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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벽 없앤 집, 카페 같은 집…코로나19로 달라진 ‘집의 위상’

등록 2020-06-19 09:27수정 2020-06-19 09:58

아파트 대신 단독주택…외부 접촉 최소화
눈높이 높아져 리모델링 시도 느는 추세
무주택자들은 어떻게? 셀프인테리어·홈카페 등 인기
벽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수명장수 주택도
실내 리모델링을 통해 거주자의 취향을 드러내는 아파트들이 늘고 있다. 반포동의 한 아파트. 카민디자인 제공
실내 리모델링을 통해 거주자의 취향을 드러내는 아파트들이 늘고 있다. 반포동의 한 아파트. 카민디자인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이 인류 앞에 출현한 지 어언 6개월이다. 전 세계 확진자만 700만명을 훌쩍 넘었고 그중 40여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장 피해가 심했던 미국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이제 브라질과 인도에서 맹위를 부리고 있는 형국이다. 전무후무한 추적형 방역 대책으로 안정을 찾던 한국 또한 지난 12일을 기해 수도권 방역강화조치를 무기한 연장하며 다시 긴장의 끈을 조이고 있다. 전문가들조차 백신 개발 시기를 상이하게 예측하고, 종식이 아닌 토착화 상황까지 염두에 두는 지금 상황에서 확실한 것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 하나다. 그런 면에서 집과 주거 문화는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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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지위 올라갔네

사람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의·식·주’에 해당하는 집은 한국 사회에서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취급되곤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생활의 중심지로서 집의 가치가 재발견되면서 그 신분이 수직 상승했다. 예전만 해도 집은 그저 잠만 자는 곳에 가까웠다. 그러나 주 5일제가 자리 잡으면서 집은 비로소 쉬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소득 수준의 향상과 해외여행의 보편화로 좋은 공간을 체험한 이들이 늘면서 집에 대한 관심도 증가했다. 하지만 인식의 미세한 변화에 머무는 정도였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족 구성원들이 종일 함께 집에 머물면서 집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끼게 됐다. 실제 지난 4일 국토교통부가 개최한 심포지엄 ‘도시와 집, 이동의 새로운 미래’에서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유현준 교수는 “코로나 이후 집의 프로그램(용도) 용량이 150%가량 증가하면서 1970년대 세웠던 4인 가족 기준 30평형 아파트 평면이 더 이상 현실에 통하지 않게 됐다”며 앞으로 더 넓은 집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거라고 예측했다.

블록형 단독주택 브랜드 ‘라피아노’. 건축사진가 김용관 제공
블록형 단독주택 브랜드 ‘라피아노’. 건축사진가 김용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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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형 단독주택 궁금해

작은 아파트 한 채도 사기 힘든 현실에서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런 까닭에 다양한 대안이 대두하고 있다. 첫째로는 아파트를 탈출하는 것이다. 요즘 대규모 필지를 개발해 아파트 단지처럼 규모를 확보한 블록형 단독주택이 주목받고 있다. 1~3층을 이용할 수 있어 구성원의 밀집도를 분산시킬 수 있고 테라스를 통해 바깥과 실제 맞닿는 효과까지 노릴 수 있기 때문. 게다가 외부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개방감을 높이는 설계 또한 장점이다. 블록형 단독주택 브랜드 ‘라피아노’를 총괄 설계하는 조성욱건축사사무소 조성욱 대표는 코로나19에 유리한 블록형 단독주택의 특징으로 중간 공간을 꼽는다. “청라 라피아노의 경우, 현관에 들어서면 바로 유리방이 나타난다. 벽체로 처리하지 않아서 시각적인 개방감을 높이고, 아이들의 과외 방으로 활용하면 반(半) 사적인 중간 공간으로 쓸 수 있다. 외부인의 동선을 현관에서 차단하는 것이다.” 그가 지금 설계 중인 주택은 더 나아간다. 1층은 필로티 구조로 처리해 주차장 혹은 간이 공간으로 개조하고, 2층은 거실과 부엌, 3층은 방 3개를 배치하던 과거 통념을 깬다. 3층의 방 1개를 1층에 영구적으로 옮기고 기존 3층 방의 바닥을 삭제해 2층 거실의 층고를 최대 6m까지 높이는 것이다. 집의 개방감은 극대화하면서 1층 공간은 과외 방, 게스트 룸 등의 중간 공간 혹은 다목적실로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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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주택이 부담스럽다면? 리모델링은 어때?

