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찾은 대구 달서구 대천동 ‘맹꽁이 생태 학습장’(대명 유수지) 억새밭. 김선식 기자
대구 여행은 골목과 주전부리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약 10년간 대구는 골목 여행 ‘성지’로 거듭났다. 대구역에서 1㎞ 이내에 오랜 역사를 간직한 명소들이 골목 따라 이어진다. 경상감영공원(조선 후기 경상도를 통치한 관찰사가 기거한 곳), 대구근대역사관(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 저항시인 이상화와 국채보상운동 주창자 서상돈의 고택, 1900년 전후 성당·교회와 선교사 거주 지역, 한국전쟁 이후 화가 이중섭, 시인 구상 등 문인들이 모여든 향촌동 거리 등. 대구의 대표적인 여행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도 대구역에서 직선거리로 2㎞ 남짓에 불과하다. 골목들은 서문시장, 교동시장, 칠성시장, 방천시장 등으로 이어진다. 대구의 ‘빨간 맛’(육개장, 찜갈비, 양념 어묵 등 매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들이다. 케이티엑스(KTX) 열차가 정차하는 동대구역은 대구역까지 지하철로 세 정류장 거리다. 경부선이 지나는 지역에선 대구 당일치기 여행도 어렵지 않다. 좀 더 여유롭고 느긋한 대구 여행을 원한다면? 너른 자연의 품에서 걷고 쉬기 좋은 대구 여행지로 가면 된다. 대구 먹거리처럼 소박하면서도 강렬한 뒷맛을 남기는 곳들이다.
대구는 분지다. 가까이는 팔공산(1193m)과 비슬산(1083m), 멀리는 금오산(976m), 가야산(1432m)의 산지와 구릉이 에워싼다. 대구 도심 한복판을 신천이 가로질러 금호강과 만난다. 대구 서쪽에서 금호강은 낙동강과 만난다. 그곳에 달성습지(대구 달성군 화원읍 일대)가 있다. 과거 홍수로 하천에 쌓인 퇴적물이 습지를 형성했다.(범람형 습지) 약 150만㎡ 습지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 삵과 맹꽁이가 발견됐다. 너구리, 고라니, 살모사 등도 서식한다고 한다.
지난 9일 달성습지 일대 은빛 물결이 춤추는 곳을 찾았다. 약 26만㎡ 습지를 가득 채운 억새밭이다. 대구 사람들에게도 아직은 덜 알려진 곳이다. 2011년 8월 새끼 맹꽁이 수천마리가 이동하는 모습이 발견돼 ‘맹꽁이 산란지’로 알려졌다. 2015~2018년 억새밭에 생태 탐방로를 만들어 지난해 1월 개방했다. ’맹꽁이 생태 학습장’이라 이름 지은 ‘대명 유수지’다.
억새밭은 ‘억새 바다’라 불려야 옳다. 억새가 파도 소리를 내며 쉼 없이 물결친다. 그저 억새와 나무 데크 길뿐인데도 사람들은 죄다 들뜬 표정이다. 처음 억새를 보는 듯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댔다가, 셀카를 찍다가, 탐방로 높은 곳에 올라 억새밭 전체를 또 찍는다. 가끔 하염없이 억새 물결만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탐방로 양쪽 끝 계단을 오르면 흙바닥 단단한 둑길이 나타난다. 길가 코스모스가 하늘거린다. 둑길 너머로도 수변 공원이다. 인터넷 지도에서 ‘대명 유수지’나 ‘맹꽁이 생태 학습장’은 검색해 찾아가긴 어렵다. ‘월성교’(달서구 대천동)를 목적지로 정해야 찾기 쉽다. 주차는 갓길에 해야 한다.
희귀한 맛, 풀짜장 맹꽁이처럼 희귀한 대구 음식 가운데 ‘풀짜장’이 있다. 납작한 국수 면을 쓴다. 짜장 양념엔 고기가 없다. 무와 당근 등 채소와 감자만 넣는다. 고명으로 채 썬 파, 고춧가루, 참기름을 얹는다. 풀짜장 이름 유래에 대해 ‘납작한 면이 잘 풀어져서 풀짜장’이란 설과 ‘고기가 없어서 풀짜장’이란 설이 경합한다. 짜장면일 뿐인데 왠지 모를 깊은 맛에 매료된다. 해주분식(대구 중구 중앙대로 456-12/053-423-7129) 짜장면(풀짜장)은 4000원. 해주분식이 위치한 ‘짜장 골목’엔 10여년 전만 해도 ‘풀짜장’을 내는 집이 10곳가량이었으나, 현재 해주분식 한 곳 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 달성군 화원읍 화원유원지에서 본 달성습지. 김선식 기자
달성습지를 한눈에 조망하려면, 화원유원지(대구 달성군 화원읍) 전망대로 가야 한다. 전망대에서 본 달성습지는 아메리카 대륙 모양을 닮았다. 화원유원지는 동물원 등으로 유명한 ‘달성공원’과 함께 대구 지역 대표적인 나들이 명소다. 약 18만5000㎡ 부지 울창하고 정갈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재밌는 조형물과 장소들을 만난다. 소리 나는 피아노계단, 동물원, 약초원, 야생화원, 잔디광장, 야외 수영장, 정자 등이다. 유원지 한쪽엔 신라 선덕왕 때 쌓은 토성과 신라 호족 고분군 등도 남아 있다.
