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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세계대전 때 신무기 될 뻔, ‘절대 악취’

등록 2020-07-09 09:20수정 2020-07-09 09:32

김태권의 지옥여행

팬데믹 시대의 말 못 할 고민, 그것은 입 냄새다. 온종일 마스크를 쓰는 날은 아무리 양치를 해도 소용이 없다. 미미한 냄새가 마스크 안에 쌓여 코를 간질인다. 이런 냄새를 나나 남이나 서로 내뱉고 들이쉬고 살았다니. 세상이 나한테 사과해야 할지 내가 세상에 사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렇듯 악취란 고통이다. 그런데 어째서 냄새로 고통받는 지옥은 찾기 힘든 걸까. 죄인을 묶어놓고 악취물질을 코에 들이대는 악마가 있다는 지옥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쓸데없는 문제를 나는 한참 고민했다. 어쩌면 입 냄새의 민망함을 잊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세 가지 실마리를 나는 찾았다. 첫째 실마리는 단테의 <신곡>에 있다. <지옥편>의 열한번째 노래는 지옥의 전체 구조를 설명한다. 그때까지 말이 많지 않던 안내자 베르길리우스가 주절주절 말을 쏟아낸다. 왜 뜬금없이 이 대목에서 그는 학습만화에 나오는 아는 것 많은 삼촌처럼 기나긴 설명을 늘어놓을까? 냄새 때문이다. “그곳은 너무나도 역겨운 악취가 깊은 심연에서 풍겨 나오고 있”어서였다. 조금 기다리자고 베르길리우스는 제안한다. “먼저 사악한 냄새에 우리의 감각이 약간 익숙해져서 신경 쓰지 않도록 천천히 내려가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여기서 우리는 새삼 깨닫는다. 냄새의 고통이란 끔찍하지만, 시간을 조금만 끌어도 익숙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두 번째 실마리를 나는 <전쟁에서 살아남기>라는 책에서 찾았다. 과학책 작가로 유명한 메리 로치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정보기관의 기밀문서를 소개한다. 그때 스탠리 러벌 국장은 기괴한 신무기 ‘S액’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물질이었다. 독일이나 일본 장교에게 ‘S액’을 묻히면 점령군이 타격을 입으리라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아무려나 러벌 국장은 진지했던 것 같다. “백만 달러짜리 코”라 불리던 화학자 어니스트 크로커와 함께 누구나 싫어할 절대 악취(메리 로치의 표현에 따르면 ‘악취제의 성배’)를 만들기 위해 큰돈을 들였다. 그런데 이 계획은 실패했다. 왜? “누구나 싫어할” 냄새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사를 해보니 어떤 사람은 토사물 냄새를 “향수로 뿌리고 싶은 냄새”라고 대답했고, 어떤 사람은 하수 냄새를 “음식 냄새”로 여기더라는 것이다. 악취의 기준은 보편적이지 않다.

마지막 힌트는 <엉덩이 탐정>에 있다. 어린이 세계에서는 절대적 지지를 누리던 작품이지만 이 칼럼은 어른 독자님이 읽으실 테니 굳이 소개하자면 이렇다. 이 사람은 명탐정인데 얼굴이 있어야 할 곳에 엉덩이가 있다. 범인이 저항하면 입인지 항문인지 불분명한 기관으로 방귀를 뿜어낸다. 냄새를 맡고 범인은 쓰러진다. 그런데 범인을 쫓던 경찰들도 함께 쓰러진다는 점이 웃음의 포인트. 악취는 고문하는 쪽도 고문받는 쪽도 함께 괴롭게 한다.

그런데 나는 “7 대 3의 가르마로 젠틀”하다는 이 엉덩이 탐정의 생김이 검찰의 윤 총장과 똑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총장의 지지자가 좋아할지 반대자가 좋아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누가 지지자고 누가 반대자인지도 잘 모르겠다. 하루아침에 서로 자리를 맞바꾸는 모습을 봐서 그렇다. 요즘도 싸움이 한창인데 누가 누구를 괴롭히는 상황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지켜보는 우리만 괴로운지도 모른다.

김태권(지옥에 관심 많은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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