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ESC]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 얕잡아 보이기 싫다면

등록 2020-10-29 08:59수정 2020-10-29 11:46

클립아트코리아
클립아트코리아

“다들 똑똑하게 자기 것을 챙기는데, 나만 늘 고분고분 일을 떠맡아서 손해 본다”라는 하소연을 종종 듣는다. 책임감 있고 친절한 태도로 임했는데 상대에겐 만만하고 일을 부리기 쉬운 사람이 되는 듯할 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고민하게 된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학창시절 핑계를 대며 할 일을 미루는 일이 거의 없던 나는 늘 데드라인보다 먼저 마감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이런 습관과 생활방식이 직장에서는 누군가의 먹잇감이 될 줄이야. 신입사원 시절, 과제를 성실하게 완수하는 모습을 칭찬하던 선배가 어느 날부터 내게 일을 몰아서 시키기 시작했다. 다른 동료들과 나눠 해도 될 일을 왜 내게만 떠넘기느냐 항변하고 싶었지만, 당시 나는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어려운 사회 초년생이었다. 선배는 “네가 잘해서” “믿을 만해서”라는 그럴듯한 말로 내게 벗어나기 힘든 책임감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선배의 그런 행동은 내게만 향한 게 아니었다. 신입사원이 입사할 때마다 먹잇감이 될 수 있는, 소위 만만한 사람을 공략하는 게 그의 패턴이었던 것이다. 선배의 레이더망에 걸렸다가 탈출한 사례를 들어보니 “저는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똑 부러지게 의견을 표명한 경우였다. 그때 깨달았다. 가만히 있으면 진짜 ‘가마니’가 된다는 것을. 애초 나도 더 확실하게 의견을 말했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선배의 부탁이 부당해 보여도 어쩔 줄 몰라 어리바리한 표정을 지으며 그저 어색하게 웃어넘겼던 일이 후회되었다.

상황만 다르다뿐이지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마음으로 의욕 넘치게 일을 처리하다가 어느 순간 당연히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던 경험 말이다. 거절하지 못하는 마음을 이용하는 노련한 사수는 상대방에게 착한 사람이라는 칭찬으로 포장을 씌우며 계속 일을 떠맡긴다. 나의 선의가 똑같이 존중받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억울하게 손해 보는 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얕잡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는 태도란 어떤 것일까?

우선 직장에서 나의 이미지가 어떠한지 점검해봐야 한다. 오랜 기간 함께 일할 사이라면 일의 주도권과 평판을 동시에 잃지 않기 위해 말과 태도에서 이미지를 잘 설정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너무 차갑지 않으면서 가볍게 보이지 않을 만큼의 태도를 갖는 것이다. 사람들은 적당히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감정의 기복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에게 긴장을 풀지 못한다. 자신의 말투를 떠올려보자. 말투가 너무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지는 않은가? 기가 죽은 듯 말끝을 흐리지는 않는가? 여리거나 자신 없는 말투는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인상을 준다. 지금 내 말의 온도가 너무 친절하고 따뜻해서 문제라면 차가운 온도로 재설정하자. 너무 따뜻할 바에야 오히려 살짝 차갑고 냉정한 듯한 태도가 만만해 보이지 않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단기간 협업하는 다른 부서의 사람들과도 마찬가지다. 내가 실제로는 복잡다단한 모습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상대는 나를 단편적인 말과 행동으로 파악한다. 처음 업무 관계를 맺을 때를 생각해보자. 이메일을 보내는 형식이나 휴대전화 너머로 느껴지는 말투, 일을 처리하는 방식 등에서 상대의 전문성이나 성향 등을 감지하지 않는가. 잘 모르는 상대를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그 정도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배려하는 태도와 깔끔한 일 처리지 상냥한 말투가 아님을 염두에 두고, 과도하게 친절하거나 살가운 말투는 지양하자. 문자나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만나는 경우 태도와 표정부터 절제가 필요하다. 여유롭고 편안한 인상을 주되, 명함을 건넬 때나 인사를 할 때 여러 번 과도하게 몸을 숙이거나 커다란 리액션을 하지 않아야 한다. 성급하고 자신이 없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화 중에는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아이 콘택트’를 하고 편안한 표정으로 한두 번의 반응을 보이되, 어미마다 과도한 추임새나 리액션을 보여주는 일은 삼가자.

이미 인상이 굳어져 내게만 일이 몰리는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땐 단호하면서도 담백하게 거절하는 법을 연습하자. 쭈뼛쭈뼛하거나 과도하게 미안해하면 상대는 호시탐탐 구슬릴 기회를 엿본다. 나도 모르게 상대방 페이스에 휘말린 것 같다면 다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안 되는 이유’를 객관적인 근거로 준비해 말하자. 감정 기복 없는 담담한 어투로, 일을 맡기 힘든 근거를 잘 전달하는 데 집중하면 된다. 감정을 지우고 일의 태도를 떠올릴 것. 직장에서의 관계는 일하는 나와 일하는 상대 간의 거래라는 것을 기억하자.

임현주(MBC 아나운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숲 여행도 하고 족욕도 하고…당일치기 기차 여행 1.

숲 여행도 하고 족욕도 하고…당일치기 기차 여행

‘마이크로 투어리즘’…“여행자가 ‘지역다움’ 즐길 수 있게” [ESC] 2.

‘마이크로 투어리즘’…“여행자가 ‘지역다움’ 즐길 수 있게” [ESC]

[ESC] 사주로 예상해보는 도널드 트럼프 재선 3.

[ESC] 사주로 예상해보는 도널드 트럼프 재선

[ESC] 시래기와 우거지의 차이를 아시나요? 4.

[ESC] 시래기와 우거지의 차이를 아시나요?

[ESC] 거시기 사전: 남성 5.

[ESC] 거시기 사전: 남성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