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 본 저 세상은 어떤가요.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아, 테스형!” 나훈아가 물었다. “테스형도 모른다고 하네요.” 나훈아가 말했다.
이 말을 세 가지로 해석해본다. 첫째, 이 말은 인간 이성의 한계를 지적한다. 테스형은 가장 유명한 철학자다. 또 인간 가운데 가장 똑똑한 사람이기도 하다고, 아폴론 신이 말했다. 카이레폰이라는 사람은 소크라테스의 친구였다. 자기 돈을 털어 신전에 찾아가 물었다.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사람이 있습니까?” 신탁은 답했다. “없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플라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 본인이 동네방네 떠들었기 때문이라나.(<소크라테스의 변명>)
둘째, “테스형도 모른다”는 말은 소크라테스 철학의 고갱이를 짚었다. 카이레폰의 말을 전해 듣고 소크라테스는 반발한다. 자기는 똑똑하지 않다며, 자기보다 지혜로운 사람을 찾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 “똑똑한 당신이 내 질문에 답해주세요”라고 해놓고, 대답을 들으면 고마워하기는커녕 “이런 부분이 앞뒤가 안 맞는다”며 면박을 줬다. 평생 들쑤시고 다니더니 기껏 한다는 말이 “사람들도, 나도 아는 게 없다”였다. 다만, “나는 모른다”라는 사실을 남들보다 더 안다는 점만큼은 자기가 똑똑하다고 했다.
셋째, 이 말은 저승 여행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소크라테스는 죽어서 어디로 갔는가. 너댓가지 서로 다른 설명이 있다. 우선 기원전 4세기 플라톤의 설명. 정말인지 플라톤이 지어낸 말인지는 모르지만, 소크라테스는 저승의 구조에 대해 자세히 알았다고 한다.(<국가> 10권) 올바른 일을 한 사람의 혼은 오른쪽 위로 올라가고, 악인의 혼은 왼쪽 아래로 내려간다. 각각 천년 동안 상을 받고 벌을 받은 후 돌아와 이승에서 환생한다. 소크라테스는 일단 좋은 곳에 갔으리라. “당신은 아는 게 없다”는 말을 평생 떠들고 다닌 선행(!) 덕분에 말이다. 천년이 두번 넘게 지난 지금은 “윤회하여 다른 인생으로 두 번 더 태어났을 것”이다.(이종환의 <플라톤 국가 강의>)
다음은 2세기에 살던 로마제국의 작가 루키아노스. 저승 이야기를 몇 편 썼다. 소크라테스는 엘뤼시온이라는 낙원에 있다고도 했고(<진실한 이야기>), 유명한 꽃미남들을 곁에 둔 채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고도 했다.(<죽은 자들의 대화>) 이야기마다 약간은 다르지만, 대체로 잘 지내는 것 같다.
그런데 14세기의 시인 단테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소크라테스는 지옥에 있다는 것이다.(<신곡> 지옥편 4곡) 이유는 간단하다.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그렇다. 옛날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도 지옥은 지옥이지만 착하고 위대한 사람들이 따로 모인 장소가 있다. 림보라는 곳이다. 소크라테스도 그곳에 있다고 했다.
16세기 초에 화가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을 그렸다. 그림 속 소크라테스와 고대 철학자들은 림보에 있다는 사람들 이름과 많이 겹친다. 이 벽화를 교황청 벽에 그렸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1960년대 교황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었다. 기독교 신앙이 없더라도 꼭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림보에 있던 사람들은 1960년대 이후에 풀려났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소크라테스는 저승 어디쯤 있을까? 테스형도 모른다고 할 것 같다.
김태권(지옥에 관심 많은 만화가)