피아노 조형물이 여럿인 까닭은 낙동강 건너편에 있는 사문진 나루터의 내력 때문이다. 1900년 3월 사이드 보텀(한국 이름 사보담) 선교사 부부가 처음으로 국내에 피아노를 들여온 나루터다. 1940년대 초까지도 전국 물자를 대구로 나르는 하천 교통 요지였다고 한다. 유원지 입장료는 무료. 전망대까지 ‘오리 전기차’를 운행한다.(전망대까지 약 15분 소요, 주말 성인 기준 4000원, 배차 간격 15~30분) 약초원, 동물원, 피아노계단, 편백숲을 거쳐 전망대로 간다.
식당 ‘너구리’에서 2000원에 파는 ‘옛날 국수’. 김선식 기자
알찬 한 끼, 옛날국수와 석쇠불고기 대구 중구 중앙대로에 국산 암퇘지 주물럭 석쇠구이 1인분(5000원)과 ‘옛날 국수’(2000원)를 도합 7000원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 너구리(대구 중구 중앙대로 439/053-427-9292)는 1960년대부터 석쇠불고기 집을 운영한 식당으로, 2002년부터 1층에서 ‘옛날 국수’를 함께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구 동구 ‘불로동 고분군’ 풍경. 김선식 기자
까슬까슬하고 봉긋봉긋한 고분 수백개가 한자리에 모여 있다. 고분 사잇길을 밟는 감촉이 부드럽다. 하늘과 맞닿은 고분 사이로 걸어가는 사람은 구름에 걸린다. 대구 동구 불로동엔 삼국시대 5세기 전후 토착 지배세력 고분군으로 추정하는 불로동 고분군(사적 제262호)이 있다. 부지 약 30만㎡에 지름 15~20m, 높이 4~7m 고분들이 올록볼록 곡선을 그린다. 1938년 첫 발굴 조사 이후 지난해까지 총 275기 고분을 발굴해 봉분을 세웠다고 한다. 이영숙 대구시 문화관광해설사는 “고분군에선 상어 뼈가 나오기도 했다”며 “당시에도 염장 기술은 발달했고 상어 고기를 먹은 시대상을 추측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어 뼈는 2002년 발굴한 91, 93호 고분 항아리에서 발견됐다. 요즘도 대구지역에선 염장한 상어 고기(돔베기)를 굽거나 전을 부쳐 제사상에 올린다고 한다. 이영숙 해설사는 “불로동 고분군은 주말 웨딩 촬영이나 가족 소풍 장소로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며 “최근엔 외지인들이 노을 풍경을 보려고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향촌동 찌짐집’에서 6000원에 파는 돔베기전. 김선식 기자
그때 그 시절의 맛, 돔베기전과 공구빵 돔베기전은 육전과 명태전 중간 어디쯤의 식감을 선사한다. 향촌동 찌짐집(대구 중구 경상감영1길 44/053-426-0643)은 돔베기전(6000원), 배추전(4000원) 등을 정갈하게 낸다. 대구 ‘북성로 공구빵’(대구 중구 서성로14길 79/0507-1409-7465)은 스패너, 볼트, 너트 모양 마들렌을 판매한다. 3개 한 세트에 4500원. 북성로 공구 거리에 유일하게 남은 주물공장 ‘선일포금’과 협업해 제작한 주물 빵틀로 빵을 만든다. 빵에 공구 거리의 전통을 입혔다. 돔베기전과 공구빵 식감은 닮은 구석이 있다. 씹는 재미도 잠시 사르르 녹는다.
