엔 뭔가 내 선택에 이유가 있을 법한데…. 막힌 도로 위에서 생각했지만, 답은 찾지 못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된장찌개를 끓였다. 그러다 된장을 떠 끓인 물에 풀면서 답이 떠올랐다. 외할머니, 손영순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된장찌개를 끓일 때만 아껴 쓰는 8년 된 된장이 있다. 7년 전 이맘때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남긴, 유산 같은 된장이다. 그 된장을 풀어 된장찌개를 먹을 때면 고마운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푹푹 떠먹고 나니 기운이 났다. 돌아가신 지 7년이 지나도 외할머니의 손길에 기운을 낸다.
글·사진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