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의 시대. 자기가 의료진이 되어 감염병을 막는 게임도 있고, 자기가 감염병이 되어 인류를 감염시키는 게임도 있다. 오늘날 게임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재현한다.
만화가들이 모여 가끔 수다를 떤다. 한번은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재미있는 게임은 이미 많으니, 만들어질 리 없는 정말 재미없는 게임을 이야기해 봐요.” 이렇게 아이디어를 모은 세 가지 게임이 있다.
① 첫 번째는 커플 지옥. 전형적인 연애 게임은 어떤가. 주인공은 평범하다. 짝사랑 상대는 이성이건 동성이건 인기가 폭발. 그런데 주인공이 고작 몇 가지 선택만 잘하면 둘이 커플이 된다는 거다. 게다가 연애가 시작하면 늘 행복할 것만 같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은 인기가 많죠. 하지만 ‘리얼’ 연애 게임은 어떨까요?” “헉!” 무서운 ‘리얼’의 세계. 첫사랑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맺어진대도 달콤한 시간만 있지는 않다. 자기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든데 연애 상대도 챙겨야 하고, 주위 눈치도 살펴야 한다. 이 리얼함을 게임으로 만드는 거다. 비밀연애 안 들키기, 애인 과제물 대신해주기, 애인의 가족과 주위 사람 챙기기 등, 아, 피곤하다. “잔인해요! 연애에 대한 환상이 깨지겠어요!” “정말 나오면 밸런타인데이 때 솔로 친구들끼리 선물할 수도 있겠군요.”
② 입시 지옥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을 비튼 것이다. ‘동물의 숲’이나 ‘다마고치’처럼 동물을 키우거나 ‘프린세스 메이커’처럼 공주나 아이돌이 능력치를 쌓고 성장하도록 관리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리얼’ 육성 게임은 어떨까요?” 리얼한 세계에서는 능력치를 올리는 일이란 몹시 어렵다. 수십 수백 문제를 풀어야 1점이 오를까 말까다. 생각만 해도 피곤한 일이다. 누가 이 게임을 하고 싶어 할까.
③ 불신 지옥은 ‘리얼’ 종교 게임이다. 나라를 키우거나 회사를 경영하거나 문명을 세우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패러디다. 플레이어는 신흥종교를 대형교단으로 키워야 한다. 다른 종교의 신자를 빼 오거나 말 안 듣는 교인을 파묻거나 부동산과 헌금으로 교단을 키운다. (“이 게임은 좀 재밌을지도 모르겠어요”라는 의견도 있지만.)
이것이 ‘지옥 게임 삼부작’이다. 정말 있는 게임이 아니다. 정말 지옥을 다루지도 않는다. 이름은 지옥인데 내용은 현실이다. 지옥이 현실의 반영이라서 그럴까. 연애건 입시건 종교 생활이건, 우리 현실이 지옥과 다르지 않아서 그럴까. 연애는 한국에서 지옥이다.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왜 연애를 안 하시냐”고 가끔 묻는다. 슬픈 대답을 듣는다. “사는 게 힘들어 연애를 할 여력이 없다”는 거다. 질문부터가 미안하다. 한국의 입시는 옛날부터 지옥이었다. 지금은 더 살벌하다. 경쟁은 갈수록 심해진다. ‘불신 지옥’은 한국의 종교를 비꼬는 말이었다. 자기만 옳고 남이 그르다는 종교인을 우리는 자주 본다. 종교뿐이랴. 정치도 협상보다 싸움이 우선이다. 누구나 아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면이다. ‘헬조선’이라는 말도 이래서 나왔을 터.
헬조선에 대해 푸념도 자주 했더랬다. 그런데 이번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팬데믹의 시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우리는 놀랐다. “헬조선인 줄만 알았는데 안전한 곳이었잖아!” 지금 와서는 유럽이건 미국이건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좋은 이야기일까?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전 세계가 ‘헬’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일 수도 있다. 나쁜 이야기일까?
김태권(지옥에 관심 많은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