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궁금하면 미국에 다녀온 사람에게 물어본다. 평양이 궁금하면 평양에 다녀온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면 된다. 그렇다면 어려운 질문. 저승이 궁금할 때는?
죽었다 되살아난 사람은 없어도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온 사람은 있다. 대체로 비슷비슷한 것을 보고 온다고 한다. 흥미로운 일이다. ① 먼저 유체이탈. 두둥실 떠올라 땅에 누운 자기 몸을 하늘에서 내려다본다.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수군대는 모습도 보인다고 한다. ② 다음은 길고 어두운 터널. 그 끝에는 밝은 빛이 보인다. ③ 그리고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어떤 사람은 모든 걸 깨달은 전지(全知)의 감정이라고, 어떤 사람은 무한한 사랑의 감정이라고 증언한다. 어느 쪽이건 지극히 행복한 느낌이리라.
대개 이쯤에서 저승 체험이 끊긴다. 저승 어귀에서 만난 가족이 “아직 때가 아니니 돌아가라”고 하거나 이승에 남은 친지가 “죽지 말고 살아나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깨어난다. ‘임사체험’이라 부르는 것은 그래서다. ‘거의 죽음 체험’이라는 뜻의 영어 표현(near-death experience)을 옮긴 말이다. 하기야 저승 들목을 넘어서면 이승으로 돌아오지 못할 터이다.
동서고금의 임사체험이 비슷하다는 사실은 무슨 의미일까. 어떤 사람들은 저승이 존재하며 영혼이 불멸하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반대 의견도 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죽을 때 몸에는 이런저런 고장이 난다. 우리 두뇌에 일어나는 잔 고장이 저승 체험의 원인이라면? 이를테면 ① 멀쩡히 산 사람도 두둥실 떠오르는 유체이탈을 체험할 수 있다. 뇌 측두엽의 오른쪽 모이랑이라는 부위를 전기로 자극하면 말이다. ② 터널이나 빛은 산소 부족 등의 이유로 뇌의 시각겉질 부분에 이상이 생겨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③ 행복감의 정체는 엔도르핀이라는 물질이다. 죽을 때 우리 몸은 무척 아플 터이다. 이때 뇌가 진통제 삼아 마약 물질을 만들어낸다. 죽어가는 사람은 기분이 좋아지고 헛것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측두엽이니 시각겉질이니 하는 어려운 말을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지금 내 손에는 마이클 셔머가 쓴 <천국의 발명>이라는 책이 들려 있다. 과학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철학에 관한 부분은 그저 그렇다(리처드 도킨스의 책과 닮았다). 아무려나 임사체험은 허황된 것이니 저승에 미리 헛힘 쓰지 말고 이승에서 잘 살자고 지은이는 제안한다. 옳은 말씀이긴 하다.
그래도 나는 임사체험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죽음이란 시간이 멈추는 것, 저승이 존재하거나 말거나 이승에서의 마지막 시간이다. 이때 행복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죽음을 앞두고 “흥, 이 행복감은 뇌의 오작동일 뿐”이라며 애써 기분 나빠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천국이 정말로 없건 말건 내가 지금 천국처럼 느끼면 그만”이라며 최후의 순간에 속아주는 쪽이 영리한 일 같다. 저승이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가 아니라 단지 자기만의 환각에 영원히 갇히는 일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나는 걱정이다. ④ 어떤 사람은 행복의 정점에서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열 명 가운데 한둘은 임사체험 때 부정적인 경험을 한다는 자료도 있다. 입구는 천국 같지만, 마음을 풀고 모퉁이를 돌아서면 지옥이 펼쳐지는 공간, 저승이 이런 곳이면 어떡하지? “속았다”며 되돌아오지도 못할 텐데 말이다.
김태권(지옥에 관심 많은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