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사는 아버지의 집에 가면, 볼륨 높인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우리를 먼저 맞는다. 아버지의 형인 큰아버지가 몇 년 전부터 보청기를 쓰시기 시작한 걸 보면, 듣는 힘이 쇠약해지는 것은 아마 집안 내력인 듯하다. 아버지는 건강검진에서 청력에 이상이 없다고 했다며 보조기구의 도움을 얻고 싶지 않아 하시는데, 대신 우리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런 아버지랑 7살 나의 아이가 어느 날 나란히 앉았다. 아이는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께 새로 산 지구본을 자랑했다. 할아버지가 지구본을 요리조리 돌리며 보는 동안 아이는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이가 가 본 나라는 여기 있구나.” “○○이는 또 어느 나라에 가 보고 싶니?”라며 아이에게 말을 붙였다. 종이접기에 열중한 아이는 심드렁하게 대답을 이어가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 “할아버지! 거기 케냐 있어요? 나 케냐 말 알아요. 유치원에서 노래를 배웠거든요.” 아이는 유치원에서 배운 케냐 민요 ‘잠보’라는 노래에 한동안 꽂혀 있었다.
아이가 ‘잠보~ 잠보 뿌아나~’로 시작하는 첫 소절을 부르려 어깨를 막 들썩이는데 할아버지가 질문을 던졌다. “오, 우리 ○○이, 캐나다 말을 할 줄 안다고?” 평소 낙천적인 나의 아버지는 잘 안 들리면 안 들리는 대로, 듣고 싶은 대로 들으시는 경향이 있다. 아이의 영어 교육에 관심이 많기도 하다. 할아버지가 반색하며 아이에게 물었다. “그래, ○○아, 이렇게 넓은 지구를 여행하려면 가장 먼저 뭘 해야 하지?” 과연 아이는 할아버지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곰곰이 고민하던 아이가 대답했다. “음, 짐을 잘 싸야 하죠!”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