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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문구점은 살아있다

등록 2020-03-04 22:29수정 2020-03-05 02:40

손맛 느낄 수 있는 문구 매력에 푹 빠진 사람들
이색 문구점 여행을 떠나는 덕후도 있어
다이어리 꾸미기 열풍에 더욱 주목받는 문구점
문구는 사소하지만, 문구가 주는 기쁨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문구를 대체하는 디지털기기가 쏟아지고 있지만, 아날로그 문구 인기는 식지 않았다. 최근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열풍이 불면서 10~30대 사이에서 문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사진 포인트 오브 뷰, 제로퍼제로 제공
문구는 사소하지만, 문구가 주는 기쁨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문구를 대체하는 디지털기기가 쏟아지고 있지만, 아날로그 문구 인기는 식지 않았다. 최근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열풍이 불면서 10~30대 사이에서 문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사진 포인트 오브 뷰, 제로퍼제로 제공

문구는 사소하다. 언제든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문구는 일상의 사소함을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게 되고, 꼭 필요하면 어디엔가 있다. 그런데 이 하잖아 보이는 작은 물건들이 사람들의 손을 자꾸 잡아끈다.

사소한 문구, 그리고 문구점의 시대다. 성인이 되면 학습지와 장난감, 문구류를 한데 모아 파는 문구사와의 거리가 멀어질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사소한 문구에 담긴 취향을 좇기 시작하자 문구점과의 거리는 오히려 좁혀졌다. 아무 생각 없이 펜들을 죽 둘러보고 끄적거리다 전에 보지 못한 색이나 필기감을 발견하면 보물을 발견한 마음이 든다. 문구점을 항해하는 문구 덕후들의 눈빛에 왠지 설렘이 느껴지는 건 자신만의 보물을 찾아 헤매고 있어서인지 모른다.

디지털 시대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오늘날, 문구는 시시해 보일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펜과 종이를 대체할 수 있는 디지털기기를 24시간 내내 몸에서 떼지 않는 사람의 효율적인 문구란 스마트폰의 메모장과 스마트 펜일 테다. 그런데도 문구를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문구 덕후라고 해서 디지털기기를 이용하지 않느냐? 그건 아니다. 오히려 진성 덕후들은 디지털기기로 자신만의 문구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문구 덕후들은 디지털 기기가 줄 수 없는 ‘손맛’을 포기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자신은 문구 덕후의 축에도 들기 어렵다며 손사래를 치는 30대 직장인 손주희씨. 그의 가방에는 항상 3개의 작은 필통이 있다. 하나는 만년필, 하나는 펜, 하나는 연필을 3자루씩 담았다. 일요일 저녁 필통을 살피며 다음 한 주 쓸 필기구를 고르는 걸 즐기는 손씨다.

말랑상점에서 판매 중인 오들오들의 스티커. 이정연 기자
말랑상점에서 판매 중인 오들오들의 스티커. 이정연 기자

‘다이어리 꾸미기’(다꾸)는 문구와 문구점에 생기를 불어넣은 트렌드다. ‘다꾸’ 마니아들은 문구 덕후가 되기에 십상이다. 아니, 될 수밖에 없다. 하나하나 고른 마스킹테이프로 메모장을 붙이고, 반짝이는 스티커를 붙여 완성한 한 페이지의 다이어리. 그 안에 어떤 일상을 적어 넣든 특별해진다. 아날로그적인 즐거움이다. 몰입하는 동안엔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한다. 스트레스가 풀리고 힐링이 된다. ‘프로 다꾸러’가 느는 이유다.

문구의 매력에 이끌려 국외 여행을 떠나는 ‘문구 덕후’도 있다. 문구를 만들고 문구점을 운영하는 문경연씨의 <나의 문구 여행기>는 말 그대로 ‘문구 여행’을 다녀와 쓴 책이다. 세계 곳곳 7개 도시에서 만난 문구와 문구점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치 ‘문구 세계 일주’를 다녀온 기분이다. ‘이들(문구)과 함께라면 어떤 기록이든 반짝이는 조각이 되리란 확신이 들 거예요.’ 책 속 구절엔 이토록 작고 사소한 문구가 지닌 힘이 투영되어있다.

ESC도 문구 여행을 떠나봤다. 멀리 가지는 못했다. 일상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디쯤 작고 재미있는 문구점이 있다. 꼭 문구를 사지는 않더라도 그 기발한 쓰임새와 못 견디겠는 아름다움 또는 귀여움으로 꽉 찬 공간에 푹 안겼다 나오는 경험만으로도 일상을 유지하는 힘이 충전될지 모른다. 우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사소한 기쁨이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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