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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지옥의 위치에 관한 다섯 가지 이야기

등록 2020-02-14 11:13수정 2020-02-14 20:56

김태권의 지옥 여행
김태권 그림.
김태권 그림.

지옥에 가려고 서두를 생각은 없지만, 그 위치가 어딜까 정도는 궁금하다. 여러 설명이 있어 정리해본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지옥이 이승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지옥에 직접 가보고 왔다는 사람이 없는 까닭은 그래서일 것이다.(편리한 설명이다.) 첫째로 수평으로 먼 곳에 지옥이 있다는 설이 있다. 앞으로 앞으로 자꾸 걸어나가면 살아서 지옥에 가볼 수 있다는 뜻이다. 말을 타고 지옥에 찾아간 북유럽 신화의 이야기를 우리는 전에 읽었다.

둘째로 수직으로 먼 곳에 지옥이 있다는 설이다. 어쩌면 머리 위는 아닐까? 나는 어릴 때 상상했다. 태양의 표면은 엄청나게 뜨겁다는데, 혹시 그곳이 불지옥일까 하고 말이다. 특히 시커먼 흑점 부분이 수상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교에서 태양은 악마가 아니라 신의 상징이니 지옥의 위치로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발아래 깊은 땅속에 지옥이 있다는 설명이 그럴싸하다. 이름부터가 지옥, ‘땅의 감옥’이 아닌가. 문제는 땅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따라 지옥도 위치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선진국 미국’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고 들었다. 우리가 살펴볼 세 번째 설명은 평평한 지구의 땅 아래 깊은 곳에 지옥이 있다는 설이다. 영국의 시인 밀턴이 쓴 <실락원>은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지옥과 악마 이야기가 언급된 유명한 서사시다. 지옥에 대한 밀턴의 설명이 나는 좀 어려웠는데, 주석을 읽고 궁리해보니 이런 내용 같다. 머리 위로 한참 올라가면 태양이 있고, 발아래로 딱 그만큼 내려가면 지옥의 바닥이 있다는 것이다. 지옥이 충분히 멀다는 점은 좋다. 하지만 지구가 둥글다면 받아들이기 곤란한 설명이다. 지구의 크기가 태양계를 거의 집어삼킬 만큼 커진다는 이야기니까.

네 번째 설명은 둥근 지구의 땅속 깊숙한 곳에 지옥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니 살아 있는 사람이 다녀오기는 힘들 것이다. 게다가 땅속 깊은 곳은 지진도 일어나고, 용암도 끓는 장소다. 지옥과 어울린다. 내가 어릴 때는 맨틀이나 지구 핵이 지옥 아닐까도 상상해봤다. 맨틀과 핵이 엄청나게 압력도 높고 뜨겁다는 어린이 과학책을 읽은 다음의 일이었다.

‘시베리아 땅속 깊은 곳에서 지옥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미국의 신앙심 깊은 분들이 널리 퍼뜨린 이야기다. 러시아 과학자들이 땅속으로 십여킬로미터를 파 내려가다가 지옥에 구멍을 냈다는 것이다. 지옥은 온도가 1000도가 넘고, 비명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한국의 신앙심 깊은 어떤 분은 비명을 알아듣기까지 했다는데, 아니나 다를까 “생전에 예수 믿지 않은 일을 후회한다”고 뉘우치는 내용이었다나. 더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신약성서>에는 지옥의 이름이 여럿 나온다. 그 중 ‘게헨나’라는 이름은 ‘힌놈의 골짜기’라는 뜻이란다. 힌놈의 골짜기는 어떤 곳인가. 한때 이민족의 신에게 아이를 죽여 제물로 바쳤다는, 저주받은 무시무시한 장소였다. 나중에는 예루살렘에서 나온 쓰레기를 불태우던 곳이기도 했다. 지옥에 간 영혼은 이승에서 쓰레기가 받던 취급을 받는다는 의미일까. 아무려나 지옥은 사실 이승과 멀지 않으며, 지옥은 이승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 이 이야기를 우리가 살펴볼 지옥의 위치에 대한 다섯 번째 설명으로 올려 보련다.

김태권(지옥에 관심 많은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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