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ESC] 오래 가는 첫인상, 평생 가는 마지막 인상

등록 2020-09-10 09:15수정 2020-09-10 11:03

클립아트코리아
클립아트코리아

사회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할수록 첫인상보다 ‘마지막 인상’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인상의 중요성이야 숱하게 들어왔을 것이다. 5초 만에 결정된다고도 하는 첫인상이 좋을 경우 여러 상황에서 유리한 출발선에 서게 된다. 사람들은 면접에서 비슷한 실력의 지원자들이 있을 때 첫인상이 좋은 사람을 선택하기도 하고, 소개팅이나 어떤 만남에서 호감을 느끼면 그 사람이 한동안 소위 진상 짓을 해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 말은 반대로, 첫인상을 잘못 남기면 만회하는 데 몇 곱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지막 인상’에는 대체로 소홀한 경향이 있다. 생각해보자. 누군가와의 마지막이 유쾌하지 않아 이전에 좋았던 기억까지 빛이 바랜 경험이 있지 않은지. 첫인상이 오래 가는 것이라면, 마지막 인상은 평생 간다.

우리가 마지막 인상을 첫인상만큼 신경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떠나는 자의 경우다. 퇴사를 하거나 부서이동을 할 때, 새로운 시작에 에너지를 쏟느라 혹은 마음이 들떠서 마무리를 소홀히 하곤 한다. 이곳에서 그다지 좋지 않았던 기억을 소심하게 복수하거나 두 번 다시 보지 않으리란 생각으로 무심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남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이해관계가 있지 않을 때의 모습을 ‘그 사람의 민낯’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러니 떠나는 자여,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만날지 모를 인연의 고리를 되새기며 마무리에 더욱 정성을 쏟자. 감사 인사를 전하되, 들뜬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 분위기를 흐릴 수 있으니 주의하자. 또 옛 인연을 가볍게 여기는 듯한 모습은 결국 자신의 흠이 되어 돌아오는 법이니 괜한 험담을 하지 말자. 떠나면서 불만 대신 감사함을 표현하는 사람이 성숙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그럼 남는 자의 마무리는 어떨까. 방송국에선 개편 시즌에 진행자가 프로그램을 떠나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제작진은 이를 어떻게 통보할지 고민하면서 서로에게 공을 넘기는데, 이러다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좋지 않은 소식일수록 결정권자가 당사자에게 직접 설명해주는 것이 좋은 법. 당사자는 우회적으로 통보를 받거나 누구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을 때 그동안의 신뢰가 무너지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왠지 어색하거나 미안해서 마지막 인사를 피하는 경우도 있는데 당사자의 오해만 살 뿐이다.

몇 개월간 매일 진행했던 프로그램을 떠날 때의 일이다. 나는 마지막 클로징 멘트를 마치고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눈 뒤 피디 선배를 찾았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는데, 선배는 부조(컨트롤 룸)에서 나오지 않고 계속 일만 하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30초만 시간을 내주지….’ 하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반면 함께한 시간을 되새기고 서로 고마웠다 표현을 아끼지 않은 제작진과는 떠나는 기억이 어느 순간보다 아름다웠고, 동료애 또한 지속되었다.

제안을 주고받는 경우에도 마무리는 중요하다. 강연이나 기고 등의 제안이 왔을 때 시간상의 이유로 거절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거절 메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고맙다고, 앞으로도 응원하겠다고 답장을 보내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땐 미안한 마음과 함께 감동을 받는다. ‘진심으로 나에게 호감을 갖고 제안을 해주었구나.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주는구나’ 싶어 상대를 기분 좋게 기억하게 된다. 다음에도 제안이 온다면 진정성을 느끼게 해준 상대와 손을 잡고 싶어지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언젠가 한 번은 대학생 친구들이 수업 발표에 필요한 질문이라며 답변을 정성스레 요청해왔다. 가급적 도움을 주고 싶어 시간을 내 답변을 해주었지만, 이후 고맙다거나 잘 받았다는 간략한 연락조차 받지 못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인데 끝에는 깊은 실망감만 남을 뿐이었다.

마무리에 거창한 준비는 필요 없다. 말 한마디면 된다. 고마웠다, 고생 많았다는 말 한마디 말이다. 첫인사를 잊지 않듯 마지막 인사를 잊지 않는 것이다. 나의 마지막 인상은 어떠했을까, 헤어짐에 무뎌지지 않았는지, 마지막에 소홀하게 하지 않았는지, 나의 마지막을 떠올려보자.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마지막은 더욱 살뜰하게 챙기리란 다짐을 잊지 말자. 인연은 돌고 돌기에, 무엇보다 나는 떠나도 평판은 남는 것이니까.

임현주(MBC 아나운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