대구 동구 봉무동 ‘단산지’ 둘레길에서 본 풍경. 김선식 기자
대구의 자연을 느끼며 맘껏 거닐고 싶다면 봉무공원(대구 동구 봉무동)을 들러야 한다. 1932년 농업용수 공급 목적으로 파낸 저수지 ‘단산지’ 주변에 1992년 나비생태원 등을 지어 공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저수지를 끼고 도는 숲속 산책로가 운치 있다. 물속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의 자태가 신비롭다. 가끔 낙엽 수북한 늪에서 첨벙대는 물고기도 눈에 띈다. 취향과 여유 시간 따라 길을 고를 수 있다. ‘맨발 산책로’(약 3.5㎞/약 40분 소요), ‘숲길 산책로’(약 3.7㎞/약 45분 소요), ‘만보 산책로’(약 7㎞/약 2시간30분 소요)가 조성돼 있다. ‘나비누리관’ 방향으로는 꽃밭과 황토산책로(220m), 놀이터 등을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단단한 흙길과 숲, 저수지가 어우러진 단산지 둘레길은 운동, 산책하는 주민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푸른회식당’ 납작만두에 얹은 물가자미 무침회. 김선식 기자
찰떡궁합, 무침회와 납작만두 운송 여건이 열악한 시절, 대구에선 활어회 대신 무침회를 먹었다고 한다. 물가자미, 삶은 오징어, 소라 등에 무채, 미나리, 마늘, 생강, 고춧가루 넣고 버무려 낸 음식이다. 1960년대 대구 동구 ‘불로 전통시장’에서 처음 무침회를 팔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1980년대 들어 대구 서구 반고개역 주변에 무침회 식당이 모여들어 ‘반고개 무침회 골목’이 생겼다. 대구 애주가들이 “한 잔 더”를 외치며 찾는 대표적인 안주 중 하나가 무침회라고 한다. 대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이 못 잊는 음식 중 하나가 납작만두. 얇은 만두피에 당면을 넣고 반달 모양으로 빚어 한 차례 삶고 다시 구워 간장에 찍어 먹는다. 매콤한 무침회를 납작만두 피에 싸 먹으면 ‘조화롭다’는 말을 새삼 떠올리기 마련이다. 반고개 무침회 골목에 있는 푸른회식당(대구 서구 달구벌대로375길 14-1/053-552-5040)은 1987년 생긴 무침회 전문점이다. 미주구리(물가자미) 무침회(2만3000원), 오징어 무침회(1만5000원부터), 납작만두(3000원). 대구 납작만두 전문점은 미성당 납작만두, 남문 납작만두 등이 유명하다.
대구 남구 대명동 ‘앞산 해넘이 전망대’로 오르는 길. 김선식 기자
대구 도심을 남쪽에서 떠받치는 산이 ‘앞산’(658m)이다. 약 15분간 케이블카 타고 ‘앞산 전망대’에 오르면 땅거미 내려앉는 대구 도심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지난 8월 해넘이 명소가 앞산 앞에도 새로 생겼다. ‘앞산 해넘이 전망대’다.(대구 남구 대명동 산302-2/오전 9시~밤 9시 개방) 나선형 경사로 데크 200여m 걸으면 높이 13m 전망대에 오른다. 해넘이 전망대치곤 낮은 편이다. 지난 8일 서쪽 멀리 경남 합천 가야산 자락에 해가 걸렸다. 가야산과 북동쪽 팔공산 자락이 선명하다. 대구 시내는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넋 놓고 해넘이를 바라봤더니 두 눈이 저릿해졌다.
‘앞산 해넘이 전망대’에서 본 해넘이. 김선식 기자
‘봉산찜갈비’에서 맛 본 맵싸한 찜갈비. 김선식 기자
혀가 저릿해질 시간, 찜갈비 대구의 ‘빨간 맛’(매운 음식)에서 찜갈비를 빼놓을 수 없다. 간장 양념으로 맛을 내는 여느 갈비찜과 달리, 소갈비에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로 양념해 양은냄비에 넣고 졸인다. 대구 중구 ‘동인동 찜갈비 골목’에 전문점이 여럿이다. 1968년부터 이 골목에 자리 잡은 봉산찜갈비(대구 중구 동덕로36길 9-18/053-425-4203)는 찜갈비 오스트레일리아산과 한우가 각각 1만8000원, 2만8000원이다.
대구 달성군 구지면 ‘낙동강레포츠밸리’ 주변 풀밭에 핀 코스모스. 김선식 기자
대구 달성군 구지면 ‘낙동강레포츠밸리’ 주변에 핀 수세미 꽃. 김선식 기자
대구 중구 대봉동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벽화. 김선식 기자
대구/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