블록형 단독주택은 도심에서의 삶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걸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 노후 아파트의 리모델링을 선택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리모델링의 품질에 매우 민감해졌다는 것이다. 아파트 인테리어에 집중하는 카민디자인 김창건 대표에 따르면, 해외 체류 경험이 잦고 수준 높은 인테리어 디자인을 인터넷에서 손쉽게 접한 이들이 예전 같으면 프리미엄급이라고 평가했던 인테리어를 지금은 보편적인 수준으로 인식하는 상향평준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면서 독립적인 오피스 공간이 필요해지고, 그동안 체감하지 못한 집 안의 불편함을 매일 접하다 보니 10~15년 된 아파트를 리모델링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생활 습관에 맞는 세심한 동선과 공간 디테일을 챙기고 시각적으로 쾌적한 스타일을 구현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많은 예산을 투자하는 걸 감내하는 모양새란다. “우드와 화이트를 기반으로 내추럴한 분위기를 만들거나 단순한 모노톤으로 공간을 구획하며 개방감을 극대화하는 게 매우 중요해졌다.” 엘지(LG) 하우시스 천하봉 디자인센터장은 “취향이 확실한 사람들은 투자한 만큼 도움이 되고 이득이 되는 결과물을 원한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소비 관점이 주거 공간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용산구에 있는 한 빌라. 카민디자인 제공
용산구에 있는 한 빌라. 카민디자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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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 인테리어 사진이 뜨는 이유

앞서 말한 흐름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일단 집을 소유해야 한다. 세대를 막론하고 적용되는 법칙이다. 자가주택이 없는 사람들은 집을 취향대로 고치지 못한다. 그들에게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 셀프 인테리어를 부분적으로 시도하거나 아예 모든 것이 다 갖춰진 ‘풀 퍼니시드’(Full Furnished·가전 가구 완비)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서 프로추어인 사람들에게 셀프 인테리어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다만 스스로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어 재료를 고르고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시공 하자가 생긴다. 시공은 굉장한 노하우가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셀프 인테리어의 상당수가 실패로 끝나거나, 성공해도 디테일이 부족해 금세 흥미를 잃는 이유다. 풀퍼니시드 공간은 모든 게 다 갖춰져 있는 만큼 임대료가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1인 가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엠제트(MZ) 세대’(밀레니얼 세대+제트세대)는 가슴 아프게도 대한민국 역사상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번째 세대다.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한다지만, 집 문제만큼은 소유를 반쯤 포기한 상태다. 대신 풍요로운 성장기에 쌓은 지식과 안목이 만든 취향은 원룸, 투룸, 오피스텔에 얼마간 머무는 현실과 기묘하게 타협한다. 좋은 공간에 대한 욕구가 가구와 소품을 이용한 홈퍼니싱과 홈스타일링 등 국지전의 양상을 띠는 것이다. 테이블과 의자, 벽지, 조명, 작은 소품과 오브제 몇 개면 좁은 거실 구석과 원룸도 충분히 멋진 공간으로 탄생한다. 최근 인테리어와 관련된 검색어 중 ‘홈카페’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면에는 취향에 맞는 외부 공간의 대표 격인 카페에 자유롭게 출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와 흡사한 느낌을 주거 공간에 구현하려는 엠제트 세대의 욕망이 숨어있다. 이런 ‘소확행’적 공간은 휴대전화에 기록되어 코로나19 시대 인스타그램에서 음식 사진을 밀어내고 대세 이미지로 소비된다.

염리동의 한 아파트. 카민디자인 제공
염리동의 한 아파트. 카민디자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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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장수 주택이 뜬다

요즘 ‘포스트 코로나’라는 용어가 계속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이는 비논리적인 현상이다. 코로나19가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이후’를 예측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근본적이고 의미 있는 변화상에 대한 고민은 긍정적이다. 재택근무, 온라인 교육, 모바일 쇼핑, 배달 서비스 등 비대면과 디지털이 만나는 지점이 대표적이다. 집과 주거 문화에서도 이런 근본적인 요소를 잡아낼 수 있을까. 먼저 집이 다중 플랫폼의 역할을 맡게 되면서 쾌적한 주거 공간에 대한 욕구가 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은 확실하다. 코로나19가 결정적인 촉매제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따라서 기존 한국 사회에서 먹는 것, 입는 것 다음으로 중시하던 대표적인 사례가 자동차였다면, 앞으로 자동차 구입이 아닌 주거 공간을 고치고 재정비하기 위해 목돈을 모으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더불어 ‘수명장수 주택’((30~40년이 아닌 그 이상 오래 유지되는 주택)이 빠른 속도로 보편화될 전망이다. 유 교수는 심포지엄에서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아파트 시공 방식을 벽식 구조에서 기둥식 구조로 바꿔야 한다”며 수명장수 주택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건물 하중을 벽이 지탱하는 벽식 구조는 벽을 함부로 허물지 못해 공간을 자유롭게 전환하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다. 반면 몇 개의 기둥체로 하중을 지탱하는 수명장수 주택은 기둥을 제외한 모든 벽을 마음대로 허물 수 있어 필요에 따라 공간을 추가하고 변형하기에 용이하다. 집이 다중 플랫폼으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 선결되어야 하는 기본 사항인 셈이다.

전종현(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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