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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아나운서도 직장인, 고민은 차고 넘친다

등록 2020-06-05 11:43수정 2020-06-18 10:39

임현주의 직장생활, 나만 힘들어?
전쟁 같지만 즐겁고, 치열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꿈꾸는 모든 직장인의 딜레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전쟁 같지만 즐겁고, 치열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꿈꾸는 모든 직장인의 딜레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어쩌다 나는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생각했을까. 아나운서가 되기로 한 건 축복이었을까, 고생길의 시작이었을까. 아나운서 시험에 끝내 합격하지 못했다면, 방송국 조명이 내리쬐는 현장을 상상하며 오랫동안 그리워했을까?

부딪히고 깨지더라도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산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아나운서.’ 이 말은 내게 행복하고도 아픈 네 글자다.

아나운서라는 직업만큼 열렬하게 오래도록 갈망한 일은 없었다. 이 일만큼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직업도 없었다. 방송할 때는 통증도 싹 잊을 만큼 몰입하다가도 그동안의 고민과 견뎌온 시간을 떠올리면 ‘아, 그 과정은 두 번은 못 하겠다’ 싶었다. 다음 생애에서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생은 이 일이 천성이요, 적성이니…. ‘어쩌다 좋아하게 되어서….’

오늘도 방송국에 출근한다. 새벽 마구 울리는 알람을 듣고 기지개를 켠다. 머리를 대강 말리고, 메모장을 체크하며 가방을 챙긴다. 차 안에서 앞머리를 분홍색 헤어롤로 단단히  만 후 출발 버튼을 누른다. 라디오 주파수를 이리저리 찾다 보면 나의 일터 <엠비시>(MBC)가 있는 상암동에 도착한다.

쫓기듯 달린 아침의 분주함은 잠시 들른 카페에서 옅어진다. 커피 위에 보글보글 쌓인 하얀 거품이 짧은 위안과 평화를 준다. ‘이 5분의 여유가 정말 소중해….’ 하지만 마냥 달콤한 커피 한잔에 빠져 있을 순 없다. 동료들이 스튜디오에서 기다리고 있다. 카메라 감독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하면 드디어 전쟁이 시작된다. 생방송 20분 전!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쉬고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세포가 예민하게 날을 세운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아침 방송을 한 지 2년째다. 이젠 정말 익숙해져서 편안해졌지만, 언젠가 툭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영원한 방송도, 영원한 엠시(MC)도 없으니까.

아나운서실에는 마흔 명 남짓의 선후배, 동료들이 있다. 모두 자기만의 개성으로 ‘하나의 캐릭터’가 된 이들이지만, 그들의 이름 뒤엔 ‘국장’, ‘부장’, ‘차장’ 등 여느 회사에서 볼 수 있는 직함이 달려 있다. 그렇다. 아나운서는 화려해 보이지만, 방송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면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다. 방송국도 치열한 직장생활의 한 현장이다.

나는 12년차 방송하는 직장인이다. 첫 직장이 <엠비시>(MBC)였던 건 아니다. 소속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직장명이 새겨진 명함을 받은 건 정확히 다섯 번이다. 잠시라도 일을 한 회사는 열 군데가 넘고, 그중 정규직은 두 번이었다. 프리랜서로 거쳐 간 곳도 많다. 이러다 보니 신입사원만 여러 번이었고, 당연히 그중 8할은 막내였다. 지난 시간을 촘촘히 적은 메모와 일기를 들춰보면 에피소드가 차고 넘친다. 아무리 여러 번 거친다고 해도 언제나 어려운 게 ‘신입사원’이란 자리였고, ‘이번만큼은 더 능숙하게 해내겠지’라고 결심해도 꼬이는 게 직장생활이었다.

지난했던 취준생의 시간, 눈물샘 자극하는 합격의 기쁨, 입사를 기다리는 동안의 장밋빛 설렘, 첫 출근의 떨림 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것밖에 못 하나?’ 하며 방황하고 출퇴근만으로도 지치던 신입사원 시절도 생각난다. 적응하나 싶었는데, 고민은 또다시 피어났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이런 질문이 나만의 고민일까?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꿈꾸는 우리는 고민이 많다. 일을 하면서도 잘하고 있는 건지, 내가 꿈꾸던 인생이 맞는 건지 의심한다. 그런 고민을 생산적으로 발전시키려다가도, 당장 오늘의 일을 처리하다 보면 에너지가 바닥이 난다. 결국 나를 성찰하게 하는 고민들은 꼬깃꼬깃 접혀 어딘가에 묻힌다.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우리가 겪는 숱한 사회생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려고 한다. ‘직장생활, 나만 힘들어? 나만 고민해?’

임현주(MBC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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