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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히틀러, 지옥에서 독방?

등록 2020-06-25 10:02수정 2020-06-25 10:09

김태권의 지옥여행
김태권 그림
김태권 그림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는 누가 있을까. 가장 나쁜 사람이 있겠지. 그게 누구일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터.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차가운 밑바닥을 보자. 대악마의 입에 세 사람이 물려있다. 하나는 예수의 제자였던 가롯 유다. 기독교 지옥이니 그렇다 치자. 둘은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사람이다. 이상하다. 로마 세계의 절반이 영웅으로 받들던 브루투스가 유다와 동급이라니, 단테의 사심이 아닐까(단테는 카이사르 ‘빠’였다).

그 시절 이후로도 악당은 끊이지 않고 등장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옥 밑바닥에 떨어질 후보군단이 모자랄 일은 없다. 가장 튀는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 그가 지옥 밑바닥에 처박힌 유명한 그림도 있다. 화가 조지 그로츠는 히틀러가 잘나갈 무렵 고향 독일을 등지고 미국으로 달아난다.(이름도 게오르크에서 조지로 바꾼다.) 히틀러는 젊은 시절 극우파 정치 깡패였는데, 그때 그로츠와 친구들이 그림으로 그를 비웃었기 때문이다. 세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그로츠는 다시 히틀러를 그린다. <카인 또는 지옥에 간 히틀러>라는 작품이다. 그림 속 히틀러는 지옥의 시뻘건 밑바닥에 앉아 진땀을 뻘뻘 흘린다. 히틀러 때문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이 백골이 되어 그를 향해 몰려온다. 제목에 보이는 ‘카인’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 자기 형제를 쳐 죽이는 분야에서 ‘최초’라는 기록을 세운 사람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히틀러는 지옥 밑바닥에서 독방을 쓸까? 히틀러와 같은 방에 들어갈, 그와 맞먹을 악당이 있을까? 시시한 질문 같지만 중요한 문제다.

<소프라노스>는 미국의 인기드라마다. ‘크리스토퍼’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두고 여러 민족이 입씨름하는 내용이다. 주인공이 마피아다 보니 같이 나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갱단 두목이지만 말이다. 이탈리아계 마피아한테 이탈리아가 고향인 콜럼버스는 영웅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차별받던 역사가 있어서 더 그렇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인디언이라 부르던 아메리카 원주민 갱단의 두목은 콜럼버스를 악당 취급한다. 그가 원주민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내 눈길을 끈 드라마 속 인물은 유대계 갱이었다. 처음에는 콜럼버스가 나쁘다는 주장에 맞장구를 친다. 그런데 “콜럼버스야말로 히틀러와 맞먹는 악인”이라는 말을 듣자 발끈한다. 유대민족인 이 사람이 보기에 히틀러만큼 나쁜 사람은 또 없기 때문이다.

이 비슷한 논쟁이 정말로 있었다. 20세기 후반부터 독일의 극우파는 히틀러를 재평가하자고 주장했다. 히틀러가 좋은 사람이라고 거짓말한대도 사람들이 믿지는 않을 터이니, 대신에 소련의 스탈린을 끌어다 히틀러와 나란히 세웠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마찬가지로 나쁘다고 했다. 나치의 강제 수용소도 소련이 세운 수용소에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이 먹혔을까? 독일 사람들은 안 넘어갔다. 뻔한 ‘물타기’ 수법이라고 봤다. 희생자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아무개가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나쁘다”라는 비교는 (어려운 말로 ‘나치즘의 상대화’라고 부르는데) 이제는 하면 안 되는 말이다. 그렇다고 스탈린이 천국에 있을 것 같진 않으니, 나는 생각한다. ‘지옥 밑바닥에서는 스탈린도 히틀러도 독방을 쓰겠구나’라고.

김태권(지옥에 관심 많은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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